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통장과 미니멀리즘 사이의 간극

결핍을 힐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

by Astro bits

현재 우리 집 계좌는 오랫동안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다.

수입으로 벌어들이는 돈보다 고정지출로 나가는 돈이 더 많다.

마이너스 가계를 빠져나오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다.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거나.

둘 중 나는 지출을 줄이는 데에 더 마음이 갔다.

어떻게 하면 지출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보다

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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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부자다." 태국 속담, 퀴스텐마허와 자이베르트의 책 '단순하게 살아라' 중 글귀




비록 우리 집 수입은 제한되어 있지만

그 수입 안에서 절약으로 돈을 남길 수 있다면

또 충분히 그 생활이 편안하다면

그 또한 여유로운 삶이 아닐까?


오늘 아침, 남편과 같이 이에 대해 고민해 봤다.

1년 넘게 그대로 내고 있던 전기세와 통신료를 확인하니,

불필요하게 새나가는 돈이 꽤 있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충분한 만큼 쓰기로 했다.

전기회사도 더 낮은 요금을 제공하는 곳으로 바꾸고,

핸드폰 플랜도 낮췄다.

시간을 들여 바꿔놓으니 한 달 고정지출비용이 60불만큼 줄었다.

60불이면 쌀이 4kg, 계란 72알, 식빵은 15 봉지.

이렇게 환산해 보니, 결코 푼돈이 아니었다.


외식을 줄이고 집밥을 차려먹는 일은 이미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다.

남편이 친구를 통해 저렴하게 돼지고기와 양고기를 대량으로 사 온 덕분에

냉장고는 어느새 고기로 가득 찼다.

이 재료들을 냉장고에 모셔두고 밖에서 다른 음식을 사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냉장고 속 재료들을 다 써 보자."


재료를 꺼내 이것저것 조합해 음식을 만드는 일이 재밌었다.

챗지피티의 덕도 많이 봤다.

재료들을 나열하면

친절하게 그에 맞는 메뉴와 레시피까지 알려주었다.



내친김에 질러봤다.


"생활비를 미리 1주일 단위로 생활비 봉투에 담고 거기서만 쓰면 어떨까?"


"한번 해봐, 그래서 우리 집 일주일 생활비 목표가 얼만데?"


"일주일 동안 80불, 주유, 식비, 외식 다 포함해서."


남편은 헛웃음을 지었다.

나도 말해놓고 민망했다.

현실적으로 생활 가능한 버젯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버젯 안에서 쓸 수 있는 돈이 그 정도인 건 사실이었다.

의식하지 않고 쓰다보면 마이너스 금액은 점점 커져만 갈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제야, 외면하고 있던 사실 하나가 또렷해졌다.


지금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수입을 늘려야 해.



나에게 생업이란 애증의 대상이다.

생을 위해 업으로 삼고 있지만

동시에 내게서 에너지와 가족들과의 시간을 앗아가는

밉지만 그렇다고 놓을 수도 없는 존재.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을 온통 채우고 있던 단어는 '직장'과 '번아웃'이었다.

그런데 현재, 그보다 더 큰 문제를 마주하고 나니

그 고민들은 너무 작은 문제처럼 느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일이었다.


미니멀리즘과 절약이란 단어들은

생각만으로도 내게 편안함을 주었다.

생활비를 아끼며 소박하게 사는 일이

내게는 좋은 물건을 소비하는 일보다 더 많은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결핍이 스며든 미니멀리즘은 결코 내게 행복만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선택지 없이 부족한 삶과 부족함을 선택하는 삶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마이너스 통장과 미니멀리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했다.

미니멀리즘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고스란히 누리고 싶다면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좀 더 많이 하고 수입을 늘리는 일이었다.



“이제, 우리 집 마이너스 통장을 다시 플러스로 돌려놓자.”


내 머릿속을 떠돌고 있던

생각들이 한 곳에 모이더니 이내 분명해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힘내서 생업에 집중해 보자.

그리고 절약하며 살아보자.

라고 이내 다짐했다.




오늘 오후,

남편이 인터뷰 본 곳 중 한 군데에서,

다음 달 초부터 단기지만 일해 줄 수 있겠냐는 전화를 받았다.

원하던 정규직은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반가워서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눈앞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터널 끝에 닿아 있겠지.

오늘도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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