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배경 복사

빅뱅 우주론의 하이라이트

by astrodiary
Planck_CMB_pillars.jpg https://www.esa.int/ESA_Multimedia/Images/2013/03/Planck_CMB

지금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 북 '빅뱅 이론 따라잡기'의 표지에 있는 배경 사진은 플랑크 망원경이 관측한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한 전 하늘에 걸친 우주배경복사의 요동분포이다 (위의 그림과 같은 이미지이다). 그림에 보이는 붉고 푸른 얼룩들은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 2.72548 ± 0.00057를 온하늘에 걸쳐 빼고 남은 10만 분의 1 정도 스케일에 해당하는 잔여 요동 (2.72548보다 살짝 높거나 낮은 값)을 보여준다. 이 우주 배경 복사 요동은 고고학에서 로제타 스톤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천문학 관측 자료이다. 우주 배경 복사의 발견에 관한 이야기만 해도 책 한 권에 담을 수 있을 정도라서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긴 하지만, 빅뱅 우주론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므로 최대한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겠다.


고온 고밀도의 상태에서 팽창을 시작한 우주는 처음에는 광자와 물질이 분리되지 않은 플라즈마 형태의 유체이지만 시간이 지나 온도가 떨어지다가 빅뱅 이후 약 40만 년이 지난 시점에서, 전자가 양성자와 결합하여 수소원자가 되는 과정이 일방적으로 일어나는 (반대로 수소원자가 전자와 양성자로 분리되는 과정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때가 오면 광자들은 더 이상 물질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수소원자를 이온화시키지 못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물질과 분리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우주로 퍼져나가, 우주 배경 복사의 형태로 우리에게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천문학에서는 이 시기를 '우주 재결합 시기'라고 부른다). 르메트르는 1931년 처음으로 이와 같은 복사 에너지 흔적이 우주에 남아 있으리라는 예측을 하였고, 나중에 가모프는 우주가 식는 과정을 계산하여 그 온도가 몇 도가 되어야 하는지 까지도 예측을 하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 배경 복사는 그저 하나의 예측일 뿐 실제로 그것이 관측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우주 배경 복사의 발견에 관한 얘기는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로버트 디키가 이끄는 그룹이 빅뱅 우주론으로부터 예견되는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를 이론적으로 계산하고 관측을 시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무렵, 바로 근처 뉴저지의 벨 연구소의 연구원 아르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은 하늘의 사방에서 균일한 강도로 계속 잡히는 전파 '잡음'의 원인을 알아내 제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한쪽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고 다른 한쪽은 뭔가 의미 심장한 것을 발견하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세상에 알려진 우주 배경 복사는 어느 한쪽 팀이 발견과 해석의 공로 모두를 온전하게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주 배경 복사의 발견


그 후 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지구 대기 밖에서 배경 복사를 관측하기 위해 올라간 코비 (COBE) 위성은 1990년 드디어 흑체 복사 함수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관측 결과를 보내옴으로써, 아래 그림에 보이는 것과 같이, 하늘의 여러 지역에 대해서 평균을 내어 얻어진 2.73도에 해당하는 우주 배경 복사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그림에서 보이는 관측자료의 에러바는 사실 실제 값의 400배로 확대하여 그린 것이다. 그만큼 관측과 흑체 복사 곡선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만큼 아름다운 실험자료가 또 있을까 싶다.

1.5.gif 코비 위성이 보내온 배경 복사 강도의 주파수에 대한 함수 (Edward Wright)


하늘에서의 위치에 따른 우주 배경 복사의 미세한 온도 변화


그다음으로 놀라운 사실은 배경 복사의 온도가 전 하늘의 어느 곳에서든지 같은 값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맨 위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위치에 따른 미세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었다. 이 미세한 온도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바로 우주 초기에 물질 분포에 요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강한 중력장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 주변에 갔다 온 우주인들이 아직 젊은 반면 지구에 살고 있던 가족들은 이미 죽거나 나이가 많이 들어 있는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빛도 강한 중력장이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면, 느리게 가는 시간 덕분에 그 파장이 역시 길어지게 된다 (그래야 특수 상대론의 토대가 되는 광속불변의 원칙을 유지할 수 있다). 주변 보다 밀도가 높아 중력장이 강한 곳을 지나온 광자는 중력 적색이동을 겪으면서 주변의 광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파장이 길어지기 때문에 그 에너지가 낮아져 우주복사의 평균온도 2.73도보다 아~~~ 주 조금 낮은 값을 가진다. 반대로 주변 보다 밀도가 낮은 곳을 지나온 광자는 반대로 주변 광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파장이 짧아져, 2.73도 보다 아~~~주 조금 높은 값을 가진다. 즉 우주 배경 복사의 공간 요동은 우주 초기 물질의 요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인 것이다.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 요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광자들과 분리되어 움직이는 우주 재결합 시기의 물질들의 요동은 이제 더 이상 광자들의 영향으로 사그라들지 않고 중력의 지배를 받아 자라나기 시작하여 그 이후 우주 거대 구조와 은하형성의 씨앗이 된다.


