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보다 위대한 인간의 삶

레 미제라블

by astrodiary
20250703_131638.jpg

19세기는 격동의 시대였다. 세계 문명을 지배하는 유럽의 질서가 재편되고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근대로 향하는 과정에서, 각 나라에서는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혼돈의 시대였다. 19세기를 빼고는 현대 사회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시대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크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하지만 필자를 포함해서, 축약본이 아닌 원본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은 이 시대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장 발쟝이라는 한 사람과 그의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그리고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사는 지역에 카메론 매킨토시 (레 미제라블 외에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등, 굵직한 뮤지컬들을 기획하여 히트시킨 사람)가 제작한 버전 (우리가 알고 있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카메론 매킨토시가 히트시킨 버전이다)의 뮤지컬 "레 미제라블" 팀의 공연이 있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 (올해가 매킨토시의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세상에 나온 지 4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라 가족이 모두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이 펼쳐진 워싱턴 디씨의 케네디 센터의 무대는 약간 좁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막상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은 배우들의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 때문에 무대 크기에 신경을 빼앗길 여유가 없었고, 유튜브 짤로만 보았던 주옥같은 레퍼토리들이 스토리를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나오는 2시간 반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뮤지컬을 보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것은, "한 인간의 삶이란 것이 이렇게나 고단할 수가 있구나,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이 지키기로 한 가치를 위해 끝까지 굴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참으로 강인한 존재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죄수 24601, 마들렌, 포슐르방, 장 발쟝. 다른 이름을 가지고 살았지만,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지키며 삶을 끝까지 살아낸 그가 자신과 팡틴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코제트를 떠나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격동의 19세기, 그 역사보다 위대한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정부군에게 진압되어 죽기 전 마지막 밤을 보내며 서로를 다독이던 혁명군의 젊은이들, 어린 코제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지옥 같은 삶으로 몰아넣은 팡틴, 형기를 채우고 풀려났음에도 자신을 받아 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증오심이 끓어오르던 장 발쟝에게 처음으로 믿음을 준 미리엘 주교,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옳다고 믿고 지켜온 인간성에 대한 불신이 장 발쟝이라는 한 인간으로 인해 허물어지며 자괴감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자베르. 그리고 장 발쟝...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주변에도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그래. 힘들었지만 열심히 살았다. 수고했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 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큰 업적을 이루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더라도, 스스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충분히 위대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해 준 시간이었다. 역시 고전은 이래서 고전인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37 퍼센트의 규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