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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펭귄 Sep 27. 2022

사과는 진심을 담아, 빠르고 신속하게!

홍보+人 6

위기는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2014년 2월 17일, 전 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월요일 이었습니다. 동해안 일대에는 수일 째 폭설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서울은 큰 피해 없이 찌뿌둥한 날씨였습니다.     

월요일 저녁 한 언론사와 저녁 식사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맥주를 마시러 장소를 옮기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카카오톡 알림 메시지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일과 후에 울리는 카카오톡 메시지는 항상 불안합니다. 창을 열지 않고 확인했더니 회사 상사의 연락이었습니다.     

퇴근한 사람에게 업무지시를 하려나 보다 생각하고 한동안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연락이 닿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부르겠지’ 하며 카톡을 계속 무시했습니다. 그렇게 5분여의 시간이 지나도록 메시지 알림을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동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피해 메시지를 확인했더니 긴급하게 회사로 복귀하라는 지시입니다. 밤 9시가 넘어가는 시각에 회사로 복귀하라니?’ 상사에게 전화했습니다.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나도 아직 제대로 상황을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리조트가 무너졌다고 하니까, 이 부장 빨리 회사로 복귀해”

“리조트요? 어디 리조트요?”

“자세한 내용은 회사에 와서 얘기하자고!”

상사가 전화를 끊었습니다. 취기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사로 바로 출발했습니다. 회사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검색한 뉴스는 내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경주 마오나오션 리조트 붕괴” ‘K그룹 리조트 붕괴’ ‘대학생 사망’ ‘수백 명 매몰’ 등 온라인 속보가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기업에서 10년이 넘게 홍보인으로 살면서 이렇게 큰 사고는 처음입니다. 더군다나 사망자도 발생했고 무너진 건물 아래 100~200명이 더 있다는 소식이 사망자가 몇이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겪은 위기 상황과는 차원이 다른 사고입니다.     

경주와 울산 경계에 있는 마우나오션리조트는 빌라동과 콘도동으로 구성된 콘크리트 구조 건물입니다. 저도 여러 차례 가본 곳입니다. 특히 회사가 주최한 미국 LPGA 대회 진행을 위해 일주일씩 묵었던 곳입니다. 마우나오션리조트 건물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고 당시에는 지은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건물입니다. 큰 지진이나 폭발사고 없이 쉽게 무너질 건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리조트 건물 내에서 수백 명이 모여 행사를 진행할 만한 공간도 없었습니다. ‘내가 아는 리조트가 아닐 것이다. 우리 그룹의 사업장이 아닐 것이다’ 우리 사업장이 아니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며 회사로 이동했습니다.     


과천 사무실에 복귀해 보니 홍보실 직원뿐 아니라 몇몇 부서의 임직원들도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열사 관계자들도 침통한 표정으로 회사로 모였습니다. 사무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TV 화면에는 긴급한 목소리로 현장 상황을 보도하는 생방송 뉴스 속보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보이는 소방차와 경찰차들의 붉은 경광등 불빛이 현장의 긴박감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뉴스 카메라가 전해주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주변을 분주히 움직이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참혹한 현장을 대변합니다.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에는 일주일째 눈이 내렸습니다. 강원도 지역은 107년 만의 폭설이라고 합니다. 경상도 지역도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적을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에 쌓이는 눈은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는 습기 있는 눈이라 무겁습니다.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이 눈이 설레고 부푼 가슴으로 새 출발을 준비하는 대학 새내기들의 생을 앗아갔습니다.     


사고 당일 마우나오션리조트 강당에는 부산외국어대 신입생을 포함한 재학생 505명이 신입생 환영회 겸 오리엔테이션 행사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부산외국어대 총학생회는 수년째 마우나오션리조트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날 행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건물 천장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습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100여 명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매몰된 것입니다.      


