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 人 3
패션회사에서 홍보 담당으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2011년 12월 16일 오전 알고 지내던 방송국 기자에게서 카메라와 함께 사무실로 회사로 찾아오겠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잠시 후 다른 방송국 기자들도 연달아 전화를 했습니다.
그날 아침 소비자시민모임(이하 소시모)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9개 브랜드, 12개 아웃도어 제품에 대해 안전·품질 기준을 평가한 결과 홈쇼핑에서 판매된 코오롱 액티브 재킷 내피에서 발암물질인 아릴아민이 기준치의 약 20배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언론에 발표한 것입니다.
소비자시민모임에서 발암물질이라고 지적한 ‘아릴아민’은 옷 원단을 염색할 때 첨가되는 염료에 포함된 성분 중 하나입니다. 섬유 원단의 선명한 색을 표현하기 위해 많이 사용되는 성분이지만 인체에 흡수되거나 피부에 유입이 되면 피부염이나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웃도어 의류에서 발암물질 검출’ 소비사 시민모임 발표 내용중 언론은 발암물질을 보도 헤드라인으로 뽑았습니다. 언론은 자극적인 용어를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아웃도어 의류 인기가 절정을 이루고 있을 때라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옷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은 가뜩이나 건강에 예민한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온라인 속보에는 “코오롱 아웃도어 제품에서 발암물질 검출”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부서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왜 사전에 홍보팀과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는지를 문의했습니다. 해당 부서에서는 소비자시민모임이 결과를 언론에 결과를 발표하기 몇 주 전 전달받았고, 홍보팀의 모 직원과도 내용을 공유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내용을 공유받은 직원은 해당 부서에서 내용이 공개되기 전까지 비밀 유지를 당부받아 팀 내 공유하지 않고 혼자서 대응방안을 모색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팀에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소 황당했지만, 사고수습이 먼저였습니다.
의류뿐 아니라 생활용품은 출시 전 원단(원재료) 성분 검사를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분조사 결과 안전에 문제가 없어야 시중에 판매될 수 있다. 문제 된 홈쇼핑 아웃도어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1차로 생산된 제품은 안전기준에 적합했다. 유해 물질 검사결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추가생산을 할 때 생산공장이 변경한 것입니다. 회사는 1차 생산과 똑같은 내용으로 생산을 주문했기에 변경된 공장에서 생산한 옷에 대해서는 성분 검사를 추가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홍보팀 인원들과 상황에 대한 진상을 체크하고 언론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몇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첫째, 사과의 메시지가 우선이다.
둘째, 메시지는 솔직하고 간단하게 한다. 변명으로 비치지 않도록 한다.
셋째, 소비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아웃도어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 이미지에 불똥이 튀게 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언론의 취재열기는 더해졌습니다. 조용한 연말을 보내고 있던 사무실 전화기와 휴대전화기가 끊임없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전화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다른 전화가 이어집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패션/유통 출입 기자들의 취재 문의도 많지만, 평소 안면이 없던 사회부 소속 기자들의 전화도 꽤 있었습니다. 기자들의 취재 문의에 “소비자들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해당 제품은 홈쇼핑에서 판매된 옷으로 전량 리콜에 들어갔다”고 설명했습니. 코오롱스포츠와는 유통구조와 생산구조도 다르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기자에게는 발암물질이 검출된 원인과 배경도 덧붙였습니다. 해당 제품이 홈쇼핑에서 1차 생산한 제품이 완판이 된 후 추가생산을 하면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중국 내 생산공장을 변경하게 됐고, 변경된 공장에서 염료의 성분을 임의로 바꿔 문제가 됐다고 설명해줬습니다.
사무실에 찾아온 방송국 기자들도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고, 전화취재 문의도 뜸해지면서 한숨 돌리고 있을 때 YTN에서는 생방송 인터뷰 제안이 왔습니다. YTN은 인터뷰 요청이 강요가 아니라 소비자시민모임과 인터뷰를 할 계획이고, 코오롱에도 동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경영진에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인터뷰에 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방송국에서 보내온 질문은 5가지였습니다.