CM3.jpg
CMB-map-evolution-1300x724.jpg
우주 배경 복사 관측의 시대별 변천사. 더 좋은 분해능을 가지고 관측할 수록 더 작은 스케일의 요동을 볼 수 있다.

위의 그림은 우주 배경 복사 관측을 위해서 쏘아 올린 위성들이 보내온 자료로 구성한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 요동지도이다. 1990년 COBE위성은 7도 각분해능으로 우주 배경복사 요동을 관측하였고, 2003년 WMAP위성은 그 보다 14배 좋은 각분해능 (0.5도)으로 관측하여 더 세밀한 온도 요동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 2013년 Planck 위성은 0.16도 각분해능으로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 요동을 재었다. 초기 빅뱅 우주론은 공간적으로 균일하고 등방 한, 특정 온도를 가지는 배경 복사의 존재를 예견하는데 그쳤지만, 1990년 코비 위성이 처음 발견한 우주 배경 복사 온도의 공간 요동은 초기 우주의 물질 분포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고 비로소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뿐 아니라 우리가 보는 은하, 은하단들이 어떻게 생겨나서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빅뱅 이론이 우주의 시작에 대한 설명을 해 줌과 동시에 현재 우리가 보는 우주의 구조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까지도 설명해 주는 가장 그럴듯한 이론으로 확립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이후,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 요동이 어느 정도의 공간 (각크기) 스케일에서 가장 심한지, 그리고 요동의 정도가 각크기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우주 배경 복사를 통해 우주론과 우주 거대 구조 형성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의 지상 과제가 되었다.


'푸리에 나라의 천문학자'에서 얘기하였듯이, 푸리에 변환과 비슷한 원리로 구면 조화 함수를 사용하면, 겉으로 보기에 복잡해 보이는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 요동을 비교적 간단한 함수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

cmb_resolution.png https://lambda.gsfc.nasa.gov/education/graphic_history/power_spectrum.html

