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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May 26. 2020

질문 대화에 엄마가 적임자인 이유

“질문 있으십니까?”

수업이나 강연의 마무리 시간에 으레 나오는 말입니다. 요즈음은 하나라도 질문을 받으려는 강사가 많아지면서 Q&A 시간에 한두 가지 질문하는 건 거의 의무사항인듯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시간은 불편하고 누군가가 나서서 빨리 마무리해주었으면 하는 기류가 흐른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질문해본 적 없고, 질문하는 방법을 배운 적은 더더군다나 없습니다. 그래서 질문하기는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엄마들도 예외는 아니지요. 그런데도 질문 육아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엄마라고 감히 단정 지을 수 있습니다.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아는 게 없으면 질문할 수 없습니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좋은 질문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크게 왜곡된 시선으로 아이를 보지 않는 한 엄마만큼 자녀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엄마만큼 자녀에게 잘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질문 대화 적임자가 엄마인 또 다른 이유는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은 언제 원활하게 이루어질까요? 어휘력이 풍부하고 논리력이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은 부드럽게 물처럼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어휘력이나 논리력만큼 중요한 요소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공감 능력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자녀와 맺은 튼튼한 관계는 좋은 질문으로 대화할 수 있는 훌륭한 터전이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엄마가 자녀의 훌륭한 질문 파트너인 이유는 자녀를 향한 엄마의 사랑 때문입니다. 연애할 때 다들 경험하셨을 겁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어떻게 되나요?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궁금해집니다. 상대가 알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이렇게 해주면 어떻게 반응할지 등등 온 세상이 상대에 관한 질문을 속삭이는 것만 같습니다.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퐁퐁퐁 솟아오르는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질문이 떠오르지요. 누구보다 자녀를 사랑하는 엄마는, 질문하기로 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자녀에게 할 질문거리가 누구보다 쉽게 떠오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엄마에게는 이렇게 자녀와 질문 대화할 수 있는 이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한참 사춘기를 격하게 지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대화 기피 상대 1번이 부모님이니 시기적인 예외가 있을 수는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엄마들이 자녀들과 질문 대화를 시도할 때 경험하는 벽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엄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 대화 능력을 발휘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제 경우 아이에게 즉각적인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태도였습니다. 물론 아이의 안전과 관련된 사항이라면 즉각적으로 개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가 생각해서 행동을 선택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질문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육아 현실에서 그런 여유로운 마음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하고 가만히 제 마음을 들여다보니 크게 두 가지 이유가 보였습니다. 우선, 조급함 때문이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일상을 빨리빨리 해치워야 하는 일과로 간주할 때 아이들에게 지시하는 내용이 더 많아졌습니다. 어린이집 하원 해서 씻고 밥 먹고 후식 먹고 학습지도 좀 하고 책도 읽고 영어 DVD라도 하나 볼라치면 저녁 시간은 섬광처럼 날아갔습니다. 약간 과장해서 정말 기계같이 움직여야 두 아들과 함께 계획한 일과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전 아이들에게 지시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요. 그것도 긴급한 지시사항이었지요. 

“애들아, 빨리 씻자.”

“빨리 밥 먹어야지.”

“자, 양치하고 엄마랑 책 읽자.”

“서두르세요.”

“엄마가 빨리 하자고 했지.”

하지만 조급한 엄마 마음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천하태평이요, 양치하러 선 세면대는 어느덧 요괴메카드 피규어들의 전쟁터로 변하기 일쑤였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평화롭던 집에 뱀이 출몰합니다. 

“스읍! 엄마가 뭐라고 했지? 빨리 양치하고 나오세요!”

이때의 “하세요”체는 높임말이어서 더 무서운 표현입니다. 거기서도 아이들이 진정되지 않으면 드디어 엄마는 헐크로 변하죠. 어미가 단호한 명령투로 바뀝니다. 

“그만! 둘 다 나와!”     

순간적으로 강한 지시형 문장이 튀어나오는 경우는 이처럼, “당장”, “Right Now” 행동의 수정을 주문할 때입니다. 강압적인 지시로 상황이 정리되면 잠깐은 조용해지지만, 엄마 마음은 더 소란스러워집니다. 애들 등 떠밀어 일과를 해치우면서 학습지 앞에 앉히고 책을 읽히는 게 과연 유익할까 하는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때문입니다.      


