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길

공허한 추측과 생산적인 추측 사이를 탐험할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by astrodiary

이제 어느덧 이 책을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빅뱅 우주론의 시작과 그 발전 과정에 관한 얘기는 지금까지의 글들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주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 앞에서 느끼는 꺼림칙한 기분까지 지워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론에서 얘기한 대로 '관측가능한'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성공적인 우주론은 빅뱅 우주론이다. 빅뱅이론이 가지고 있는 한계까지도 결국은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또 하나의 커다란 궁금증과 마주하게 된다.


"관측이 가능한지 아닌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우주 전체는 도대체 어떤 모양일까? 우주는 유한할까 아니면 무한할까?"


스케일만 다를 뿐 인류는 계속 비슷한 질문을 해왔다.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태양계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 은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이제 우리 우주의 생김새에 대한 질문이 남았다.


현재 관측되는 바로는 우주 공간은 평탄하다. 어떤 공간이 평탄한지 휘었는지와 같은 성질은 곡률로 표현되는 "기하학 개념 (geometry)"이다. 반면 공간의 "전체적인 모양"은 그 공간을 만드는 점 (0차원), 선 (1차원), 혹은 면 (2차원)들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따라 결정되는 "위상 기하학 개념 (topology)"이다. 똑같이 곡률이 0인 두 공간도 위상 기하학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공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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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은 무한이 뻗어 나가는 선이고 우측은 기다란 선의 양끝을 붙여서 만든 원이다 (양끝이 붙어 있는 접점은 잘 보이도록 점으로 표시하였다). 똑같은 1차원의 선이지만 선이 연결 상태와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이 둘은 다른 위상 기하학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이 두 가지 경우가 다른 위상 공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까? 바로 1차원 공간인 선을 벗어난, 2차원 공간에서 대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차원 공간에 살고 있는 존재 (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는 이 두 가지 경우를 어떻게 인지할까? 1차원 공간에 살고 있으며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에게는 두 가지 경우 모두 같은 평탄한 직선이다 (무한 직선 위를 움직이는 경우와 원둘레를 따라 움직이는 경우 모두 1차원 존재에게는 매 순간이 곡률이 0인 평탄한 공간이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하나는 무한하며 다른 하나는 유한하다 (다른 위상 공간이다).


현재 곡률이 거의 0으로 알려져 있는 우리 우주는 과연 무한할까 아니면 유한할까? 3차원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가 3차원 공간인 우주의 전체 모습을 이해하려고 하는 일은, 마치 위와 같이 1차원 공간 존재하면서 이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이 살고 있는 1차원 공간의 전체적인 모습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과 똑같다. 과연 1차원 공간에 살고 있는 존재는 위의 두 가지 경우 (똑같이 곡률 0인, 무한한 길이의 선과 원둘레를 이루고 있는 유한한 길이의 선)를 구분할 수 있을까? 잘 생각해 보면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2차원 공간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원은, 1차원 공간에 살고 있으며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에게는 아래와 같이 유한한 크기를 가지는 선이다 (아래 오른쪽 그림에서 유한한 길이를 가지는 선의 양 끝을 붙이면 위의 오른쪽 그림에 보이는 원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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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림의 무한한 선으로 된 위상 공간에서는 1차원 존재가 어떤 점에서 출발하여 한 방향으로 계속 이동하면 절대로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수 없다. 반면, 오른쪽 그림에 보이는, 길지만 유한한 선의 양 끝을 연결해서 만들어진, 2차원에서 보았을 때 원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 위상 공간에서는, 1차원 존재가 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선을 따라 계속 한쪽 방향으로 이동할 경우, 언젠가는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왼쪽 점에서 출발하여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는 오른쪽 점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곳은 바로 출발했던 곳과 같은 점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공간적으로 평탄한 우리 우주가 유한하다면, 우리가 지금 지구를 출발해서 지구에서 멀어지는 한 방향으로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지구를 만나게 되어 있다. 마치 대항해시대에 탐험가들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하지만 대항해시대의 탐험가들처럼 직접 지구를 떠나 끝이 있을지 없을지 모를 곳으로 계속 항해를 하여 이를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위의 오른쪽에 보이는 유한한 직선의 양끝은 실제로는 2차원에서 보면 직선의 양끝이 붙은 같은 점이다. 따라서, 선 위에 붙어사는 1차원 존재에게 직선의 한쪽 끝에서 관측되는 현상은 다른 쪽 끝에서도 똑같이 관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주가 유한하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똑같은 현상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얼마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어 관찰될 것인지는 우주의 크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만약 우주가 엄청나게 크다면 우리는 설사 우주가 유한하다 해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또 이 복잡한 우주 구조에서 반복되는 '똑같은 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1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선위에 붙어 움직이는 존재와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영영 우리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지적인 여정은, 호기심이라는 원초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는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작되었으나 과연 끝이 날는지는 모를 일이다. '빅뱅 우주론 따라잡기'라는 제목을 달고 시작한 이 책을 조금 더 멋진 결론으로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끝나지 않은 길 위의 어딘가에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천문학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닌 과학전반에 해당하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는 이 여정을 계속해 나갈 것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혹은 나중에라고 읽게 될 여러분들 중 '누군가' 그 여정에 동참하여 꼭 천문학이나 우주론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우리에게 열어준다면 정말 근사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며 지금 현재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 과학도들과 과학자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미래의 과학도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필자가 존경하는 위대한 천문학자 라이만 스피쳐의 자전적 회고록에 나온 그분의 말을 끝으로 이 책을 마무리해야겠다.


"While one's early dreams are rarely fulfilled in detail, working toward these goals and taking an active part in fascinating, worthwhile efforts has brought its own rewards"


- Lyman Spitzer Jr. (1914 -1997)


각주) 이 글에서 얘기한 우주의 유한과 무한에 대한 내용은 Janna Levin의 대중과학 서적, "How the Universe Got Its Spots: Diary of a Finite Time in a Finite Space"에 나온 내용을 참고하였으니, 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을 권합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어 번역본은 안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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