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이 다 되어 드는 사랑에 대한 생각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의미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잘 못 들어 본 것 같다. 왜일까? 아마도 내리사랑과는 달리 치사랑은 계속해서 마음에 새기고 열심히 노력해야만 생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예외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낳는 순간부터 이미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잘 보살피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 부모의 사랑을 받기만 하고 자란 자식은, 의식적으로 부모님께 잘해드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부모님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가슴으로부터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필자의 곁에는 아내, 아래로는 아이들과 반려견이 있고, 위로는 연세가 많이 드셔서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계신다. 외국에 나와서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한국에 자주 들를 기회가 없어서 지금처럼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그때마다 어머니는 눈에 띄게 쇠약해지신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은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와 되도록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노력한다. 시장도 같이 가고, 길거리에서 같이 먹을 것도 사 먹고... 그래서인지 한국을 떠날 때가 되면 '좀 더 잘해 드릴걸' 하는 생각과 '앞으로 얼마나 더 어머니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죄송함과 안타까움에 마음이 복잡하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젊었을 때는 어머니와 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중 어머니와 같이 보낸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부끄럽게도, 그때 당시 필자에게는 어머니에게 가지고 있는 사랑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부모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관념에 불과할 뿐 가슴속에 있는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머니께 내 정성과 시간을 쏟아서 해 드린 것이 별로 없었기에.
하지만,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 네 식구의 생활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위해서 해주는 것이 없는 삶이기에 힘들어도 가족을 위해, 나와 아내 모두 주로 아이들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으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아내와 아이들과 같이 보낸 세월 속에서 내가 못해주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만이 있을 뿐, 다른 기대나 보상 심리는 없다. 심지어 몇 년 전에 입양해서 키우기 시작한 지금은 8살이 된 우리 집 반려견은 매일 밖에 나가서 볼일도 보게 해야 하고, 밥도 줘야 하고, 주기적으로 목욕과 이발도 시켜줘야 하는 데도, 집에 두고 밖에 나와 있으면 항상 눈에 밟힌다. 말도 못 하니 더 신경 써서 잘해 줘야 한다는 마음뿐.
사랑은 자연법칙처럼 공식으로 정의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랑에 공식은 없다. 하지만 필자는, 사랑하는 마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저절로 생겨난다고 믿지 않는다. 사랑은 물리적 법칙처럼 어느 상황에서나 적용가능한 정량화 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지만, 무언가 인풋이 있어야 그 결과로 생겨난다는 점에서 비례상수가 있는 공식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비례상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아주 작은 노력으로 금방 사랑의 감정을 가지게 되지만 다른 이는 많은 노력을 해야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혹자가 남녀 간의 사랑의 경우,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일이 있지 않느냐고 물어 온다면, 필자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호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알 수 있는 감정이기에...
영화 <굿윌헌팅>에서, 정신과 상담의사로 나오는 로빈 윌리암스가,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과 세상을 향해 자기를 닫아 걸은 맷 데이먼에게, "너는 진짜 상실감이 어떤 것인지 몰라, 왜냐하면 넌 무엇인가를 너 자신보다 더 사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 아마도 넌 누군가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랑해 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을 거야 (You don't know about real loss, 'cause it only occurs when you've loved something more than you love yourself. And I doubt you've ever dare to love anybody that much)"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필자는 그때 영화를 보면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했다. 28년이 지난 지금, 나이 50이 다 되어서야 깨닫는다. 내가 누군가 혹은 무엇을 위해 내어놓는 것이 있어야, 그리고 많이 내어 놓을 수록, 그 대상을 온전히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