조급함이 문제였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할 일을 줄여야 했습니다. 영어 DVD 보는 일을 주말로 빼는 것으로 절충했습니다. 대신 평일에 아이들과 하원 시간에 차에서 영어 CD를 듣기로 했죠. 평일 저녁에 해야 할 일 리스트를 하나 줄이자 그만큼 일상이 여유로워졌습니다. 시간상으로 여유가 생기니 마음이 편안해진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지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전 저대로 편해졌습니다.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은 뭔가 빨리빨리 해치워야 하는 긴장된 시간이 아니라 하루 동안 각자 생활에서 일어났던 일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질문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군요.      


아이들의 행동이 바뀌기를 기대할 때도 마음이 여유로우면 질문으로 엄마의 뜻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즉, 특정 행동을 하라고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대신 엄마가 원하는 결과를 말하는 겁니다. 그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지 질문해서 아이가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날씨가 상당히 더워져서 얇은 옷을 입는 초여름 날이었습니다. 둘째가 뜬금없이 상당히 두꺼운 가을옷을 입겠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가만 보니 셔츠 앞에 있는 색이 변하는 스팽클 로봇 무늬가 맘에 들었던 겁니다. 주일학교에서 선물 받고서 바로 더워지는 바람에 몇 번 못 입어서 서운했던 거지요. 더워서 못 입으니 벗으라고 ‘지시’하는 대신 물었습니다. 

“명아, 이 옷 입고 싶구나. 그런데 오늘 날씨가 꽤 덥네. 이제 초여름이잖아. 이 옷 입고 가면 땀이 뻘뻘 날 텐데 어떻게 할까?”

둘째는 더위를 많이 타는 아이인데도 괜찮다고 일단 우겨봅니다. 

“그래, 그런데 더워서 땀 나면 오늘 어린이집에서 바깥 놀이 시간에 더워서 놀기 힘들 텐데. 밖에서 오래 못 놀아도 괜찮아?”

바깥 놀이를 오래 못한다는 말에 흔들리는 걸 보니 역시 야외활동이 최고인가 봅니다. 

“오늘은 좀 얇은 옷 입고 이 옷은 비 오는 날 입고 가면 좋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잠깐 주저하더니 그러는 게 낫겠답니다. 생각해 보니 오늘 바깥 놀이도 오래 하고, 다음에 입을 수 있는 날도 기약해놓았으니 손해 볼 게 없다는 판단이 든 표정입니다. 사실 저는 다음 질문도 하나 더 생각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럼, 일단 입고 가고, 너무 더우면 갈아입을 수 있게 얇은 옷을 가방에 넣어가면 어떨까?”라는 대안이었지요.      

아이들에게 지시형 말투를 사용하는 대신 질문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인간의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인간은 자존심 덩어리다. 그래서 남의 말을 따르기는 싫어하지만, 자신이 결정한 것에는 기꺼이 따른다. 그러므로 남을 움직이려면 명령하지 마라. 스스로 생각하게 하라.”

<인간관계론>으로 유명한 인간관계 전문가인 데일 카네기의 말입니다. 이 말은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 심지어 유아들에게도 참입니다. 우리말 속담에도 빗자루 드니 마당 쓸라고 한다는 말이 있는걸 보면, 원래 내가 하려고 했어도 다른 사람이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건 인간의 뿌리 깊은 본성인가 봅니다. 한마디로 기분 나쁘다는 거지요. 기분이 상했는데 지시까지 따라야 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껄끄럽겠습니까?      


그렇다면 스스로 생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질문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일본의 유명 변호사인 다니하라 마코토는 <결정적 질문>이라는 책에서 질문할 때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다음의 6가지로 정리합니다. 

원하는 정보를 얻는 힘 

남의 호감을 얻는 힘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사람을 키우는 힘 

논쟁을 주도하는 힘 

자신을 통제하는 힘      

아이와 대화할 때 의식적으로 질문하면서부터 여섯 가지 능력 모두를 절절히 경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원하는 정보를 얻는 질문의 능력은 너무 자명합니다.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는 미운 네 살도 반문하면 엄마 의견이 존중해주었습니다. 질문이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죠. 꼬꼬마 아이들도 선택지를 받으면 자신이 존중받는 존재라는 것을 배웁니다. 잔소리로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 아이의 생활습관이 질문할 때 바뀌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아이에게 진심 어린 호기심으로 질문했을 때 아이의 마음을 얻고, 내 아이에 대해서도 더욱 잘 알게 돼 관계가 더 풍성해진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질문은 정말 능력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화에서 질문은 하나의 틀, 프레이밍 (Framing)으로 작용합니다. 대화의 방향을 설정하는 셈입니다. 논쟁을 주도하는 질문의 능력은 바로 이런 특성에 기인합니다.      