무너진 리조트 건물은 기존의 콘크리트 구조물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리조트 측이 단체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빈터에 철근 구조물로 지은 체육관 시설이었습니다. 체육관 건물 지붕에 며칠째 눈이 쌓이면서 부실시공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면서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기자들이 사고 현장으로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구급차와 소방차를 제외하고 리조트 다른 차량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기자들은 차를 버리고 눈발을 헤치며 리조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노트북 가방과 카메라를 들고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사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생명과 안전은 뒤로한 채 수익만을 좇는 대기업들의 탐욕을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회사와 홍보실 사람들에게도 전화취재가 이어졌습니다. 취재 내용은 현재 상황과 사고원인을 묻는 것입니다. “회사는 대책본부를 꾸리고 구조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고원인은 현재 파악 중이다.” 똑같은 말이 반복됩니다. 기자는 한번 전화하지만, 홍보 담당자는 같은 말을 수십 번 이상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까지의 사망자 수와 수백 명이 매몰돼 있다는 자막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달됩니다. 사망자 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한 명, 두 명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시간은 벌써 10시를 넘어갑니다. 늘어나는 희생자와 부상자 소식에 걱정이 깊어졌습니다. 현재의 그룹 상황을 간략히 정리해서 각 언론사로 배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10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사상자가 늘어나고 있고 각 언론에서 이목을 집중하고 있기에 간략하게라도 회사의 상황을 알리는 게 낫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코오롱그룹은 현재 ㈜코오롱 대표를 중심으로 경기 과천 본사에 긴급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이번 사고를 참담한 마음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인명구조 및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     

자료는 출입 기자들과 전화취재가 왔던 방송사와 신문사 기자들에게 배포됐습니다. 회사가 대책본부를 꾸렸다는 내용과 지주사 사장이 경주로 출발했다는 내용은 곧바로 온라인 속보와 YTN 자막 뉴스로 공개됐습니다.     

밤 11시 무렵에는 이웅열 회장이 본사로 복귀했습니다. 이 회장이 도착하자마자 임원들과 사고에 대한 대책이 논의되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내용은 잘 모르지만, 그날 이 회장은 본인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를 임원들에 의견을 물었다고 합니다. 몇몇 임원은 지주사 사장이 경주로 내려갔으니 과천 본사에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했고, 몇몇은 해야 할 일이 없더라도 일단 사고가 난 리조트에 내려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      


12시쯤 이 회장은 마우나오션리조트로 출발했습니다. 일단 현장에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변해서 나서야 할 때 과천 본사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됐기 때문입니다. 리조트의 미디어 대응을 지원하고 그룹 홍보실과 사고 현장의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서 그룹 홍보실 직원 한 명도 현장으로 급하게 내려갔습니다.     


자정이 넘어가면서 사무실을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TV에서 전해지는 현장 상황만이 사무실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방송사와 언론사 야간 당직자 연락처를 파악했습니다. 리조트 사고에 대해 전화취재를 했던 기자들의 이메일 연락처도 파악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밤사이 회사의 사과문도 작성했습니다. 사과문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연설문 작성자가 작성했습니다. 사과문의 정석이라고 할 만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안이 만들어졌습니다.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이번 사고로 고귀한 생명을 잃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에게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특히 대학 생활을 앞둔 젊은이들이 꿈을 피우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하게 된 데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소중한 분들을 잃게 되어 비통함에 빠진 모든 분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다친 분들과 그 가족분들께도 애통한 심정으로 사죄드립니다. 하루빨리 회복하시고 쾌유하시도록 저희 코오롱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번 사고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게 된 점에 대해서도 책임을 통감합니다. 코오롱은 현재 사고 대책본부를 설치해 신속한 사고 수습을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인명구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사고원인 규명에 한 점의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과 유가족, 부상을 입으신 분들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사죄를 드립니다.”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및 임직원 일동     


완성된 사과문은 리조트 측에도 공유됐습니다. 사과문이 만들어질 때까지만 해도 사과문 발표를 언제, 어디서, 누가 할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아침 5시 30분경 실무자들에게 긴박한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이 회장이 직접 사과문을 발표하기로 했다며 언론사에 연락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밤사이 파악해 놓았던 언론사 당직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보내 사과문 발표 일정을 공유했습니다.      


