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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Mar 18. 2024

베이비 로또는 합법입니다만

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1억 원입니다!


복권추첨식장의 스포트라이트가 번쩍였다. 카메라 세례가 이어졌다. 2031년 역사적인 순간, 이라고 기자들은 기사 야마를 잡았다. 이석화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출산 장려 로또 법안의 첫 효력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출산율 0.4를 기록한 해였다.


A전자의 김병헌 과장 내외가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김과장이 아내에게 조용히 말했다.

“다행이야. 1억원이면 아이방은 꾸밀 수 있겠어.”

“당신 요즘 성과급도 줄었는데, 요긴하겠어요. 저번 총선 때 이 의원 당 뽑은 덕택이죠.“


김과장은 한숨을 돌렸다. 대기업을 다닌다고 하면, 다들 여유있는 줄 안다고 했다. 억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커뮤니티에 50억 100억 자산 인증하는 사람들 보면 그저 가슴 한켠이 꽉 막힌 것처럼 주먹으로 턱턱 치게 되는 것이다. 주먹은 물론, 살짝 쥔 새주먹이다. 그래. 박탈감은 아니다. 질투와 시기, 같은 것도 아니라,


무조건 반사 같은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타인은 나라는 거울을 통해 반드시 반사시켜야 하는 존재다. 이게 예전에는 미덕이라고 들었다. 적어도 김과장 어릴 때는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비추다보니 사라지건 김과장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딩크족을 강제 탈출하게 됐고, 억 단위 넘어가는 양육 계획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차였다. 가족복지이민여성남성부 장관은 김과장에게 1억 원이 크게 적힌 종이 상패를 건넸다. “웃으세요“ 김과장은 최근 10년 중에 가장 해맑게 웃었다. 1억 원 밑에는 작게 세금 별도, 라고 쓰여있는 건 물론이다.


복권추첨식장의 주인공은 김과장 뿐 아니었다.

“두 번째는 이번달 출생 신고하신 박활린 님!“


박씨는 휴지 한 박스를 들고 멍했다. 사람들은 웃었고, 박씨는 아내와 함께 카메라 세례를 맞으며 눈을 깜박였다. 휴지 한 박스의 값은 그가 다니는 중소기업의 값이었다.


“젊은 사람들, 구직을 포기할지언정 이런데 오려고 하지를 않아.”

“채용 공고는 계속 올리고 계시죠?”

“올려봤자야. 그래서 자네 같은 사람이 우리 회사에 진짜 필요해. 필요한 사람이야.”

“감사합니다. 사실 이번에 아내가 출산을 하면서 지출이 많이 늘었는데 제 연봉을…”

“나도 자네 생각 많이 하고 있어. 미안한 마음이야. 그런데 회사 사정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아. 이렇게 힘든 적이 없어.”

그랬다. 회사는 실제로 힘들었다. 박씨는 그걸 너무 잘 알아서 대표에게 무리하기 요구하지 못했다. 아내에게는 이번에도 동결이야, 라는 말을 읖조리고 그런 박씨를 아내는 위로했다. 그런 것이 익숙했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첫 직장을 대기업에서 하느냐, 중소기업에서 하냐가 인생의 난이도를 가른다. 박씨는 청년들이 왜 취직을 미루면서까지 대기업을 가려고 하는지 너무 잘 안다. 그리고 지금, 그걸 실감하고 있다.


시계를 뒤로 돌려 출생율이 점점 떨어져 0.7을 찍었을 2024년, 기업들의 출생 육아 복지에 대해 정부가 세금을 물지 않겠다고 공표한다. 어떤 건설회사가 출산한 직원에게 무조건 1억 원을 주었던 것도 화제가 됐다. 김과장 회사에서는 <레디 아버지>라는 복지가 생겼다. 육아휴직을 2년까지 유급으로 할 수 있었다. 이게 반응이 좋았다. 총선을 앞둔 정부는 국민 반응에 예민했다. “세금 받고 지원금까지 더블로 가!”라고 누군가 말하고 누군가 덥썩 물었다.


기업에 대한 차등 출산 장려 지원금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 선봉에 이 의원이 앞섰다. 그는 저출생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이제까지 한 건 지시 뿐이었지만, 이제는 뭔가 실적을 만들어야 했다. 그는 어느 연구 결과를 들고 와선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국가 재정은 무한정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필요한 곳에, 적절한 곳에 써야 합니다. 출산 장려 지원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복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별 복지하라고 하죠. 그런데 출산이 복지인가요? 저는 다르다고 봅니다. 이건 선택입니다. 선택이자 인내이고 고통이면서 감내해야 하는 어떤 과정이죠. 이걸 선택한 분들에게, 그리고 그 선택을 응원하기 위해 지원금을 드리는 겁니다. 지원금은 좀 더 아이를 잘 기르고, 잘 양육하고 여력이 있는 집으로 가는 해요.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어요.“

그의 발언은 파장이 있었지만, 며칠 뒤 가라앉았다. 언론이 그럴듯한 프레임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저출산, 상위 계층의 출산율에 달려”

라는 사설이 나온 뒤, 이 의원 정책에 더 힘이 실렸다. 우리 나라를 먹여살리는 A전자 대표를 걱정하는 것처럼, 우리 나라의 생산력을 앞으로 든든히 받칠 상위 계층의 출산율이 더없이 중요하다는데에 여론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분명 나의 삶과는 상관없지만. 박씨 같은 사람과는 상관 없는.


"맞습니다. 저소득 가정에 아이를 낳자고 강요할 순 없습니다. 부자들한테 혜택을 주면, 가난한 이들도 혜택이 돌아갈 거예요. 그게 바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입니다."


이 의원은 물론 자녀가 셋이었고, 그 스스로가 상위 계층이었다. 그렇게 정부는 대기업과 차별적으로 중소기업에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소액의 장려금만 배정했다. 대기업 직원들에겐 현금 수천만원이 돌아갔지만, 동네 구멍가게 주인 아이는 면도기 1개, 중소기업 사무직 아들에겐 치약 하나, 공장 아저씨 딸에겐 10만원 상품권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불평했지만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다가온 총선에서는 이 의원 당선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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