특별히 실감하는 질문의 능력은 위의 항목 중에 여섯 번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변화시키기 어려운 존재가 바로 ‘나’입니다.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어렵거니와 머리로는 이해해도 직접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기란 하늘의 저 많은 별 중 하나를 따기보다도 더 어렵습니다. 그런 나 자신조차도 질문하면, 자문하면 변할 수 있습니다. 가장 움직이기 힘들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질문의 능력도 경험 한 셈입니다. 자신을 통제하는 힘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겠지요. 이쯤 되면 질문의 우주적 능력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요?      


아이와의 질문 대화가 발전할 때 겪는 현상이 있습니다. 아이의 질문이 더 많아집니다.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왜 그런데? 와 같은 질문을 쏟아붓습니다. 가끔은 질문을 위한 질문으로 말장난을 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이때 질문하는 야무진 입이 너무 예뻐 당장 대답해주고 싶지만, 한숨 멈추는 투자를 더 큰 질문밭을 수확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질문에 즉답하지 않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아이가 질문한 내용에 대한 질문으로 되묻거나, 아이가 질문한 경우와 반대되는 경우를 가정하는 질문을 통해 아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아이의 질문 사고력은 큰 폭으로 발전합니다. 게다가 엄마는 답지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좋은 태도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호출하면 질문에 답해주는 기가지니나 시리가 아닙니다. 엄마는 자녀의 질문에 질문함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헬퍼입니다. 저는 대놓고 말했습니다. 

“엄마도 모르겠는데. 같이 찾아보자. 어떤 책을 찾으면 알 수 있을까?”  

   

여기서 잠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요즘 아이들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핸드폰 검색해 보면 되지.” 

차를 타고 가다가 아이들이 질문했을 때 핸드폰에서 자료를 검색해준 이후로 아이들은 핸드폰 자료 검색의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특정 정보를 묻는 자기들의 질문에 “집에 가서 책 찾아보자. 어떤 책을 보면 알 수 있을까?”라고 되묻는 엄마에게 어른스럽게 제안합니다. 

“엄마, 핸드폰으로 검색하면 더 빠를 것 같은데?”

물론 그렇지요. 빠르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에 접할 수 있는 검색의 바다가 주는 이점은 분명합니다. 시의성을 놓치지 않아야 할 때는 특히나 빛을 발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할 점이 있습니다. 백과사전을 통해 자료를 찾을 때는 단순히 정보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정보의 계통에 대한 감각을 얻습니다.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얻는 것과 비슷하지요. 예를 들어 하루살이를 검색창에서 찾을 때와 백과사전에서 찾을 때 찾는 결과는 거의 같은 내용일 수 있습니다. 사실 종이 백과사전 자료를 디지털화한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검색창을 열고 “하루살이”를 친 아이들은 검색창이 열어준 해당 페이지만을 볼 뿐입니다. 그러나 백과사전을 찾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먼저 백과사전 어떤 권을 뽑아야 할까요? 책마다 약간 다를 수는 있지만 일단 하루살이는 식물이 아니고 동물이니 동물 편을 열어야 합니다. (세부 분류가 되어 있는 백과사전은 곤충 편이 따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식물과 동물을 구분한다는 뜻입니다. 학창시절에 배운 식물과 동물을 나누는 차이가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 수 있느냐 유무입니다.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 수 있는 건 식물, 그 능력이 없어 다른 생물을 먹어야 살 수 있으면 동물이지요. 지구상에 있는 약 130만 종이나 되는 동물은 비슷한 성질로 묶어 계통도로 분류됩니다. 곤충은 일단 무척추동물(동물계)로 몸에 마디가 있는 절지동물(절지동물문) 중에서 육각아문(다리가 여섯 개 있는 무리라는 뜻입니다) 곤충강에 속하는 생물을 총칭합니다. 물론 백과사전을 찾는 이유가 이런 계통을 암기하기 위한 건 절대 아닙니다. 이렇게 계통적으로 분류하는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 그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말은 곧 관계와 차이점을 파악한다는 것이니까요.     