이웅열 회장은 마우나오션리조트에 도착 후 곧바로 현장 대책본부를 찾아 고개를 숙이고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뉴스채널에서 생방송으로 보도된 현장은 어수선했습니다. 소방서 관계자, 경주시 관계자와 코오롱그룹 관계자 등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기업 회장의 사과문 현장에 왜 관공서 직원들이 동행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난 현장에서 정돈되고 짜인 형식을 띤 것보다는 오히려 현장감이 느껴지고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홍보실에서는 사과문 문안을 곧바로 광고로 제작해 다음 날 일간지에 게재했습니다. 회장이 사과했지만 다시 한번 언론을 통해 사과한 것입니다. 물론 언론에 광고비를 줌으로써 비판 기사를 수위 조절시키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룹의 주인이자 최고 경영자가 전면에 나서서 사과한 것에 대해 당시 언론은 이례적이라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재벌 회장이 소유한 기업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전면에 나서서 사과하고 고개를 숙인 경우는 이전까지는 없었습니다. 사고 후 12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에 그룹 회장이 고개를 숙여 사과함으로써 언론 보도 기사도 압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고 관련 언론 기사는 사고 현장, 피해자 사연, 사고 현장의 영웅 이야기, 사고원인 분석, 책임자 사과, 피해자 합의 등의 순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됩니다. 사고 발생 후 10시간 마에 그룹 최고 경영자의 사과는 언론 보도의 타임라인을 하루로 압축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회장님의 사과문 발표 후 언론사 출근 시간이 다가오자 취재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홍보실 직원들은 밤을 새웠지만 피곤을 느낄 새도 없었습니다. 당시 홍보실 인원은 많지 않았습니다. 2명의 실무자에게 모든 취재 전화가 집중됐습니다. 취재 전화와 응답하고 나면 또 전화가 오고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 부재중 전화가 몇 통화씩 와 있었습니다. 오전을 그렇게 통화를 하고 나니 목에서는 쉰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쉰목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날입니다.      


위기상황시 회사와 연결이 되고 안 되고는 상황을 취재하는 언론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언론사 구별 없이 모든 취재에 응해주었습니다. 단 회사에서는 TV와 공식적인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전화취재나 되면 질의응답은 실시간으로 진행했습니다. 몇몇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위해 회사 방문을 요청했지만 인터뷰는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한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거절했는데도 회사로 찾아왔습니다. 회사까지 온 언론사를 만나주지도 않은 채 돌려보낼 수 없어서 기자를 만나 명함을 주고받았습니다. 기자와 몇 마디 인사를 하고 나니 카메라 기자가 방송 카메라를 세팅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카메라를 켜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기자에게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기자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두 마디라도 인터뷰 영상을 찍자고 회유하고 윽박질렀습니다. 홍보실장에게 상황을 보고했지만 역시나 인터뷰는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저는 기자에게 인터뷰는 할 수 없으니 돌아가시라고 말했습니다.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기자와 저는 한참 동안 눈싸움해야 했습니다.

“지금 장난치는 거냐? 질문한 만이라도 인터뷰 영상을 찍어라.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나?”

“분명히 인터뷰는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나? 굳이 찾아온 것은 방송사지 우리가 요청한 것이 아니다.”

“정말 이러기냐? 모자이크 처리 할 테니 음성인터뷰라도 하자!”

