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질문하지 않는 이유 중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에이~ 애들이 뭘 알아?”
“나중에 말이 통할 때 뭘 물어봐야지!”
한마디로 수준이 안 맞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요, 아이들은 모르지 않습니다. 어르신들 하시는 말씀처럼 속이 다 있거든요. 다만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뿐이죠. 처음이라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뿐입니다. 번거롭더라도 차근차근 이야기해주면 아이들도 고유한 기질과 판단력으로 대답합니다. 사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뛰어난 습득력으로, 정보를 적절히 주면 놀랍게 학습하며 경험을 쌓아 갑니다. 우리 어른들보다 무지한 게 아니라 우리보다 경험이 적은 독립된 인격체라는 점을 잊지 않으면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더 많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마음이 준비되었다면, 아이들에게 질문해야겠지요. 아이들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유념해야하는 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친절한 질문지’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큰애가 7살 때, 통장을 만들기 위해 은행에 갔습니다. 친척분들, 할머니, 할아버지께 받는 용돈을 엄마한테 맡길 수도 있고, 지갑에 모아 둘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선택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은행에 맡기면 이자라는 이득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은행에 저금하고 이자를 받자고 설득했고, 당장 지갑이 빈다는 생각에 아이는 좀 주저하다 동의했습니다.
창구 앞에 앉은 아이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습니다. 적금과 예금. 큰애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적금으로 할까? 예금으로 할까?”
“뭐가 달라?”
‘에이! 내가 애 데리고 뭐 하고 있지? 물어보긴 뭘 물어봐. 그냥 내가 정해야지. 이다음에 다 알게 돼!’라는 생각이 훅하고 올라올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는데 아이는 모릅니다. 아이는 이번이 처음이니까요. 아직 경험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적금과 예금이 뭐가 다른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수고가 바로 친절입니다. 차이점을 어떻게 말하면 쉽게 구분이 될지,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지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예금은 통장에 넣었다가 언제든지 빼서 쓸 수 있어. 하지만 이자를 조금 줘. 그런데 적금은 통장에 넣으면, 1년이 지난 후에 찾을 수 있어. 대신 이자를 많이 주지.”
아이의 선택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나 예금할래.”
“왜, 평아?”
“필요한 일이 생길 수 있잖아.”
그랬습니다. 본능적으로 아이는 예금과 적금의 차이에 반응했습니다. 돈을 찾고 싶을 때 못 찾는다는 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판단한 것이죠. 꼬깃꼬깃 접어둔 지갑 속 돈이 아이한테 좀 큰 액수였던 지라 다시 물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실랑이가 시작됐습니다.
“평아, 이 돈이 한꺼번에 다 필요할 일이 있을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떡해?”
“평이 먹고 싶은 간식은 엄마가 다 사주는데. 평이 돈은 적금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할머니 생일에 선물 사드리고 싶단 말이야. 지난번에 엄마도 봤지? 예쁜 도자기 인형.”
어른들도 이 고민을 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꼭 생길 것 같은 비상시를 대비해 여윳돈을 적금에 다 묶어두지는 않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래서 애들도 다 속이 있다고 할머니들이 웃으시나 봅니다. 타협을 시도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할머니 생신 때 선물 살 돈은 예금 통장에 넣어두고, 나머지는 적금 통장에 저금하는 거야. 통장 두 개를 만드는 거지. 어때?”
“....”
아이의 고민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창구가 한산한 지점에, 바쁘지 않을 시간에 방문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처음 와본 은행에서 호시탐탐 장난칠 기회를 엿보는 둘째에게 친절한 창구 직원분이 새우과자가 담긴 컵을 건네주신 덕에 큰애는 장고의 여유를 누렸고, 마침내 최후의 선택이 이루어졌습니다. 엄마와 은행 직원분이 몇 번에 걸쳐 설명한 “이자” 개념은, 즉각적이고 제한 없는 예금의 소유권 주장에 막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최종 선택을 도와준 결정적 요소는 다름 아닌 통장이었죠. 적금통장에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겁니다. 은행들이 아이들 저축 상품 통장에 왜 추가 비용을 들여 캐릭터 그림을 인쇄하는지 납득이 되더군요.