정보를 분류하는 큰 틀이 어느 정도 있는 어른들은 단편적 정보를 찾기 위해 검색창을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릅니다. 세부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상위에 있는 개념을 배우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는 정보의 분류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동해랑 똑같은 바다네.’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양의 위엄은 수면 아래 바닷속 세상에 펼쳐져 있으니까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정보의 계통을 알아가기까지는 가능하면 아이들이 검색창에 의존하는 대신 책에서 정보를 찾는 방법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질문에 검색해서 답하는 방법을 권하지 않는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정보의 정확성을 위해서입니다.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는 자료로 백과사전을 이용하신다면 그나마 낳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보면 보통 검색결과 상위에 놓이는 정보에 의존합니다. 블로그 글인 경우도 있고 누군가 작성한 기사인 경우도 많습니다. 2차 가공된 정보인 셈입니다. 정확도를 확신할 수 없는 셈이지요. 문서화된 정보라고 항상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터넷 상의 정보는 가공과 확산이 인쇄 매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다 보니 오류도 그에 비례하는 면이 있습니다. 또한, 2차 이상으로 가공된 정보이기에 누군가의 판단으로 해석된 정보입니다. 선입견이나 편견에 치우침 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세상을 배워가는 우리 아이들이기에, 이왕이면 신뢰할 수 있는 원(原)정보에 접근하는 기회를 많이 누리면 좋겠습니다.    

  

자녀와 질문으로 대화하기가 힘들어도,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최근에 한 일화를 통해 다시한번 실감했습니다. KFC 하면 벌써 고소하고 짭조름한 치킨이 떠오릅니다. 미국 남부식 닭튀김을 세계적인 치킨 메뉴로 만든 사람이 커넬 샌더스입니다. 그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프렌차이즈 사업을 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몰랐죠. 알고 보니 이런 사정이 있더군요. 커넬 씨는 원래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65세 때 운영하던 레스토랑 주변에 도로 사정이 바뀌면서 갑자기 가게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식당이 없으니 레시피를 팔자는 역발상을 해낸 것만 해도 대단합니다. 커넬 씨는 요리법 판매를 위해 여러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서 미팅을 잡고 설명했을 겁니다. 하지만 특별한 요리도 아니고 치킨 요리법을 돈 주고 사려는 음식점 사장이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건 쉽게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많이 거절당했을 테지요. 그런데 정확히 그 회수가 1009번이었다고 합니다. 상상되시나요? 1009번의 영업 미팅, 그리고 1009번의 거절.      


구직활동을 해보신 분이라면 100%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실패나 좌절의 경험은 한 건 한 건이 쓰라립니다. 내 가치를 부정당하는 느낌이랄까요. 반복되면 스스로 의심도 갑니다. ‘난 과연 능력이 있기는 한 걸까?’ 뭐 이런 식이죠. 자그마치 1010번째 제안에서 성공하기까지 지금의 KFC가 있을 수 있었던 건 그 거절을 이겨낸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업 계약도 불굴의 투지로 극복하면 성공할 수 있나 봅니다. 아이와 질문으로 대화하고자 하는 쉽지 않은 도전은 어떻습니까? 아이와 질문하기가 더 어려울지, 1009번의 영업 미팅에서 거절당하는 일이 더 어려울지 가늠하는 건 여러분 각자에게 맡기겠습니다. KFC 할아버지는 1010번째 미팅에서 성공하기까지 아마 끊임없는 좌절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포기하지 않은 게 기적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이와 함께 질문으로 대화하는 건 최종 결과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과정이 즐거운 도전입니다. 과정의 열매가 크다는 뜻이죠. 자녀와 질문 대화하느라 쏟아부은 노력의 최종 결과가 설사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만큼 거창하지는 않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이미 충분한 성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질문 대화에 도전하는 분들은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질문받고 질문하면서부터 사고력이 발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더욱 즐거워지고 의미가 풍성한 대화시간으로 인해 기뻐 소리치게 될 겁니다. 아이들과 질문으로 대화하는 도전은 그래서, 어렵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도전입니다. 과정이 더 멋진 아름다운 도전입니다.      


저랑 비슷한 또래라면 이 노래 기억하시는 분 많으실 겁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은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이 곡을 질문 대화 주제곡으로 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질문하기 막막해도 

나는 또 질문해 

찾고 찾고 찾으면 

질문이 생각나 

웃으면서 물어보자 아이 생각 

아이 생각 들으면서 감탄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엄마!      


사람이 1009번의 거절을 견디는 게 가능하다면, 질문 대화를 시작하며 우리가 마주하는 답답함, 막막함도 역시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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