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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가의 절친, 냉장고와 집밥

가진 것보다 적게 원할 때, 행복이 찾아온다.

by Astro bits

절약을 마음먹고 냉장고를 더 자주 들여다본다.

쉬는 날, 자리에 앉아 일주일치 식단을 짠다.

식단을 짜기 전, 냉장고에 남아 있는 재료들을 둘러본다.


집에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요리를 만들고,
그 후에 정말 필요한 재료들만 장 보는 것이 나의 목표다.


오늘 저녁 메뉴는 냉장고에 있던 삼겹살과 야채 반찬이다.


남편이 삼겹살을 굽는 동안

나는 미리 손질해 둔 양상추와 적양파, 파프리카를 그릇에 담아 드레싱을 얹고,

요즘 제철인 부추를 나눠 반은 부추무침,

나머지 반은 손질 후 나중에 부침개 만들 때 쓰기 위해 냉동실에 보관한다.

전부터 보관하고 있던 쌈무, 무 생채를 같이 내어놓고 저녁 식탁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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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에 산 부추를 반으로 나눠 부추 무침을 하고, 며칠 후 남은 부추로 부침개를 부쳤다.
KakaoTalk_20251112_204052319.jpg 삼겹살과 야채 반찬으로 차린 저녁상

식사 후, 남편과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기 위해 팬트리에서 스팸을 꺼낸다.
반으로 자른 뒤, 절반은 얇게 썰어 구워 밥과 계란프라이와 함께 도시락에 담는다.
나머지 반은 잘게 썰어 냉장고에 넣어둔다.
다음날, 오므라이스에 쓰이기 위해 다시 소환될 예정이다.


사흘째 식단은 떡볶이.
남은 떡과 어묵, 양배추를 넣어 만들 예정이다.

나흘째는 한국 슈퍼에서 두부 한 모를 사 와,
반은 황태찌개에 넣고 나머지 반은 다음날 먹을 된장찌개용으로 남겨둔다.

시부모님이 한국에서 보내주신 황태가 빛을 발할 것이다.


가족들 도시락 메뉴는 샌드위치 위주로 짠다.
햄버거 패티와 양배추·계란 부침을 번갈아 샌드위치 속에 넣어준다.


식빵 두 봉지, 두부 한 모, 우유 한 통만 사면 일주일 식단이 해결된다.

써야 하는 돈은 대략 20불.


집에 있는 음식을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5일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

냉장고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진 사람인지,

얼마나 많이 사랑받고 있는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


예전에는 냉장고를 이렇게 열렬히 좋아하지 않았다.

냉장고 안은 늘 무언가로 가득했지만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고,

늘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 하고 돌아오면 피곤하니까 요리하는 대신,

집 근처 Takeaway 가게를 찾았다.

자극적인 맛에 홀려 정신없이 먹고 나면

소화가 안 돼 더부룩 해진 배를 두드리며 온 거실을 돌아다녔다.


요즘은 퇴근하자마자 씻고 나서 제일 먼저 부엌으로 간다.

소파에 앉기 전에 저녁을 미리 만들어 둔다.

쉬기 시작하면 시작이 힘들어질 것을 알기 때문에

아직 직장에서 가져온 긴장감이 남아있을 때

휴식을 미뤄 두고 집에서 해야 할 일을 다 마친다.

일찍 저녁을 만들어 놓으면 저녁 시간 때는 데워서 먹기만 하면 된다.


저녁을 만드는 동안 아이들은 궁금해서 부엌을 기웃거린다.

큰 아이는 계란을 깨겠다고 하고, 작은 아이는 포크로 계란을 풀겠다 한다.

서로 자기가 더 하겠다고 아웅다웅 다툰다.


돈이 거의 들지 않는 식탁이지만

이 노력으로 아이들이 자라나고 남편이 힘을 낸다.

요즘은 가족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먹는 저녁 식사 시간이 늘 내 하루의 하이라이트다.


하루의 끝에 어제보다 더 비워진 냉장고를 보면

기분이 개운해진다.

값을 주고 산 재료들을 남김없이 소진하는 일은

내가 번 돈을 낭비 없이 썼다는 만족감을 준다.

음식 쓰레기조차 나오지 않고 싹싹 비운 그릇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환경 보호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했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나 오늘 잘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행복해지는 데는 그다지 많은 돈이 필요치 않다.

모건 하우젤은 그의 신간 "The Art of Spending Money"에서

아내의 할머니를 언급하며 말했다.

그녀는 사회보장급여가 유일한 수입원이어서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가난하지만,

하우젤은 백만장자들을 포함해 자신이 만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녀만큼 행복하게 삶을 즐기며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녀가 가진 것보다 더 적게 원하며 살았다.

큰 집도 큰 차도 필요 없었다.

그저 하루 종일 작은 집의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일만으로도

자신의 삶이 충만하다고 느꼈다.


행복의 크기는 기대치에서 내가 가진 것을 뺀 만큼이다.


그가 말했듯, 적은 돈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많은 돈이 필요 없다.

비록 지금은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지만

언젠가 빚의 속박에서 자유로워 졌을 때

나도 하우젤의 책 속 할머니처럼 소소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즈음,

돈 생각을 덜 하면 덜 할수록

우리 계좌 상황은 점점 더 좋아진다.

소비가 줄어드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우리 집 빚도 천천히 조금씩 줄어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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