위의 그림은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 요동 지도를 특정 각주파수를 변수로 가지는 구면 조화 함수들로 분해한 후, 어떤 각 크기 스케일에서 요동이 얼마나 크게 발생하는지를 나타낸 도표 (파워 스펙트럼이라고 부른다)이다. x축에 각주파수로 표현된 값은 우리가 관측하는 각크기와 일대일 대응관계가 있다. (각주파수가 크면 각크기는 작아진다). 배경 복사 관측 위성의 분해능이 좋아질수록 (오른쪽 돋보기) 더 작은 각크기에서 발생하는 요동까지 관측이 가능하다. 우선 대략 각크기가 1도 정도 되는 (참고로 하늘에 보이는 보름달의 각크기가 0.5도이다) 스케일에서 발생하는 요동의 정도가 가장 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볼 때 각크기는 그 대상까지의 거리(d)와 그 대상의 실제 물리적 크기(s)로 정해진다 (각크기 = s/d). 프리드만 방정식에 들어가는 파라미터 값에 따라 정해지는 우주 모형으로부터 우리는 우주 배경 복사가 발현하는, 우주 재결합 시점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고 또 우주 재결합 시점에서 광자와 물질이 얽혀 유체와 같이 출렁이던 우주 안에서 밀도에 의한 음파가 빅뱅 이후부터 전파해 간 거리 (물질 밀도 분포가 영향을 받는 가장 커다란 스케일)도 계산할 수 있다. 우주 재결합 당시, 가장 커다란 스케일에서 생겼던 가장 큰 규모의 물질 분포 요동 (나중에 얘기할 바리온 음향 진동에 해당하며, 우주의 팽창효과를 뺀 공변 좌표계에서 약 100 메가 파섹의 크기에 해당한다)은 오늘날 우주 배경 복사에서 1도 규모의 공간 요동으로 나타난다. 이때 이 모든 계산 과정에는 우주의 곡률 (닫힘, 열림, 평탄)을 결정하는 파라미터가 들어가며, 그 파라미터값이 0이 되어야만 (우주가 평탄해야만), 온도 요동이 관측되는 각 크기가 1도가 된다. 따라서 1도 규모에서 일어나는 우주 배경 복사 온도 요동의 존재는 우주가 평탄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주 배경 복사가 말해주는 우주의 기하학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 요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물질 밀도의 요동은, 다음에 얘기할 우주 거대 구조의 형성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가, 10만 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적은 불균일성을 가지고 있지만, 전 하늘에 걸쳐 거의 균일하다는 사실이 가지는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현재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다. 다시 말해서 빛이 전달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는 138억 년 전의 우주이다. 그 빛이 처음 전파해 나가기 시작한 때가 우주 배경 복사가 일어나는 우주 재결합 시기이므로, 우주 배경 복사 지도에 나타난 우주의 크기는 빛이 138억 년 동안 전파해 가는 거리에 해당하는 138억 광년이다. 한편 빅뱅 이후 우주가 생겨난 지 1초가 지난 시점의 우주를 생각해 보자. '식어가는 우주'에 나온 방법으로 우주의 온도를 계산하면 그때 우주의 온도는 약 100억 도이다. 현재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를 약 2.73도라고 하면, 우주의 크기는 우주의 온도에 반비례하므로, 빅뱅 이후 1초가 경과했을 때 우주의 크기는 현재의 37억 분의 1 (2.73/100억)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주 배경 복사를 통해 보고 있는 (아니, 볼 수 있는) 138억 광년 크기의 우주는 과거 빅뱅 이후 1초가 지난 시점에서는 약 3.7광년 (138/37)의 크기를 가졌을 것이다. 한 편, 빅뱅 이후 1초가 지난 시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크기는 빛이 1초 동안 전파해 가는 거리에 해당하는 1 광초 일 것이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현재 우주는 과거 빅뱅 이후 1초가 지났을 때, 빛이 1초 동안 달려서 도달하기엔 어림없이 큰 3.7 광년이나 되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 관측되는, 10만 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요동을 가진, 공간적으로 균일한 우주 배경 복사를 빅뱅 이후 1초가 지난 과거로 돌리면, 3.7 광년의 공간에 걸쳐 균일한 온도 분포를 가지는 우주를 맞닥뜨리게 된다. 빛이 1초 동안 달려서 정보를 전달하기엔 너무나 커다란 크기의 우주가 전체적으로 그렇게도 균일한 온도를 가진다는 것은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빅뱅 이후 1초가 지난 시점에서는 1광초 거리 (빛이 1초 동안 가는 거리) 이내의 영역에서만 빛을 통한 정보교환과 열평형이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1광초 이내의 영역에서 우주는 균일한 온도를 가질 수 있지만, 1 광초 이상의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두 영역 사이에서 열평형이 일어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럼에도 생겨난 지 1초가 지났을 때 3.7 광년이나 되는 우주가 균일한 온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1초보다 더 오래전 과거에 (빅뱅으로 우주가 시작하자마자) 이미 열평형을 이루었던 아주 작았던 우주가 인플레이션이라는 과정을 통해 아주 빠르게 팽창을 하여 빅뱅 후 1초가 지난 시점에서 3.7 광년으로 크기가 늘어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좀 억지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 바로, '너무나도 커다란 우주가 너무나도 균일한 온도 분포'를 가지는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급팽창 우주론이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이라고도 불리는 이 이론은 거시적으로 균일한 온도의 우주 배경 복사라는 빅뱅이론이 가지는 현상학적 문제를 해결하고 곡률이 0인 평탄해 보이는 우주 (반지름이 아~주 큰 원의 곡률은 0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주 큰 우주도 곡률이 0에 가까울 것이다)를 설명하기 위해 1980년 앨런 구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우주 배경 복사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우주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수많은 은하들의 형성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있다. 우주를 시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하는 방정식이 있고 방정식의 미지수들이 있다고 한다면, 우주 배경 복사는 그 방정식의 미지수들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초기 경계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방정식의 미지수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또 다른 경계조건은, 배경 복사가 주는 초기 경계조건들을 바탕으로 우주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물인, 현재 우주 안에서 관측되는 은하와 은하단들이 이루는 거대 구조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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