그렇게 예, 적금통장 두 개를 들고 엄마도 아이도 행복하게 은행문을 나섰습니다. 큰애가 예, 적금을 두고 그렇게 고민할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질문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내 아이의 속마음을 알게 되어 행복한 하루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이가 만든 적금은 아직 만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자 액수가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곧 만기가 되어 자신이 선택한 통장에 찍힌 이자 액수를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다음에 적금통장을 만들 때는 높은 이자율에 끌리는 금융성향을 보일까요?
아이들에게 질문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친절하게 묻는 겁니다. 경험이 제한적일 수 있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묻는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이 뒤따릅니다. 아이들이 물어보거든요. 예금과 적금의 차이는 쉬운 경우였습니다. 어른들은 이 과정이 귀찮거나 수고로워서 질문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문하면 설명해줘야 하니 아예 질문하지 않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만 말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내가 잘 모르는 것은 설명이 안 되거든요. 제가 경험해봐서 압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과 책을 읽고 질문하는 활동을 좋아합니다. 방금 읽은 책에 관한 질문이라면 부담 없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답이 책에 있으니까요. 이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한창 공룡에 몰두했던 때가 있습니다. 남자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면 한 번쯤 경험하셨을 겁니다. 소위 말하는 공룡 열병. 이때가 되면 엄마는 온갖 사우르스들을 발음하느라 혀에 쥐가 날 지경입니다.
“애들아, 공룡이 왜 멸종했지?”
여러분은 공룡의 멸종 원인을 아십니까? 전,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기 전에는 정확히 몰랐습니다. 책 읽기라는 활동이 없었으면, 아마 물어보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전 자신 있게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제겐 없지만, 책에는 설명이 있으니까요. 친절하게 질문하기가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질문하면, 굳이 제가 설명할 필요도 없답니다. 아이들이 찾아서 대답하거든요.
“엄마, 운석이 떨어져서 지구 환경이 크게 바뀌었데. 추워져서 초식동물이 먹고 사는 식물이 없어지니까 초식동물이 죽고, 초식동물이 없어지니까 육식동물도 멸종한 거야.”
전 책을 보며 궁금한 질문들을 추가하면 됩니다.
“애들아, 운석이 떨어지면 왜 이런 충격이 생기는 걸까? 커서 그럴까? 무거워서 그럴까? 얼마나 빨리 떨어지는 걸까?”
제 질문에 아이들이 답을 하기도 하지만 되묻기도 합니다.
“엄마, 운석은 얼마큼 빨리 떨어져?”
‘헉’하는 순간이지요. 사실 운석이 떨어지는 빠르기는 저도 모릅니다. 부모님들이 답을 모르는 질문을 피하려다 보면 아이들한테 할 수 있는 질문은 몇 가지 안 될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되물어보는 질문의 답을 몰라도 걱정 없이 계속해서 질문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에게는 마법의 질문이 있거든요.
“그건 어떤 책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하는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 내려놔도 질문대화가 훨씬 편해집니다. 질문하는 목적은 답을 알려 주는 데 있지 않습니다. 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보여줄 수 있으면 됩니다.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질문하기 어려워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어휘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 겁니다. 어른들이 느끼기에 어려운 말을 아이들에게 사용하는 걸 꺼리지요. 그런데 사실 아이들에게 사용하는 언어를 따로 구분할 이유는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일수록 펭귄 “뽀로로”와 “해열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어차피 새로 배우는 단어일 뿐, 뭐가 더 어렵고 쉽고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뽀로로도 처음 봤고, 열날 때 해열제도 처음 먹어보기는 마찬가지니까요.
운석이 충돌하면서 지구에 찾아온 급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인해 초식공룡이 먹이 부족으로 멸종하자 초식공룡을 먹이로 삼는 육식공룡이 멸종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과자를 먹고 싶은데 동생이 다 먹어버려서 더는 먹을 수 없게 된 슬픈 현실을 이해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친절하게 물어본다면 아이들에게 물어보지 못할 질문은 없다고 봅니다. 질문지를 친절하게 바꿀 수고가 번거로울 뿐이지요. 우선, 책을 읽으면서 질문해 보세요. 무제한으로 질문할 수 있답니다. 아이들이 쏟아내는 질문에 브레이크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오고 가는 질문으로 지식창고와 마음밭이 그득하게 차오르는 행복한 질문 독서 활동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