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대신 아이의 속도대로, 앞서가려 하기 대신 바른 방향으로 가기.
절약을 결심하면서 가장 절충하기 힘들었던 분야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었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을 줄이는 일은 자라면서 배우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아지는 그들의 기회를
빼앗아 가는 나쁜 엄마가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아이에게 돈을 쓰는 이유는 아이가 원하는 이유보다도 남들과 비교하는 나의 마음에 있었다.
큰 아이가 태어난 날, 인생 처음 ‘엄마’라는 역할을 받아 든 나는
기쁨과 함께 이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100점짜리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은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이의 발달 과정을 비슷한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기 일쑤였다.
한국에 사는 아이들은 문화센터에서 다양한 놀이로 두뇌를 활짝 깨우고 있을 텐데, 내 아이는 뉴질랜드라는 낯선 나라에서 운전도 못 하던 엄마 때문에 집에서 제한된 놀이만 하며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조바심과 이유 모를 분노가 들기도 했다.
운전면허를 딴 후부터는 그동안의 한을 풀듯,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 찾아다녔다.
페이스북 광고에서 본 오감놀이 센터에 가기 위해 한 시간씩 운전해 가기도 하고,
중고 장터에서 몇십 권의 유아 전집을 들여와 거실을 책으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똑똑하게 키우고 싶다는 마음에
내 체력과 돈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곧 Primary school에 입학하는 만 5세가 되었다.
Orientation 시간에 Primary school 선생님은
“아이들은 각자 배움의 속도가 다르니, 1부터 10까지 셀 줄 알고 자기 이름만 쓸 줄 알면 충분하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져 주눅이 들까 두려웠다.
나는 결국 동네 구몬 학원까지 찾아갔다.
나는 학교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는 최악의 엄마였다.
구몬 선생님은 간단한 레벨 테스트 후, 덧셈·뺄셈의 기초도 모르는 우리 아이가
심각하게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내 불안을 더욱 키웠다.
그렇게 공포를 연료 삼아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센터에 가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다.
돌아다니며 지도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엄마인 내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엄격했다.
아이는 학원에 가는 날이면 한숨을 쉬었다.
결국 아이의 등원 거부로 구몬은 1년도 채 하지 못하고 끝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의 긴 인생에서,
말이 조금 늦게 트이고 한글을 또래보다 늦게 떼었다는 게 뭐 그리 대수였을까?
큰 아이는 이제 곧 중학생이 된다.
10년 넘게 아이를 키우며 나의 교육 가치관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제 나는 아이에게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걸지 않는다.
물론 좋은 성적을 받아 온다면 기쁘겠지만,
반대의 상황이 오더라도 실망과 잔소리로 아이를 몰아붙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비교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그 결심은 훨씬 지키기 쉬워진다.
국영수 과외는 아이가 원하지 않는 이상시키지 않기로 했고,
지금은 본인이 좋아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만 시키고 있다.
대신 나는 아이가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태도에 더 집중하고 싶다.
숙제나 시험 준비처럼 스스로에게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해내는 자세.
시험이 다음 날인데 공부를 소홀히 하거나,
숙제를 끝내지 않은 채 다른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방향을 잡아줄 것이다.
그것은 잔소리가 아니라, 삶의 기본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이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늘 숙제를 기한보다 일찍 끝내놓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성공의 기준을 늘 남들과의 비교에서 찾았다.
주변 사람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열망이 내 안을 꽉 채웠고,
그 사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은 소홀했다.
하지만 진짜 성공한 삶이란 남들보다 앞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아 가고 있다.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긴 호흡의 여정이기에
지금 남보다 조금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해서 성공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나는 아이가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보다 빨리 가는 것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바르게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모건 하우젤은 그의 책 The Art of Spending Money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로서의 고귀한 목표는 성공한 아이를 키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성공은, 아이가 스스로 성공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신감을 내면에서 키울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결과여야 한다.”
그가 말하는 성공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성공이 아닐 것이다.
아이가 바라는 성공의 척도가 더 높은 연봉이나 더 큰 집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얼마나 만족하는가,
그 일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사회에 얼마나 의미 있게 기여하는가이길 바란다.
절약을 시작한 뒤로 아이의 소비 습관도 많이 바뀌었다.
우리도, 아이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기죽지 않게 하려는 소비는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이가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우리는 바로 사주기보다 몇 주 정도 생각할 시간을 둔다.
“그게 정말 가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왜 가지고 싶은가?”
그러면 아이는 하루 종일 재잘거리며 이유를 설명한다.
어떤 것은 이야기하다 흥미가 식어 사지 않게 된 경우도 있고,
다른 대안을 찾아내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것은 한 달이 지나도 관심이 식지 않은 경우도 있다.
최근 아이의 관심사는 발가락 양말과 스케이트보드였다.
그리고 그 관심은 한 달 넘게 지속됐다.
아이는 구글에서 가격을 비교하고, 왜 어떤 제품이 더 싼 지 분석했다.
너무 싼 제품에는 이유가 있다는 아빠의 조언에
제품 설명을 꼼꼼히 읽으며 제품의 질도 생각했다.
아빠 친구 아들의 낡은 스케이트보드를 얻어 체험해 보며
내가 정말 스케이트 보드를 오랫동안 타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했다.
인터넷에서 리서치하며 자신에게 맞는 바퀴와 보드 넓이를 연구했다.
그리고 원하는 모델을 종이에 정리해 우리에게 설명했다.
그 정도로 좋아한다면 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그렇게 어렵게 얻은 만큼 그 물건을 더 소중히 다뤘다.
나는 아이에게 무조건 아껴야 한다고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좋아하는 것에는 현명하게 돈을 쓰고, 자신의 돈을 깊이 생각하며 사용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어떤 물건을 구매하기 전, "이것이 과연 내 삶에 오래 머물며 애정할 수 있는 물건인가?"를
스스로 물어보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한다.
모건 하우젤의 말처럼 괴로울 만큼 무조건 아껴 사는 삶이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검소하게 살 줄 아는 능력은 인생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다.
지금 내가 하는 소비가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인지 판단할 줄 아는 지혜도 마찬가지다.
검소한 삶을 고민하다 보니,
결국 아이가 어떤 삶을 살길 바라는 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절약에만 집중해 정체된 삶을 사는 것은 돈을 펑펑 쓰기 위해 더 많이 버는 삶만큼 위험하다.
하지만 절약을 하나의 ‘라이프 스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스킬을 가진 사람의 삶은 위기와 회복이 반복되는 변화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견고해질 것이다.
내 아이가, 그리고 다음 세대를 살아갈 아이들이 살아가며 이런 지혜를 쌓아가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소중히 다룰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