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Part A. 우리 아이 도파민 줄이기 프로젝트.

심심함은 축복이다. 미디어로 잃어버린 아이의 시간 되찾아 볼까요?

by Astro bits

아이들에게 미디어 시청을 제한한 지 두 달이 되어 간다. 놀랍게도 별다른 부작용 없이 잘 따라주고 있다.
부끄럽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들의 미디어 시청에 관대한 엄마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너무 지쳐 있었고, 그럴 때 TV는 꼭 나 대신 아이를 봐주는 이모님 같았다.
그러다 곰인형처럼 소파에 멍하니 TV만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죄책감과 안쓰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자주 보기 시작한 시점부터 아이의 언어에 변화가 나타났다.


“Brah.”
“Zhuuuu!”

뜻도 모르는 신조어를 형에게, 그리고 나와 남편에게도 툭툭 내뱉었다.

밥 먹기 싫을 때, 씻기 싫을 때, 심지어 신이 날 때조차 그 단어들을 썼다.


또 다른 변화는 ‘돈’에 대한 관심이었다.
어떤 물건을 봐도


“엄마, 이거 비싼 거야?”라고 묻고,


유튜브 광고에서 본 장난감을 사달라며


“엄마는 내 엄마니까 나한테 선물해 줘야지!”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 시청을 제한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이와 저녁 시간 함께 티브이를 시청한 어느 날 때문이었다.

그날, 아이와 나란히 앉아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함께 보았다.
미국에 사는 세 가족이 나오는 채널이었다.
아들은 엄마 몰래 귀를 뚫고 와서 아빠에게 SOS를 보내고,
아빠는 엄마의 화를 달래기 위해 화장품을 큰 박스에 가득 담아 선물한다.

엄마는 과장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감동의 표현을 한다.
면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화장대에는 이미 다른 화장품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다음 편에서는 우울한 아들을 위해 부부가 방 하나를 미디어 룸으로 꾸며주는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최고급 컴퓨터, 음향기기, 벽 가득한 아이의 사진과 그라피티.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아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어른들 눈에는 제품 광고와 조회수를 위한 기획이라는 것이 금방 보인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조건 없이 최신 기기를 받는 TV 속 아이가 그저 부러울 뿐이었을 것이다.
이런 비싼 선물로 사랑을 표현하는 플롯에 길들여진다면,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자신에게 쓰는 돈의 크기로 판단할지도 모른다.
내 아이가 비싼 물건을 살 수 없으면 불행하다고 믿으며 살게 될까 봐 걱정이 됐다.


그날 이후 그 채널은 우리 집 블랙리스트가 되었고,
아이는 우리의 검열에 통과한 채널만 볼 수 있게 했다.
또 아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빼앗을 수 있는 미디어 시청은

저녁 시간 이후 30분만 시청할 수 있도록 규칙을 세웠다.


처음엔 아이가 견딜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날의 충격 때문인지 나도 단호할 수 있었고,
부모가 단호하게 규칙을 세우니 아이는 큰 저항 없이 잘 따라왔다.
TV 속 시끄러운 목소리가 사라진 집은 오랜만에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대신 나는 아이의 여가 시간에서 사라진 미디어를 다른 것으로 채워주어야 했다.

한동안 아이와 나는 레고를 가지고 자주 놀았다.
나는 레고 더미를 헤집으며 필요한 조각을 찾아주고,
아이는 설명서대로 만들거나 비슷하게라도 응용했다.
만들 수 있는 설명서가 다 끝나자, 아이는 혼자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Chinese towel, pirate’s boat, Sonic, 거미인간…



새로운 레고 박스를 사주지 않아도, 아이는 있는 조각들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아이가 상상력을 발휘해 창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작은 기쁨이 되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아이와 놀아주는 것은 나에게 지속 가능한 방식이 아니었다.
TV 없는 생활을 유지하려면, 아이가 혼자서도 잘 놀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일부러 레고 작품이 거의 완성될 즈음


“이제 엄마는 설거지하러 가야겠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아이는 여전히 놀다가 나를 찾곤 했지만, 나는 추임새만 해주고 내 할 일을 했다.

그 사이 아이는 형과 놀기도 하고,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심심하면 옆집 친구를 불러 집 앞에서 함께 놀았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가 예능 <가장 보통의 가족>에서 아들 레오와의 일상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는 아이와 놀아주려 애쓰지 않았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적절한 반응만 해줬다.

그는 아이를 일부러 심심하게 놔둔다고 했다.

아이들은 심심해야 비로소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가 바쁜 일상 속에서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소중한 것처럼,
아이 역시 방해받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유영할 시간이

꼭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심심하게 놔두었다고,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해서 죄책감 느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그 시간이 아이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TV 없이도 하루를 충분히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다.
미디어가 주는 빠른 도파민 대신,
주변에서 작은 즐거움들을 발견하며 천천히 세로토닌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미디어를 제한한 것은 아이의 정신 건강과 뇌 발달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소비에 대한 신념을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

미디어 속에는 아이들이 의식하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소비를 부추기는 요소들이 깔려 있다.


“이 장난감을 사면 넌 세상에서 제일 멋진 아이가 될 수 있어.”

“엄마, 아빠가 너를 사랑한다면 이걸 사주어야 해.”


아이는 이런 메시지를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데,

돈을 많이 벌고 비싼 물건을 살 수 있는 삶만이 성공이라 믿는다면,
아이의 마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공허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제일 좋은 물건을 산다 해도,
세상은 내일 또 그보다 더 좋은 것을 끝없이 내놓을 테니까.

그래서 부모는 흰 도화지 같은 아이의 머릿속을 무분별한 미디어로부터 지켜줘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서 삶의 목표를 물질적 소유가 아닌
내적 성장과 행복한 인간관계에 두게 되기를.
돈이 없을 때도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세상에는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그리고 그것을 지켜낼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keyword
이전 04화집에 손님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