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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Jul 02. 2020

주체적 판단력을 키워주는 질문

: "글쎄, 네 생각은 어떠니?"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요? 내게 찾아온 작은 생명.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존재로 내게 온 자녀를 먹이고 입혀서 키웁니다. 때를 따라 필요한 정서적, 지적, 영적 자극을 줍니다. 과감한 도전이 필요할 땐 격려하고 위로가 필요할 땐 안아주면서 차근차근 성장을 돕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가능하면 진자리를 피하고자, 시간을 아끼고자 경험 많은 엄마의 안목으로 이리저리 안내해줍니다. 내게서 나온 아이인지라 내 몸과 같고 내 마음과 같은 깊은 동질감에 정말 감쪽같이 잊기도 합니다. 내가 아무리 사랑해도 아이는 내가 아닌, 또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결국, 아이는 나와는 다른 하나의 생명체, 인격체로 살아갈 테니 엄마로서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아이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겁니다.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녀의 홀로서기를 돕는 사람. 즉, 거친 세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판단력을 장착하도록 돕는 역할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겠지요.      


언젠가 한국의 가정은 대학입학 프로젝트 공동체라는 표현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감당해야 할 학습량이 워낙 많다 보니, “넌 공부만 해.”라는 격려로 입시 공부 외의 다른 모든 판단과 일을 부모가 대신 해주는 게 아직도 우리 현실입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 입시 열기는 일찍부터 가열되고 엄마가 짜주는 입시 로드맵을 따라 선행학습 질주에 뛰어든 아이들은 다른 생각은 할 틈이 없는 빼곡한 일정표를 따라 쳇바퀴를 돌리기 시작합니다.      


학교 공부는 어떨까요? 지식을 통해 지혜를 얻는 공부를 하고 있을까요? 학교 학업 성적이 뛰어나면 삶에서도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도 좋을까요? 역설적이게도 그 반대가 참인 듯합니다. 실제로 입시전문가들은 생각을 고민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교사의 내용을 잘 듣고 가능한 “그대로” 요약해서 정리하고 암기할수록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대학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층 연구한 교육탐사 프로젝트의 결과를 담은 책,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은 마주하기 매우 불편한 진실을 밝힙니다. 서울대생들을 대상으로 학점과 학습법의 관계를 폭넓게 조사해보니, 학점이 높은 학생들일수록,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말씀을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그대로 적는 노트필기 학습법으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수용적 학습태도를 가진 학생들의 학점이 비판적 학습태도를 가진 학생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결국,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서도 생각하지 않고 배운 것을 그대로 암기해서 따라 말해야 높은 성적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주어진 답을 찾는데 최적화된 교육을 받는 아이 중에서 소위 도가 튼 아이들이 최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고, 입학해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공부해 사회에 나옵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저자의 생각을 찾는 공부를 하며 시험형 인간으로 크는 우리 사회 현실.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지식과 사고력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우리는 지식만 있어요.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만 키우고 있는 거죠. 깊이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 교육 탓에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의미 안에 녹여내지 못해요.”     


내 아이가 우리나라 최고 명문이라고 하는 서울대에 입학한다면 물론 기쁠 겁니다. 거기서도 최고의 학점을 받으며 장학금 받고 공부한다면 아파트 단지에 플랭카드는 못 걸어도 속해있는 모임마다 한턱내느라 그나마 빈약한 턱이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 아이가 자기 생각을 버리고, 비워서 오직 교수님의 말을 녹음된 음성파일 마냥 그대로 따라 하는 일을 소위 공부랍시고 해야 한다면 글쎄요, 정말 경사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판적 사고의 싹을 잘라 다른 사람의 사고를 그대로 요약하고 외우는 데 전문가가 된 아이들은 과연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한 걸까요? 인생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 맞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고학년이 되었을 때도 성적보다 사고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간 큰 엄마로 남아있을지 지금 장담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노력할 겁니다. 아이가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연습을 통해 사고력을 키우는 일은, 세상 그 어떤 지식을 꾀꼬리 같이 읊어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판단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해 의미를 찾으면서 사고력을 훈련하며 살기 원하는 저는, 질문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건, 바로 우리 아이들의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믿으니까요.      

그래서 자주 물어보려고 애쓰는 질문이 있습니다. “글쎄, 네 생각은 어떠니?”라는 질문입니다. 짧은 질문이지만 이 말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먼저, 앞부분에 “글쎄”라는 감탄사는 아이에게 이런 의미를 전달합니다. “엄마가 정답을 갖고 있지 않아. 엄마도 잘 몰라.”라는 어감이 전해집니다. 그리고는 “네 생각은 어때?”라고 덧붙여 물어봅니다. 자녀의 의견을 물어본다는 행위는 곧 “더 중요한 건 네 생각이야. 네 의견을 말해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엄마라고 해서 모든 문제의 답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가장 중요한 건 자녀의 생각이니 생각하라는 적극적인 요청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용돈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용돈을 받으면서 아이는 무척 들떴습니다. 이제 자기가 쓰고 싶은데 돈을 쓸 수 있으니 당연합니다. 용돈을 손에 쥔 아이는 처음에는 학원 마당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 빼먹는데 열심을 냈습니다. 오늘은 이 음료수, 내일은 저 음료수, 가끔 핫초코 등등 선택의 폭이 다양하더군요. 그러다가 학교 앞 문방구에서 ‘불량식품’ 사 먹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학교 앞에는 왜 그렇게 불량식품 전문매장이 생기는 걸까요? 큰애는 개당 3~400원 하는 불량식품을 골라 먹는 기쁨을 맘껏 누리고, 친구한테 과자도 사주었다며 자랑했습니다. 삼겹살 젤리, 아폴로, 거봉젤리 등등 형형색색의 소확행에 얼마 안 되는 용돈은 금방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처음 용돈을 줄 때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평아, 엄마가 1주일에 1000원씩 한 달에 4000원 용돈을 줄 거야. 일주일마다 1000원씩 줄까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줄 때 4000원을 줄까?”

