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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기와 도보 출근이 가져다준 작은 행복들

같은 결의 기쁨인 절약과 환경보호. 작은 실천이 의미 있는 결과가 되길.

by Astro bits

환경 운동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절약을 실천하는 작은 습관들이 결국에는 환경보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 천천히 깨달아 가고 있다.

비록 의도해서 시작한 일도,

대단한 결심도 아니지만

일상 속에서 하나씩 바꿔 나간 작은 변화들이

나와 내 가족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그중 첫 번째 변화는 바로 우리 집 텃밭이다.
야채들은 아무리 냉장 보관을 해도 그 수명이 워낙 짧아 다 먹지도 못한 채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냉장고 깊숙이 밀려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고 방치했다가 말라비틀어져 버린 브로콜리, 샐러드 만들겠다고 사두고 기한 안에 다 먹지 못해 갈변되어 버린 양상추 등등.

분명 내가 돈을 지불하고 산 것들인데 그대로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늘 아까웠다.

상한 야채들을 버릴 때, 마치 돈을 그대로 내다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게다가 뉴질랜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식료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크게 올라

서민들의 장바구니가 날로 가벼워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가격이 오른 품목은 야채와 과일이다.

이들은 기후와 물류 사정에 따라 가격이 널뛰기를 하고, 조금만 신선도가 떨어져도 금세 버려야 했다.


부부이자 공동 집필가이자 조경 전문가인 애니와 애덤의 책 The Art of Frugal Hedonism에서는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야채가 비싼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 줬다.

그들은 우리가 사는 야채 한 봉지의 가격에는 단순히 작물의 생산비만 포함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유통 과정에서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냉장, 보관, 운송 비용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매에서 소매에 이르기까지, 최종 소비자 입장인 우리는 결국 이 모든 비용이 포함된 비싼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애니와 애덤은 농사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일지라도 꼭 직접 녹색 채소들을 키워 보라고 권했다.

키우기 힘든 과일이나 뿌리 식물이 아닌 이파리가 초록색인 녹색 식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키우기 쉽다고 했다.

상추, 깻잎, 파, 허브 등등.

이들은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식물들이 대부분이며, 큰 공간도 필요 없어 작은 텃밭이나 베란다에서도 충분히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직접 키운 작물은 마트에서 산 야채보다 영양소와 맛도 더 풍부하며,

무엇보다 농약에 오염되지 않은 유기농이기 때문에 건강에도 이롭다.


그들의 친절한 권유에 식물 잼병이인 나 역시 왠지 꼭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씨앗을 심고, 그것을 길러내서 수확한다는 상상은 해본 적 없었는데,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니 꽤 설레는 일이었다.

필요한 만큼만 바로 마당에서 따와 쓸 수 있으니 냉장고에 방치해 버리는 일도 없을 터였다.


이번 봄에는 그래서 용기를 내어 오랫동안 보관만 해 놓았던 고추, 상추, 깻잎, 파 씨앗을 뿌렸다.

친정 부모님과 친구가 준 깻잎과 아욱도 옆에 더 심고,

마트에서 산 파의 뿌리를 잘 살려 그대로 땅에 심어 보기도 했다.

또 늘 마트에서 늘 눈을 사로잡았지만 망설이기만 했던 ‘living herbs’ 중 요리할 때 자주 쓰는 고수도 한 단 사서 흙에 심어 주었다.

그리고 비 오는 날만 빼고는 초저녁 매일 나가 과하지 않을 만큼만 물을 주었다.

그 일은 이내 나의 작은 하루 일과가 되었다.

물을 주며 식물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몇 분이 생각보다 내게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처음 새싹이 올라온 것을 보았을 때는

그 조그만 떡잎이 내가 뿌린 씨에서 나온 떡잎인지, 아니면 그냥 잡초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그저 그대로 두고 더 자라기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달 가까이 지나고 나니, 상추는 꽤 풍성하게 자라, 우리가 먹고도 남아 가족과 이웃에게 나눠줄 수도 있게 되었다.

깻잎은 아직 조금 더 자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깻잎을 쌓아놓고 삼겹살 파티를 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고수 역시 마트에서 사서 한 번에 큰 다발을 사야 해서 대부분 얼려 두기 일쑤였다.

그래서 싱싱한 고수를 먹을 수 있는 날은 오직 장 본 날 당일뿐이었는데,

이제는 필요할 때마다 바로 텃밭에서 잘라 쓴다.

조금만 잘라 써도 시간이 지나면 또 자라 있을 고수가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 같다.

파도 역시 마찬가지다.


식물 왕초보의 들쑥날쑥 텃밭. 상추와 깻잎, 파가 여기저기 섞여서 자라나고 있지만 내겐 여전히 소중한 식물들.
마트에서 사 온 파와 고수 심고 조금씩 잘라서 쓰고 있다. 자라나면 또 잘라서 쓸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물.
다 자라면 된장에 넣어 먹으라며 친구가 선물해 준 아욱 새싹, 그리고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는 아삭이 고추.

이렇게 내 생활에 작은 틀만 잡아줘도 삶은 더 풍요로워졌다.

절약을 위해 작은 루틴 하나가 생겼을 뿐인데, 내 삶은 더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내가 직접 키워 먹는다는 자부심,

버리는 음식이 줄어든다는 안도감,

거기에서 오는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비슷한 결의 변화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출퇴근을 도보로 하는 것이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정확히 걸어서 30분이 걸린다.

운동을 따로 시간을 내서 하려고 하면 귀차니즘이 발목을 잡는데,

어차피 일하러 가야 한다면

그 시간을 차를 몰고 가는 대신 걷는 시간으로 바꿔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에 최소 세 번, 총 1시간의 걷기를 실천한 지 1년이 넘었다.

번아웃 때문에 힘든 날에도

걷는 동안 마음이 차분히 안정되었다.

차를 덜 쓰게 되니 주유비를 아끼게 되고,

병원 주차비도 내지 않아도 되어 절약 효과도 있다.

아주 사소한 선택이지만 내 건강을 위해 좋은 선택을 했고,

동시에 돈도 절약했다는 사실이 내게 오랫동안 잔잔한 기쁨을 주었다.


어느 겨울날, 이른 새벽 출근길 하늘.



이렇게 작은 루틴들이 차곡차곡 쌓인다면,

지금은 미비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큰 차이를 만들 것이다.

수평선에서 단 1도만 더 올라간 선이 결국엔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지점을 향하게 되듯,

꾸준한 저축이 복리 효과로 몇 배의 가치로 돌아오듯,

나의 작은 실천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가족의 삶을 더 단단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내 작은 행동들이 환경을 보호하는 데에도 조용히 기여한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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