[질문1] 고객들의 문의 전화가 많을 텐데 회사의 상황은 어떤가?
[질문2] 시민단체 조사 결과 발암물질이 검출된 액티브 제품, 어떤 제품입니까?
[질문3] 이제까지 판매된 양은 어느 정도인가?
[질문4] 중국에서 생산되는 과정에서 염료 문제가 아닌가 하는 말도 있던데, 어떻게 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건가요?
[질문5] 내부적으로 상품 검사 시스템을 재정비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실 계획인가요?
[질문6] 전량 리콜하신다죠? 이 제품 산 소비자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환불받을 수 있나요?
방송국에서 온 질문에 대한 답변 내용을 작성해 회사에 공유한 후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만큼 답변은 최대한 단문으로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인터뷰 중에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발암물질’이라는 표현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보내온 질문과 다른 내용을 묻는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긴장을 잔뜩 한 채 방송 인터뷰가 연결됐습니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앵커는 보내온 질의서 순서대로 질문을 해 주었습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방심하고 있던 찰나 앵커가 질문에 없는 내용을 물었습니다.
“문제가 된 아릴아민이라는 물질은 사용해도 되나요?”
“아, 기준치가 있고요, 기준치 이하로는 사용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질문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긴장을 늦췄던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합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사내외에서 온갖 비난이 쏟아질 것입니다. 온몸의 솜털이 일어설 정도로 긴장감이 극에 달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답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후에도 한두 개의 질문은 예상 질문에 없던 것이지만 준비한 답변 내용을 기반으로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발암물질’ 등 부정적인 표현은 최대한 삼가고, 해당 제품은 홈쇼핑에서만 판매한 제품으로 백화점이나 대리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아웃도어 제품과는 별개의 제품임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회사가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도 강조했습니다.
오후 늦게는 대표이사의 사과 영상을 찍어 방송국에 배포했습니다. 사내 영상 촬영팀의 협조를 얻어 대표이사가 직접 소비자에게 사과함으로써 회사가 진정성 있게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홈쇼핑 브랜드를 직접 언급함으로써 코오롱스포츠와는 별개의 제품임을 간접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액티브 제품으로 고객 여러분께 염려를 깊이 대단히 죄송합니다. 재발 방지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조치를 통해 신뢰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표이사 사과 영상은 YTN과 KBS, SBS, MBC 등 방송 3사 저녁 뉴스에 방영이 됐습니다.
이슈는 빠르게 마무리 됐습니다. 회사는 해당 제품을 전략 회수하고 소비자들에게 환불과 교환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해당 브랜드의 홈쇼핑 사업도 중단했습니다. 코오롱스포츠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건 초기 지켜야 할 원칙이 충분히 지켜졌기 때문입니다.
홈쇼핑 판매부서가 관련 내용을 사전에 공유했다면 소시모가 언론에 발표할 때 ‘코오롱 아웃도어 의류’가 아니라 ‘홈쇼핑 아웃도어’ 혹은 ‘코오롱 액티브’ 라는 표현해 달라고 사전에 조율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코오롱스포츠 브랜드가 겪었을 혼란도 대폭 줄었을 것입니다.
