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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Dec 11. 2021

계란을 좋아하는 B를 위한 키토 김밥

B를 위한 남자 요리

오늘은 휴가다. 휴가가 좋은 이유는 휴가이기 때문이다. 아침을 좀 더 시간을 투자해 만들 수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가만히 뭐 먹지 생각해보다 냉장고에 있는 여러 가지 재료들과 어제 잠깐 봤던 인스타 요리 계정의 레시피가 생각났다. 그렇다. 계란이 주가 되는 이른바 키토 김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B를 깨우고 부엌에 갔다. 달걀 6개. 그리고 냉동고에 언제 넣었는지 모르겠는 김밥 김. 마지막으로 B가 먹고 싶다고 해서 이번 주에 만들어 먹었던 오징어채. 키토 김밥을 위한 재료 끝.


달걀 6개 남았는데 탈탈 털어서 지단을 만들 거다. 소금이나 후추를 좀 칠까 하다가 간은 어차피 오징어채가 담당할 거니 패스.


달걀 6개로 지단 크게 2개를 만들어 볼 거다. 두께를 적당히 하는 게 좋은데 나중에 김밥 쌀 때나 먹을 때 도움이 된다고 신빙성 없는 김밥학 박사가 알려줬다.


뒤집기 실패. 뭐 그렇지. 어차피 커팅할 거라 괜찮다고 나의 인생을 위로해본다.


언젠가 김밥을 먹자고 하고 주말에 김밥을 만들어 쌓아 놓고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아무도 찾지 않은 슬픈 김. 냉동고에 오래 있었던 김밥 김은 살아있나 죽어있나 계속 인공호흡을 했다. 검색을 해보니 한번 프라이팬에 구우면 좋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밥은 햇반 작은 공기 1개만 들어간다. 아 밥이 들어가긴 했구나 하는 정도만 넣는다. 밥에 소금 약간 참기름 약간 넣고 조물조물.


이제 본격적으로 말아보자. 밥을 얇게 김에 펴주자. 저번 김밥에서는 B가 셰프였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하며 집중하고 있다.


진미채 볶음을 넣어준다. 더 넣고 싶지만 계란 폭탄을 넣을 거라 양 조절을 잘해주자.


원래는 계란 지단을 얇게 잘라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귀찮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대충 잘라 넣었고 그것은 나중에 있을 대재앙의 씨앗이 되었다.


오! 말렸다. 말리긴 말리는구나. 내 인생만 말리는 게 아니라 김밥도 말린다는 것을 오늘 아침에 깨달았다.


크기를 조금 다르게 해서 키토 김밥 2줄이 완성됐다. 원래 바로 잘라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김이 약간 젖어서 칼이 들어가니 찢기듯이 잘려서 내용물이 폭파되었지 때문이다. 계란 지단이 두꺼운 것도 한 몫했다.


미안하다. 못난 실력의 나를 만나 이렇게 슬프도록…그래서 더 이상 자르지 못했다.


이게 최선이었다. B가 이 비주얼을 보더니 오 하면서도 이거 그냥 먹는 거야?라고 충격을 받았다. 사진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크기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김밥 김의 상태가 약간 아쉬웠다. 아침에 후뚜리 마뚜리 하기에는 한 번쯤 해볼 만한 음식이긴 하다. 다음에 다시 도전해볼 예정.


B의 총평 : 먹을 때 입이 찢어지는 줄 알았는데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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