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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Jun 26. 2023


평상은 한 여름의 진리이다. 마음대로 널브러질 수 있는 널찍한 크기도 그렇지만 바람이 술술 통하는 마법 같은 구조도 한몫한다. 시원하게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맛이 참말 좋다. 이파리를 흔들며 노래 불러주는 푸릇한 나무들이 있다면 귓속까지 시원해지겠지. 대신 에어컨 실외기가 열심히 바람을 휘져으며 쉭쉭 대는 소리도 그럭저럭 괜찮다. 어쨌든 옥탑방은 이래서 좋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뜨겁다는 단점도 별 것 아닌 듯한 평상 하나로 퉁 쳐진다.


요즘은 누워서 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올여름은 도심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별이 한가득 떠 있다. 처음엔 머리 위를 지나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비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되다 보니 이젠 지쳤다. 지쳤다고 쳐다보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떨어져 내리는 별똥별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공기오염을 없애기 위한 쌈박한 도구가 개발되기라도 한 것 같았다. 뿌연 하늘만 올려다보다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바라보니 흥미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빠져든다. 우리 집에서 보이는 도심도 나만큼 별에 취한 게 분명하다. 해만 지면 오색찬란하게 빛나던 불빛들이 싹 사라졌다. 다들 별빛이 너무 밝아 불 켤 생각도 들지 않는 거지.


올여름은 다 좋은데 딱 하나 안 좋은 걸 뽑으라면 더위랄까. 너무 더워서 장마도 사라졌는지 비가 정말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다. 여름이면 귀를 멀게 하는 맴맴 소리도 어디로 가버렸다. 장마가 왔다가 가야 땅이 물러져서 벌레들도 기어 나올 것인데 말이다. 뉴스에서 '00년 만의 가뭄' 어쩌고 떠들어댈 것이 눈에 선하다.






일을 그만두고 빈둥거린 지 벌써 반년이나 지났다. 모아놓은 돈을 다 까먹었다. 아껴 쓰려고 했는데 벌써 바닥이다. 뭐 어쩌겠는가. 쥐꼬리만 한 알바 월급으로 얼마나 버티겠다고. 그동안 집에 알바라고 말을 못 해서 연봉을 뻥을 쳐놨는데 이제 솔직히 말하고 돈을 좀 받아야겠다. 더 좋은데 취직하고 배로 갚아드리면 되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요즘 이상하게 인터넷이 느리다. 전화기도 잘 안 터지고. 왜 이러는 거지.








이상하다. 어제부터 아무리 전화기를 눌러도 통화가 되질 않는다. 기지국이 미쳤나. 통장에 들어 있던 마지막 보루인 몇 천 원이라도 뽑아 써 보려고 은행에 갔다. 이게 웬걸. 처음 보는 숫자의 동글 베기가 새겨져 있다. 볼을 꼬집어 봐도 눈을 아프도록 비벼봐도 변하지 않는다. 꿈이 아니다. 집에서 보낸 건가. 뭐가 급했는지 'ㅇ'라고만 쓰여 있다. 엄마인가. 아빠 몰래 보내느라 급하셨나 보다. 더 웃긴 건 길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 다들 어디 간 거지? 편의점에도 사람이 없어서 기다리다가 물건을 그냥 들고 나왔다. 나중에 뭐라고 하면 돈을 주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이제 난 부자니까.


날씨도 미쳐간다.  길에 널브러져 있던 종이에 갑자기 불이 붙은 걸 본 것 같다. 내 눈도 미쳐버린 걸까? 오늘은 오래간만에 비싼 술과 안주를 샀다. (아. 돈을 낸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있어야 내지 않겠냐 이거다. 앞으로 낼 예정이니까 샀다고 치고.) 저녁에 별이나 보면서 신선놀음이나 해야겠다.








에어컨을 틀어도 더워서 어제는 문을 다 열어 재치고 잤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본다고 손해 볼 것도 없고. 오늘도 정말 별이 많이도 나왔다. 나왔다기보다 별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은 건 나만의 생각인가. 빛이 반짝이는 게 아니라 구체가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너무 밝은 데를 보고 있었더니 눈이 어리어리 한 모양이다. 아까 보니 길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온 사방이 고요하니 감각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물속에 있는 것처럼 멍하고 움직임이 둔해진다.


며칠 전에는 멀리서 로켓 같은 것이 발사되는 것 같았다. 이 근처에 발사대는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신기했다. 그새 이 동네에도 항공우주국 같은 대단한 것이 들어서기라도 했나 보다. 오늘밤은 그런 이벤트 없나? 있다고 해도 별빛이 너무 밝아서 보일지 의문이기는 하다. 계속 덥다. 그리고 너무나 눈이 부시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얼굴을 있는 대로 찌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는데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평상 위에 올려져 있는 술병이 쓰러졌다. 에이 씨. 한병 밖에 안 사 왔는데. 귓가에서 자꾸 쉭쉭 대는 사람소리 같은 것이 울린다. 별이 눈에

띄게 커져간다. 온 하늘이 뜨겁다. 하늘이 꼭. 얼마 전에 길가에서 본 타 들어가는 종잇조가리같다.


평상 위에서 바라보는 널따란 도심에는 벌건 별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별은 올려다보는 건 줄 알았더니 내려다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소원이라도 빌어야 하나? 아 좆같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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