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삶은 때때로 고통의 얼굴로 자비를 건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애석하게도 내가 경제적으로 여유롭다고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한국에서 살던 시절, 보일러를 온 집에 틀어놓을 여유가 없어
처마 밑에 고드름이 생기던 추운 겨울에 거실에만 보일러를 튼 채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했던 날들이 생생하다.
이민을 온 이후에도 한동안 사정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를 따라 매일 밤 같이 묵주기도를 드리며
제발 우리 집 사정이 좋아져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거나,
우리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던 적도 있었다.
어두운 밤, 노르스름한 빛을 내는 스탠드와 그 옆에 인자하게 손을 내밀고 계시던 성모 마리아상,
바싹 마른 손가락으로 묵주를 계속 돌리시던 엄마의 손가락.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나의 경제적 차이를 체감하며
왜 우리 집은 이만큼밖에 살지 못하지?
라며 우울해하곤 했다.
그러던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있었다.
마치 타임 슬립을 한 듯,
나는 그때의 엄마처럼, 내 아이들에게 여유 없이 빠듯하게 생활하는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삶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가난의 굴레가 마치 내가 떨쳐 낼 수 없는 카르마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가졌는지 깨닫게 해 준 사건이 있었는데,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몇 주 되지 않았을 무렵 듣게 된
남편의 뇌종양 진단이었다.
몇 주 내내 계속되던 두통에 시달리던 이유가 뇌종양 때문이었다니...
그동안 힘들었을 신랑에게 너무 미안했고,
신랑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지 절망적인 마음만 들어 눈물만 나왔다.
그때 나는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2주가 채 되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걸까?
남편의 뇌에서 자라고 있는 종양은 악성 종양이 아니라
빠르게 자라나지도 않고, 다른 곳으로 전이도 되지 않으며
몇 십 년에 걸쳐 천천히 자라나는 종양이라고 했다.
그리고 항암 치료에 효과적으로 반응하여 결과가 좋은 종류의 종양이라고 했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남편은 1년에 걸쳐 종양 제거 수술을 두 번을 받아야 했다.
힘든 항암 치료도 18개월에 걸쳐 마쳤다.
항암 치료는 얼마나 독한 것인지
덩치가 산만한 남편이 항암 치료를 받고 온 후엔
기운이 쭉 빠져 잠만 내리 잤고, 입맛도 없어했다.
이제 힘든 시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어,
정기적으로 MRI 스캔으로 추적관찰을 받고 있는데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같았다.
"종양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네요. 하지만 커지지도 않고 그대로 현상 유지를 하고 있어요."
수술을 진행하며 남편의 종양의 위치가 뇌에서 언어 능력을 담당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감사하게도 수술 후에도 남편에게서 달라진 점이 없었다.
이 시점까지 오게 되니 지금까지 내가 남들과 비교하며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들,
특히 경제적인 여유로움은 더 이상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돈을 벌던 못 벌던 남편이 지금 죽지 않고 내 곁에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그래서 남편의 암 선고를 들은 그날은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처럼,
컴퓨터 프로그램의 디폴트 값처럼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그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앞서 언급했던 카르마가 다시 떠올랐다.
불교에서 이르는 '카르마'는 우리의 생은 지금의 삶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삶, 그 이전의 삶, 또 그 이전의 삶이 존재하며, 우리는 윤회를 통해 계속 삶의 굴레를 회전하고 있다고 한다.
이전의 삶에서 내 마음속의 미움이나 나의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음 생에서도 그 일은 해결될 때까지 계속 반복된다.
카르마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용서하고 감사하며, 선한 일을 베푸는 일.
미워하는 마음을 용서로 사라지게 만들고,
억울한 마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채우며 나의 악행의 굴레를 선한 일로 끊어버린다면
우리는 그제야 그 카르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게,
카르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늘에선 자비의 손길을 끊임없이 베푸는데
그 방법은 대게는 편하고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라, 힘든 역경의 모습으로 온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역경을 통해 감사하고 용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이 말은 힘든 일을 겪었던 내게 큰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최근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뉴질랜드는 요즘 잇따른 폭우로 북섬 여러 곳에서 홍수 피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어제 뉴스에서 타우랑가에 위치한 마운트 망가누이 캠핑장이 산사태로 인해 무너져
캠핑장에 있던 6명의 사람이 흙에 파묻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불과 몇 주전, 친정 부모님과 아이들이 다녀왔던 바로 그 캠핑장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소파에 앉아 깔깔대며 웃고 있는 두 아이들과
전화 통화로 일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부모님이 온전히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더 바랄 것 없이 그저 감사해야만 했다.
가난을 원망하고 노동의 고됨을 불평하는 나에게
삶은 이제 그만 네가 파 놓은 괴로움의 우물에서 벗어나라고,
네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라고 메시지를 보낸 듯하였다.
서두가 많이 길어졌지만
앞으로 절약하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고
내 마음가짐과 생활 방식을 돌아보며 브런치에 글을 쓴 요 몇 개월의 시간이
나에게는 많은 위로가 되었다.
여전히 일은 고되지만,
여전히 돈은 갚아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지만,
힘들거나 속상한 마음이 들 때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상기하고,
계속 찾아보는 인생 책의 한 구절처럼,
늘 그곳으로 돌아와 감사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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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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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까지 눌러 주신 많은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며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삶이 평안하고 감사와 행복으로 가득하길 온 맘으로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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