“난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있다. 방송사가 주는 것 아니지 않나? 회사에서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는데 방송국 말을 듣고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 미안하지만 돌아가시라”

평상시 같으면 굉장히 당황했을 상황이었는데, 회사의 상황이 워낙 위급했던 상황이라 기자에게 강력하게 맞섰습니다. 기자는 결국 카메라를 철수했고 방송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10~20분 후 기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서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기자가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저도 될 수 있는 대로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통화를 끝내면서 통화내용이 녹음 됐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 목소리를 그날 밤 9시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목소리 변조가 됐지만, 말투와 쉰 소리는 누가 봐도 내 목소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오전 11시경에는 현장 사고 대책본부에서 회장님이 대학생 희생자들이 안치된 빈소에 조문을 갈 것이라는 일정을 알려왔습니다. 당시에 회장님의 빈소 조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조문에 반대한 이유는 감정이 격해진 유족들이 반응을 예측할 수 없고, 유족들과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한다면 현장에 있는 사진 기자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나고 나서 상황을 돌이켜 보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최악의 상황도 예상해야 하고 그에 대한 대비도 해둬야 합니다.      


반대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 감정이 격해진 유족들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고 괜한 분노를 키울 수 없다. 둘째, 회장님의 조문을 하지 못하게 유족들이 막아서거나 물리적 행위를 할 수도 있다. 셋째, 현장에는 많은 취재기자가 대기하고 있고 유족들과의 실랑이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면 회장님과 그룹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홍보실에서는 회장님께 조문 반대의견을 했지만, 회장님은 조문을 강행했습니다.

당시 회장님은 “내가 유족들에게 뺨을 맞아도 조문을 하는 것이 내 도리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제 우려와는 달리 회장님의 조문은 큰 소동 없이 마쳤습니다. 일부 한두 명이 회장님의 빈소에 들어섰을 때 고함을 쳤지만, 대다수 유족이 흥분한 유족을 자제시키고 조문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회장님은 유족들과 만나 회사의 보상과 별도로 사재로 보상금을 내놓겠다는 의견도 밝혔습니다. 회장님의 조문과 유족들에게 사재출연을 약속하면서 사망사고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유족들과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회장님은 유종들과 보상금 협상을 담당하던 임직원에게 “돈 1~2억 아끼려고 유족들과 대립하지 마라. 차라리 회사가 더 주더라도 협의를 마무리 짓는 것이 낫다”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유족들과 보상금 합의는 곧바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당시 보상합의금은 법정 소송을 통해 받을 수 있는 보상금보다 20~30% 정도 더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별도로 각 유족에게 회장님의 사재 출연금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그룹의 대주주가 직접 나서 개인 재산을 낸다는 것을 유족과 언론은 호의적으로 바라봤습니다.     

당시 회장님의 사과문 발표와 조문은 유족과의 보상 협의 문제를 원만하게 이끄는 가장 큰 비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다시 그 상황이 온다고 해도 저는 회장님 조문에 반대 관점을 낼 것입니다. 물론 최고 경영자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가장 큰 해결책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최고 경영자의 명성과 이미지를 보호해야 하는 것도 홍보실 일원으로 해야 할 책무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비통함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 유족들이 회장님의 멱살을 잡을 수도 있었고, 뺨을 때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상황이 예측되지 않는 현장에 회장님의 발걸음을 찬성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사령관들이 지휘 본부에서 사건을 지휘하는 것과 같이 회장님도 대책본부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안전이 확보된 뒤에 움직이는 것이 낫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결과를 알고 상황을 돌이켜 보면 간단하지만 예측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험이 존재하는 곳에 최고 경영자를 나서게 하는 그것을 참모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당시 회장님의 조문이 원만히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유족들의 인품도 한몫했습니다. 유족들은 존경받을 만한 인품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당시 유족들은 자식을 잃은 슬픔과 분노의 표출 보다는 자식의 죽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자 하는 지성을 갖춘 분들이었습니다. 특히 보상금을 자녀들이 입학했던 대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유족들의 결정은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유족과의 보상 합의가 완료됐다는 보도자료를 쓰고 있는데 일부에서 회장님의 사재 출연 결정을 보도자료로 배포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재출연을 회사가 직접 발표하는 것은 회장님 사과에 진정성을 훼손하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재출연은 자칫 꿈도 채 피워보지 못한 학생들의 죽음을 재벌가가 손쉽게 돈으로 무마하려 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사재출연을 숨겼지만, 유족들이나 관계자들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경영진도 제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보상 합의에 관한 언론 기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족 측을 취재하던 한 언론사에서 회장님이 사재출연에 관한 보도를 했습니다. 이후 보상합의 기사에는 회장님 사재출연 내용도 함께 보도되었습니다. 회장님의 사재출연 금액을 많은 언론사가 문의했지만, 금액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 피해자들의 죽음을 돈으로 잣대를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금액이 밝혀지면 회사와 회장님 사과의 진정성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과의 진정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유족과의 보상이 원만하게 합의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언론은 사고의 책임소재와 사고원인에 대한 후속보도를 이어갔습니다. 모 중앙언론사 지방 주재기자는 지역 주민들을 수소문하며 회사가 건물 붕괴를 사전에 알고 있으면서도 대학생들의 행사를 유치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사고 일주일 전 리조트 측이 붕괴한 건물의 보수 견적을 의뢰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뉴스는 회사에 대한 비판이 수그러드는 가운데 꽤 큰 반향을 일으키며 확산할 조짐을 보였습니다.     


