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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손님을 초대합니다.

준비물은 정성 한 그릇과 담소 한 스푼. 초대의 본질에 관하여.

by Astro bits

비록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몇 안 되는 그들과 오랫동안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교 때 만나 눈물의 실습 시간을 같이 견딘, 전우 같은 친구,

일 하면서 선배 간호사로 만났지만 지금은 너무 좋은 멘토이자 롤모델이 된 친구,

서로에게 믿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육아 동지인 이웃사촌인 친구.

요즘 내 생활에서 내 삶을 따뜻하게 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은, 가족을 제외하고, 이렇게 셋이다.

나이도 인종도 각기 다르다.

한국이었다면 언니 동생, 혹은 선후배로 불렸을 사이지만,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그냥 서로를 친구라 부른다.

낯선 나라에서 이민자의 신분으로 살다 보니,

나이로 격식을 차리며 어려워하는 것은 버겁기도 하고, 이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선을 넘으며 허물없이 대한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편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큰 의미에서 친구라 말하기 충분하다.


그런 친구들과 가끔 서로의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 밖에서 만나기도 한다.

초대할 때는, 돈을 들여 비싼 음식들로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지 않는다.

집에서도 늘 해 먹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요리에 정성만 조금 보탤 뿐이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있어 집이 조금 흐트러져 있어도 이해해 줄 만큼 푸근하다.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체가 즐겁다.


초대의 본질은 오랜만에 서로의 마음을 마주하는 데 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응원해 주고,

다독여 주기 위함에 있다.


물론 만남에 고급스러운 음식이 함께 한다면 눈과 입이 즐거울 수 있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취향으로 그것보단

내 앞에 있는 그 사람과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는 것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10년 넘게 서로의 생일에 꼭 집에 초대해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대학 동창인 친구.

이젠 서로의 아이들도 많이 커서 같이 놀 수 있게 되었다.

슈퍼에서 산 작은 크기의 바질 페스토에 아보카도와 토마토, 파마산 치즈를 섞어 6명이 먹어도 충분할 만큼의 양으로 다시 만든다.

그리고 바게트 빵과 같이 내놓는다.

비교적 싼 가격의 부리또 용 랩 위에 케첩을 바르고

야채와 베이컨, 살라미, 샐러드 용 야채를 차례대로 올리고 마지막에 치즈를 얹어 미니 오븐에 피자로 굽는다.

재료비도 얼마 들지 않았지만 근사한 간식이 되어 친구의 손을 잡고 놀러 온 작은 손님을 만족시켰다. 오물오물 먹는 입이 귀여워 넋 놓고 보게 된다.

다 먹고 나서 소화도 시킬 겸 아이들과 같이 동네 놀이터로 향한다.

그렇게 소소한 하루를 함께 나누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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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나의 멘토이자, 선배 간호사인 일본인 친구.

간호사로써 배울 점이 많은 그녀.

그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큰 힘과 동기를 얻는다.

가족이나 남편이 100%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고충도

그녀에게 털어놓으면

그녀는 잘 이해해 주고 다독여 준다.

그런 그녀와 밖에서 만날 때면 우리는 단골 카페에서 플랫 화이트 한 잔과 스콘 하나를 주문한다.

가격이 부담스러운 브런치 대신 따뜻하고 좋은 향이 나는 스콘과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신다. 중요한 건 근사한 음식이 아닌 따뜻하게 오가는 대화이므로.

그녀와의 대화로 인해 나의 하루가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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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에 사는 나의 이웃사촌과도 2주에 한 번씩 서로의 집에 차를 마시러 놀러 오기도 하고 놀러 가기도 한다.

초대받은 날은 손에 쿠키 봉지 하나를 덜렁덜렁 들고 아이들과 놀러 간다.

그녀가 준비해 준 따뜻한 녹차와 내가 가지고 온 쿠키를 먹으며

같이 서로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종교에 관한 이야기도 나눈다.

서로의 행복을 비는 기도를 끝으로 헤어진다.

헤어지기 아쉬운 아이들은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트램폴린을 타거나, 스쿠터를 같이 탄다.


만약 사람을 만나는 데에 돈이 많이 든다면

지금의 내 상황으로는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만남을 피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나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피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지인들을 만날 때는 그런 부담이 없다.


최소한의 예의만 갖춘 간소한 음식뿐 이어도

애정의 손길이 담긴 음식과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나의 마음의 여유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의 다정한 귀가 있다면

그걸로도 따뜻하고 충만한 만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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