언론은 자극적인 표현을 선호합니다. 소비자가 직접 사용하는 제품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발암물질’이란 표현입니다. 소비자들은 피해 가능성은 따지지 않고 발암물질이라는 단어에 경계심을 높이게 됩니다.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로 잘 나가던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사례는 많습니다. 직접 겪은 사례는 아니지만 언론의 잘못으로 인해 기업과 소속 임직원들을 절망에 빠뜨린 대표적인 사례로 ‘참토원 황토팩’ 사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7년 KBS는 홈쇼핑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참토원 황토팩에서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참토원은 중견 탤런트 김영애 씨가 2001년 설립한 회사로 홈쇼핑을 통해 황토팩을 판매하며 1,7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중소기업이었습니다. 참토원의 황토팩은 요즘 화장품 한류의 원조 격이기도 합니다. 참토원은 국내 인기에 힘입어 미국 일본 호주 브라질 몽골 등 15개국에 수백 원 대의 제품을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KBS의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에서 "황토팩에 중금속 함유"라는 보도가 나가면서 참토원과 김영애 씨는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보도 직후 김영애 씨와 참토원은 해당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며 기자회견을 열러 반박했지만 추락하는 사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소비자들은 피부에 직접 바르는 황토팩에서 사람의 몸에 해로운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내용을 기억하지, 회사의 반론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2007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사 결과에서도 황토팩에 포함된 자철석은 황토 고유의 성분이며 인체에 해가 없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KBS의 중금속 함유 보도는 허위임이 밝혀졌습니다. 2010년 7월 14일 참토원이 KBS와 '소비자고발'의 이영돈 PD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에서도 법원은 KBS에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KBS 소비자고발팀이 황토가 함수 산화철과 무수 산화철을 함유한 규토와 흙으로 이뤄진 자연 상태의 흙입니다. 황토가 붉게 보이는 이유는 산화철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KBS 소비자고발팀도 황토에 포함된 산화철의 성분을 알았을 수도 있습니다. 단지 중금속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고 중금속이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이라는 프레임 황토팩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김영애 씨는 소비자고발의 보도 이후 자신과 참토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보도 직후 끊긴 판로를 다시 열기에는 힘에 부쳤습니다. 황토팩이 인체에 해가 없다는 시험 결과를 제시하며 여론을 설득했지만 한번 무너진 제품 이미지와 매출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김영애 씨는 ‘죽기 전 공포를 느꼈다’라며 당시의 심정을 설명하고 한동안 약에 의존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사업을 접고 방송에 복귀했지만. 그리고 2017년 4월 췌장암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영돈 PD는 김영애 씨가 세상을 떠나고 난 2년 뒤 한 기자간담회에서 "늦은 걸 알지만 김영애 씨께 사과하고 싶습니다.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라며 사과의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참토원과 김영애 씨는 민사소송과는 별개로 이영돈 PD 측을 상대로 허위보드로 인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보도 내용이 허위지만 이영돈 PD가 이를 진실처럼 믿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에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한다'라며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제품은 사라지고 수 십명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책임질 사람은 없었습니다.
만약 이영돈 PD가 중금속 대신 산화철이라고 표현했다면 김영애 씨는 아직도 참토원을 이끌고 있을 것입니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언론은 산화철이라는 적확한 표현 대신 중금속이라는 표현을 썼다. 중금속이라는 표현이 소비자들에게 더 강렬하게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비단 우리나라 언론만 뿐 아니라 해외 언론에서도 유사한 사례는 많습니다.
1985년 오스트리아 와인 판매업자가 와인에 부동액을 넣은 혐의로 기소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포도주 제조업체는 낮은 품질의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해 왔지만, 일부 판매업자가 비싼 값으로 와인을 팔기 위해서 와인 맛을 풍부하게 해주는 ‘디에틸렌글리콜’을 첨가한 것입니다. 해당 와인은 서독에서 판매되는 와인에 대한 품질관리를 수행하는 한 와인 연구소에 의해 밝혀졌고, ‘와인에 부동액을 첨가했다’는 와인 스캔들 보도는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스캔들을 일으킨 와인업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오스트리아 와인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이후 오스트리아 와인 수출은 90%나 줄어들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와인 사업이 절치부심해 과거의 수출로 돌아가는 데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려야만 했습니다.
와인에 포함된 ‘디에틸렌글리콜’은 많은 양을 섭취하면 독성 물질이지만 부동액에 첨가되는 ‘에틸렌글리콜’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디에틸렌글리콜이 첨가된 와인’ 이라는 제목 보다 ‘부동액이 첨가된 와인’이라는 제목 100배는 더 충격적으로 느껴집니다.
언론은 독자에게 강렬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자극적인 용어를 선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