홍보실은 리조트에 관련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리조트 관계자는 홍보실에 해당 건물은 사전에 문제가 보이지 않았고, 보수 견적을 문의했던 사실이 없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저와 홍보실은 관련 내용을 취재하는 언론에 즉각적인 반론을 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제보자와 논쟁으로 확산하는 걸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제보자는 정의로운 시민으로서 언론 취재에 응했는데, 거짓말을 한 사람으로 몰리면 제보와 반격으로 맞설 것입니다. 논쟁은 위기 상황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리조트 측의 설명을 믿었지만, 상황을 악화시킬 필요는 없었습니다. 홍보실은 반박보다는 관련사실을 파악하고 있으니 사실이 명확해질 때까지 보도를 유보해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둘째, 리조트가 홍보실에 거짓을 말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조트는 사망사고가 발생하며 형사적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건물 붕괴 조짐을 사전에 알고서도 영업했다면 처벌이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증거도 없이 리조트 측의 말을 100%로 언론에 전달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관련 제보는 거짓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언론에 제보한 사람이 건물을 착각했던 것입니다. 제보자가 리조트 근방에 있는 다른 중소기업 건물을 리조트 건물로 착각해 생긴 우발사건이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사실이 아닌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됩니다. 진실을 덮기 위해 낳았던 거짓은 훗날 비수가 되어 날아올 수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홍보실은 사실을 해명해야 하고, 의심스럽거나 논란을 키울 수 있는 해명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기자들은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합니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 인근 주민, 직원, 회사의 용역업체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질문을 던져 사건의 이면을 취재하려고 합니다. 이때 사실과 다르거나 회사의 입장과 다른 내용들이 많이 전파됩니다.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 초기에도 리조트 청소를 담당했던 일부 직원들의 인터뷰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홍보실과 회사는 즉시 리조트와 관계사에 협력사와 직원들에 언론의 취재는 홍보실과 대책본부로 연결해 달라는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위기 상황이 목소리는 한목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내용은 회사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으로 오인당할 수 있습니다. 홍보실은 사건의 내용을 명확히 파악하고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해 관련자들에게 공유해야 합니다. 공식적인 목소리 이외에는 될 수 있으면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마우나오션 리조트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입니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던 대학 신입생들의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 남은 학생들은 친구를 잃은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하 것입니다. 신입생 한 명은 하반신 마비가 되어 평생을 고통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고입니다. 홍보 담당자로서 이런 위기상황이 오면 참담합니다. 특히 희생자가 발생하는 사고는 회사를 대변해야 하는 홍보담당는 당활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유족과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회사의 책임소재를 최소화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마우나리조트는 피해자와 유족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었기에 위기상황을 조기에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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