탁상 달력을 넘겨 가며 한참을 이야기 나눈 끝에 아이는 한 번에 4000원 받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얼마 후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용돈 지갑은 텅 비었습니다. 아이는 금새 다음 용돈은 언제 줄지를 물었고, 한 번에 가진 돈을 다 쓰면 남은 시간 동안은 간식이 사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 어렵게 되니 용돈을 잘 분산해서 쓰라고 제안했습니다. 큰애는 이번 달에도 텅 빈 지갑으로 2주를 버텨야 합니다. 사실 이번 달은 외할머니가 주신 특별용돈까지 있었는데 말입니다. 규모 있는 소비생활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 어른들도 어려우니 이제 처음 용돈을 받아보는 아이가 겪는 일은 당연하지요. 다음 달 용돈을 주며 저는 다시 한번 물어볼 겁니다. 1주일마다 받을 건지, 아니면 지금처럼 한달에 한번 받는 게 더 좋을지를 다시 판단해보라고 요구할 겁니다. 지갑에 돈이 있으면 금방 써버리기 쉬우니 한 달 동안 고른 소비생활을 위해서는 1주일마다 적은 돈을 받는 방법의 유익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이야기할 겁니다. 비교해서 한달 용돈을 한 번에 받으면 어떤 점이 더 좋은지도 이야기 나눌 겁니다. 그리고는 용돈 받는 방법을 선택하라고 다시 물어볼 겁니다. 과연 큰 아이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벌써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능력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글쓰기를 능력을 위해 아이에게 글쓰기 연습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감정을 설명하는 감정사전의 어휘를 하루 하나씩 정해서 그 뜻을 필사하고 덧붙여 큰애가 해당 감정을 느꼈던 경험을 적게 하는 방식입니다. 예전에 읽은 글쓰기 책에서 접한 방법을 따라 하는 건데, 유익함이 매우 큽니다. 일단, 필사라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배우기 때문에 아이가 혼란스러워하는 띄어쓰기나 철자를 자연스럽게 따라 하며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의 감정을 직접 적는 부분에서는 엄마가 미처 몰랐던 아이 마음이 나타나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이해도 커지는 장점도 있습니다. 마음사전 쓰기를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마침 엄마가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수업하기 위해 외출했다 돌아와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잠깐 돌보미 이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엄마와 다시 만나다 보니 알림장과 숙제를 확인하고, 글쓰기까지 확인하다 보면 취침 시간이 뒤로 밀려 너무 늦어졌습니다. 당연히 아이들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했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글쓰기를 학원 방과 후 시간에 하고 오면 좋겠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단호하게 그건 싫다고 하는 큰애에게 다른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엄마가 수업 끝나고 오기 전에 해놓으면 좀 더 일찍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아이는 그 방법을 택했습니다. 엄마가 돌아오기 전 시간을 이용해서 글쓰기를 마치겠다고 한 큰애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물론 가장 힘든 부분인 자신의 경험 적는 부분은 왕왕 빼놓지만 말입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이런저런 시행착오의 연속입니다.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않으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특정 항로가 정해진 인생은 없습니다. 경험을 통해 매 순간 경로를 수정해가며 전진하는 게 인간의 운명 아닐까요? 그래서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제가 아무리 아이들을 사랑해도 그 판단까지 제가 해줄 수는 없는 일이고, 또 대신해줘도 안 됩니다. 그건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 사고할 기회를 빼앗는 잔인한 행동입니다. 제 생각에 큰애의 글쓰기는 학원 방과 후 여유시간에 하는 게 가장 합리적으로 보였습니다. 저녁 시간, 그것도 엄마가 없을 때, 돌보미 이모님이 동생과 큰애를 함께 봐주셔야 하는 시간에 엄마가 오기 전까지 미리 글쓰기를 한다는 건 분명 더 어려워 보입니다. 일과 중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글쓰기 연습이 밀리지 않는 것을 최대 목표로 둔다면 별로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무리 없이 당장 일정을 소화하는 결과보다 그 목표를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아이 스스로 직접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자신이 판단하고 실행하면서 시행착오를 경험할 때 일정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생깁니다. 큰애는 방과 후 학원에서는 놀고 싶다는 의사를 아직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저녁 수업 마치고 돌아오기 전까지 꼭 해놓겠다는 약속을 그럭저럭 지키고 있기에 저도 격려하며 반응합니다. 만약 저녁시간에 글쓰기가 더 힘들어지면 저는 다시 질문할 겁니다. 장단점을 비교해서 판단하라고 요구하는 질문을 계속할 겁니다. 아이의 생각은 어떤지 또 물어볼 겁니다. 

“글쓰기 하는 시간을 잘 지키려면 언제 하는 게 좋을까? 평아, 네 생각은 어떠니?”     


아이들은 기대한 만큼 반응합니다. 사고하기를 기대하며 질문하면 아이들은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주체적 판단력을 키워주는 마법의 두 마디, “글쎄, 네 생각은 어떠니?”. 질문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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