#53 벚꽃과 간장게장

다시 만나는 나

by 아스토리아

올해도 감사하게 벚꽃을 보았다. 작년에 벚꽃을 보며 이 벚꽃이 내 생에 마지막으로 보는 벚꽃이 될 수 있으니 실컷 누려야지!라는 생각에 부산까지 가서 벚꽃을 봤는데... 올해도 감사하게 벚꽃을 보는 영광을 누린다.

또 날음식 허락이 떨어져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간장게장도 먹었다!!!!

뉴욕에서 공부할 때 잠깐 집에 오면 할머니가 늘 간장게장을 준비해 주셨다. 할머니가 마지막엔 몸이 아프셨는데, 내가 10일 동안 집에 온다고 아픈 몸으로도 간장게장 10마리를 준비해 주셨다. 그러다 갑자기 할머니가 사라져서 깜짝 놀라 가족들이 모두 밤에 찾으러 나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머무는 10일에 맞춰 간장게장 10마리를 준비해 주셨는데 언니가 하나를 먹어서 밤중에 한 마리를 더 사러 나가신 거였다. 그 밤중에 길거리에서 할머니를 마주쳐 왜 여기 있냐고 걱정돼서 소리쳤는데 할머니가 웃으며 “너 게장 해주려고” 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가게에서 먹는 게장이 어쩐지 맛이 없어서 잘 안 먹었는데 거의 3개월간 금식할 때 간장게장 먹방을 계속 봤다. 그래서 나으면 꼭 먹고 싶던 음식 중 하나였기에 날 것 허락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서 게장도 먹었다.

일도 다시 시작했다. 투병 1년, 그 후 1년 동안 쉬면서 다시 예전처럼 달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아왔다. 그러면 다시 아플까 봐 두려웠기에 걷는 것도 두려워 거의 기어가면서 살았던 것 같다. 많은 분들이 다들 내가 조금만 뭐해도 “무리하지 마. 너 다시 아프면 어쩌려고 해”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이 걱정과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온 거를 너무 잘 알지만...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글을 너무 쓰고 싶었다. 다시 내가 살던 세계로 너무 다시 가고 싶었다.

4월 초에 뮤지컬 리딩공연(배우들이 대본과 악보를 보며 공연하는 것)을 두 작품 했는데, 그 작품을 준비하고 연습하고 리딩공연을 올리는 기간 동안 내가 생생히 느낀 감정은 ‘살아있다’였다. 일이 일처럼 안 느껴지고 취미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되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었고, 이젠 술을 안 마시는데도 알딸딸하게 술 취해서 기분 좋은 것처럼 도파민이 막 터졌다. 뭔가 다시 예전의 내가 된 것만 같아서 기뻤고, 그리웠던 내 자신을 만난 것 같았다.

물론 이젠 예전처럼 달리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속도 조절을 하겠지만... 글을 쓰고 공연을 올리는 이 과정 속에서 나는 너무 행복하단 말을 꼭 하고 싶었다. 그러니 걱정보다는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이렇게 막 다시 예전의 나를 만나서 내가 아팠던 게 꿈이었나 싶을 때가 있다가도 순간순간 내가 아직 환자란 게 느껴지면 서러움이 밀려올 때도 있다. 30대에 조기폐경이 되어 갱년기 증상이 가끔 나타나는데 갑자기 막 화가 순식간에 솟구치고 눈물이 나는 게 갱년기 증상인지 아니면 투병을 하면서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며 애써 눌렀던 내 부정적인 감정들인진 아직 잘 모르겠다.

며칠 전에 정기검진을 위해 시티를 찍으러 갔다. 원래도 혈관이 잘 안 보이는 내가 항암으로 인해 이제 혈관 찾기가 어려워서 늘 손등에 큰 주삿바늘을 꽂는다. ‘아프지만 어쩌겠어!’ 하고 참고 손등에 큰 주삿바늘을 꽂고 시티실에 들어가서 누웠다. 조영제를 넣기 전 시험으로 물을 넣는데 혈관이 터져버려서 손등이 붓고 시티실을 나와 다른 손등에 주사를 꽂고 시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내가 왜 아파서 3개월마다 이 짓을 해야 할까”란 생각이 들면서 서글펐다. 그러면서도 바로 나 자신에게 ”서러울 것도 많다. 넌 살았잖아. 살았으면서 왜 불평이야 “라고 혼내며 눈물을 꾹 참았다.

그리고 며칠 뒤, 치과를 갔는데 항생제를 먹지 않으면 스케일링을 할 수 없다며 거절을 당했다. 그날이 비가 많이 오는 날이어서 비 오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그리고 “왜 나는 아파서 스케일링도 마음대로 못하나”란 생각에 또 감정이 훅 올라왔지만 계속 마음을 달래며 “화날 것도 많다. 넌 살았잖아”라고 또 눈물을 꾹 참았다.

사실 잘 모르겠다. 암투병 후의 삶은 예전에 내가 살아오던 삶들과는 겉으로 보기엔 똑같아도 다르기 때문에 어떤 태도로 이 삶을 마주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누르는 게 건강한 건 아닌 걸 알면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마다 ‘어떻게 다시 얻은 삶인데... 중환자실에 누워 물 한 모금만 마시길 간절히 원하던 때를 떠올려봐.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유연한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될까?

이제 2주 후면 외래에서 정기검진 결과를 듣는다. 부디 나에게 3개월이란 시간이 더 허락되어 내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조금 더 유연하게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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