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봐야 돈을 줍지

천문학이 쓸데없는 학문이 아닌 이유

by astrodiary

천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알고 싶은 천체나 천문학적 현상을 이해하는 기쁨을 얻기 위함이지만, 도대체 그거 공부해서 어디에다 써먹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필자도 대학진학 시 전공선택을 할 때 부모님께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들었었다. 하지만 그때는 낭만(?)이 있었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필자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직업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천문학을 선택하는 친구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필자가 공부했던 지난 과정들을 돌이켜 보고 나서, 천문학은 실생활에 쓰일 곳이 전혀 없는, 영~ 쓸데없는 학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천문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고급지식과 기술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꽤 오래전, 필자가 박사 후 과정으로 있었던 대학에서 들었던 한 세미나가 생각이 난다. 그 대학은 천문학과가 따로 분리되어있지 않아서, 초청되는 세미나 연사는 꼭 천문학자들이 아니라 다른 학문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때 세미나를 했던 연사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사람이 발표했던 내용은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데, 주제는 인공위성사진을 기계학습을 통해서 분석하는 것이었다. 세미나 내용은 현재 지구 상공에서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인공위성들이 찍은 수많은 지표면 사진들을 분석하여, 어디서 산불이 나고 있고, 어디에 심한 가뭄이 들고 있는지, 사진에 찍힌 곳이 옥수수 밭인 지, 사탕수수밭인지 등등을 구별하는 알고리즘을 소개하고 그 성능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연구비를 후원하는 곳은 미국 국방부였는데, 연사는 연구비 규모가 얼마나 크고 앞으로의 전망이 얼마나 좋은지 자랑스레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옥수수 밭, 사탕수수 밭을 구분하는 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 실제 국방부에서 알고 싶은 것은 '찍힌 사진이 적국의 원자력 발전소인지, 아니면 원자력 발전소를 가장한 핵시설인지'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세미나를 듣는 필자는 참 묘한 생각이 들었다. "어, 저것은, 내가 천문관측 자료 이미지 분석할 때 썼던 기술이랑 똑같은 방법인데?", "어, 저것은, 내 친구가 지금 개발하고 있는 자료 분석 방법인데?".


많은 경우, 천문학 자료는 같은 대상을 여러 파장대에서 찍은 사진들이 주를 이룬다. 그 세미나 연사가 자부심 있게 소개했던 이미지 처리방법은, 다파장으로 관측한 대상의 각각의 이미지들을 잘 처리하고 결합하여 찍힌 대상이 무엇인지(산불이 나고 있는 지역인지, 홍수가 나고 있는 지역인지, 쓰나미가 덮쳐오는 지역인지 등등)을 판단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각각의 이미지를 전처리하여 노이즈를 줄이고, 물체의 경계를 뚜렷하게 만들어 형태를 더 뚜렷이 보이게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대상을 이미 알려진 자료들과 비교 분석하여 대상을 식별하는 방법은 천문학 연구에서 쓰이는 이미지 필터링, 정량화 방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 연사는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고 필자는 지구를 등지고 별과 은하를 쳐다보고 있을 뿐.


실제로 인공위성사진은, 꼭 군사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돈이 많이 된다. 기후변화나 생태계 변화를 추적하는 것뿐 아니라, 도시계획을 하거나, 농작물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재난에 신속 대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상업용으로 분석을 해주는 회사들도 많고 그런 회사들은 꽤 큰 이윤을 올리기도 한다. 물론 그 일을 해주는 엔지니어들의 대우도 좋은 편이다. 왜냐 하면 결과물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대부분 조용히 연구만 하고 있어서 그렇지, 그들이 쓰고 있고 개발하고 있는 분석 도구들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회사나 더 나은 분석방법을 원하는 정부조직등에서 관심을 기울일 만한 것들이 꽤 있다. 십 수년 전에 데이터사이언스 열풍이 불었을 때 상당수의 천문학자들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직업을 바꾼 일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천문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자료 처리와 분석기술들은 상당히 고급기술이다. 예를 들어, 전파천문학에서 하늘에 투영된 2차원 이미지에 주파수를 더한 3차원 이미지의 생성 및 분석기술은 의학에서 쓰이는 3차원 자기 공명영상 (MRI) 분석 방법과 비슷한 점이 있다. 이미지에 보이는 특이한 점들을 찾아내 암진단을 하거나, 천체의 물리적 특징을 알아내기 위해선, 둘 다 이미지의 노이즈를 줄이고 검출하고자 하는 대상의 특징을 잘 살려내는 분석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별이나 활동성 은하핵의 시간에 따른 밝기 변화를 추적한 시계열 자료는 주식시세 변화자료와 너무나 흡사하며, 자료분석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나 통계적 방법마저 거의 똑같다. 그래서 천문학자나 물리학자들중 통계적 자료분석에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헤지펀드 회사로 커리어를 전향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효율적인 자료처리와 성능 좋은 분석도구는, 지구에 있는 대상들은 관측함으로써 가치(대부분 돈이기는 하지만)를 창출하는 회사나 기관에게는 '목적'이지만 하늘을 보는 천문학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도구'이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큰 부를 얻기는 힘들다. 하지만, 천문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꼭 하늘만 쳐다보며 살란 법은 없다. 천문학을 통해 배운 지식과 경험은 생각보다 쓸데가 많으며, 시선을 하늘에서 땅으로 돌리면 활용가능한 분야가 꽤 많다. 하니 천문학을 한다고 해서 밥 굶는다는 것은 옛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문학을 직업으로 권장하고 싶지도 않다. 천문학 박사과정을 끝마치면 모두가 안정된 직업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안정된 직장을 잡기만 하면, 천문학자처럼 직업 만족도가 큰 직업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저, 모든 학생들이 다 의사가 되기 위해 줄지어 달리기보다는, 관심이 있고 흥미 있는 분야가 있으면 일단 도전해 보는 낭만 섞인 패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천문학을 예로 들어, 몇 자 끄적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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