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 화백과 승효상 건축가
오랜만에 오는 한국은 덥긴 하지만 여전히 편안하다. 지난주에는 한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왔다. 가족과 (올 가을에 대학에 입학하는 다 자란,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는 중인, 두 아들들을 데리고) 같이 다니는 여행이라 애환(?)과 즐거움이 같이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여러 장소와 시간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에 하나를 꼽아보라고 하면,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경주 솔거 미술관과 그곳에 상설 전시 중인 박대성 화백의 작품을 들겠다.
사실 솔거 미술관과 박대성 화백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필자는 그 정도의 문화 예술적 교양은 없는 사람이다), 당연히 그곳을 목적지로 정하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경주에서 친구네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 잠시 쉬어갈 곳이 필요했던 우리 가족은 경주 엑스포 공원에 찾아갔고 거기서 그 안에 있는 솔거 미술관을 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맞이한 광경은 더위와 땀에 찌든 기억들을 한 방에 날려 버릴 만큼 신선했다.
건축가 승효상 선생이 지은 솔거 미술관은, 신라시대에 하도 그림을 잘 그려 날아가던 새가 화가가 그린 나무에 앉으려다 부딪혀 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오는 화가 '솔거'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다. 그 안을 걸어가다가 보면 위의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창밖의 풍경이 창틀에 담겨 있는 이 광경은 그 자체로 액자에 담긴 하나의 풍경화이다 (서둘러서 가족들을 그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어보았으나 아무리 해도 배경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사실 건물 자체도 너무 단정하고 아름다운 이 미술관이 왜 경주 엑스포 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마치 엑스포 공원의 부속건물 정도의 느낌을 받게 만들었는지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 어쨌든 필자는 솔거 미술관을 보기 위해서라도 엑스포공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시길 추천한다.
더한 감동은 그 안에 전시 중인 박대성 화백의 수묵화들이었다. 정말 그림이 너무 아름답다. 어릴 때 왼 팔을 잃고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어찌 보면 불운하게 보일 수 있는 화가이지만, 그의 그림들을 마주 하고 있으면 그런 편견들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진다.
수묵화라면 예전에 미술시간에 배웠던 '선과 여백의 미' 정도만 알고 있던 필자는 처음으로 수묵화가 '예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찾아본 박대성 화백의 그림들은 왜 사람들이 '그림에서 빛이 난다'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박대성 화백의 대표작 '불국사 설경' 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면, 눈이 소복이 쌓인 사찰의 설경을 그리려면 이렇게 그릴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색이나 드라마틱한 구도가 없는 박대성 화백의 수묵화들은 평생을 옆에 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 마치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간이 적당한 담백하고 맛깔스러운 음식과 같은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정적인 여력이 있으면 화백의 그림을 하나쯤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의 무관심과 친구네 가족과의 약속시간이 아니었다면, 필자는 아마도 하루 종일 이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예상하고 계획했던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금처럼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좋은 기억을 만들게 되기도 한다. 여운이 오래갈 것 같은 경주의 솔거 미술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