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에 함부로 쳐들어와 나를 파괴시키려는 가족을 둔 것.
내게는 두 살 터울의 언니가 있다.
하늘도 공평하신지라, 인물은 언니에게 공부머리는 내게 내리셨다.
나의 어린 부모들은 미숙했다. 이쁜 첫째를 사랑하는 것만큼 둘째를 사랑하진 못했고.
뭐든 처음 겪는 첫째에게 몰빵하려는 심리는 가난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리라.
없는 살림에 아들인지 알고 낳았는데, 딸이 나와 심기가 불편했었음을 어릴때부터 듣고 자랐다.
(딸이 받을 상처를 배려할 정도의 성숙한 부모가 아니었다)
부모의 사랑을 몰빵받은 첫째는, 외모의 우월감을 일치감치 깨달아 무기로 삼았고(동생보다 이쁘다는 사실이 그녀를 기쁘게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본인의 머리가 아주 나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괴롭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우월감이란 경험을 해주었던 동생이,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물론 부모들이 그녀가 공부를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꼴찌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사랑이 식거나 변한것은 결코 아니다.(사랑은 감정이므로) 하지만 미성숙한 부모들은 공부를 못하는 것에 대해 혼을 내기도 하고, 첫째의 망나니 같은 행동을 점차 받아주지 못했으며, 동생과 비교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마음속에는 동생에 대한 열등감이 자리잡았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첫째를 임신했을 때 너무나 가난하여 먹을것이 부족해 빗자루대를 삶아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언니가 부족한 것이니 니가 이해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한다. 언니의 폭력성과 이기심을 가족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지만, 다행이 그 폭력성은 나에게로만 향했다. 언니를 컨트롤 하는것보다는 나를 컨트롤 하는것이 쉬웠으므로, 항상 폭력을 일삼는 언니를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는 그러한 가정 분위기에서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내게 풀면서 사는 언니를, 부모가 주지 않는 사랑을 얻기 위해 망나니 언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그러니 언니가 내게 함부로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고, 나는 그것을 참고 견뎌야 하는 숙명을 가진 존재였다.
내 학창시절 꿈은 집을 나가는 거였다. 죽고싶다는 생각도 많이했다. 왜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났을까 하고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청소년 우울증이라는 표현이 종종 방송에 나오는데 딱 그거였다. 집에서는 언니의 폭력성 때문에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 생활해야 했고, 한시도 편한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성장하여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학교 선생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형편없는 가족을 만났지만, 다행이 나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배울수 있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교통사고 후 복직을 하신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은 얼굴의 살점이 떨어져나가 입술의 절반이 없는 상태로 수업을 하셨다. 입술이 닫히지 않아 발음이 새고 표정도 제대로 못 지어졌지만 선생님은 결코 멈추거나 위축되지 않으셨다. 단 한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셨다. 나는 그런 선생님을 존경했고 그런 마음이 내게 힘을 주었다.
그런 힘든 유년기를 보낸 나는 이제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가족이란 참 변하지 않는다.
명절날. 연락도 되지 않고 찾아오지도 않는 첫째를 보러 가겠다고. 먹을걸 바리바리 싸서.
내 차에 실어 같이 가자는 엄마를 모시고 첫째가 사는 아파트에 갔다.
예상했던 대로 집에서 자고 있었고, 갑자기 찾아와서 화가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퍼부어댔다.
삶이 힘들고, 스트레스 투성이라고 말하며. 나에 대한 혐오, 불만, 욕들을 쏟아낸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가져간 김치와 갈비를 차례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한심하기만 했고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시궁창에 발을 들인것이 끔찍하기만 했다.
딸에게 그런 무자비한 욕을 가르친 사람이기도 한 엄마는 몸싸움까지 해가며 고래고래 싸우는데. 나는 어쩔줄 몰라하며 잠시 앉았다. 그러자 갑자기 일어나 부엌에 있는 식칼을 빼들고 내게로 달려오는 첫째.
식깔을 내 목으로 가져와 칼끝을 목을 향해 찌르는 시늉을 반복하며, 웃으며 나를 위협하였고. 첫째를 자극하면 혹여라도 무슨짓을 저지를지 몰라 아무말도 하지 않고 얼음이 된 상태로 앉아있었다. 실실 웃으며 칼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첫째는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 칼을 부엌에 갖다놨다. 나는 엄마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아파트를 나서자 다리가 풀려 계단에 주저앉아 버렸다.
하염없는 울음이 터져나오는 데도 엄마는 나를 위로해주지 않았다.
첫째는 세상일이 맘대로 풀리지 않거나 화가 나면, 나를 화풀이 대상으로 생각하는 구나! 그제서야 깨달았다.
가장 약한 사람, 함부로 해도 뒷탈이 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경험 때문이다.
앞으로도 삶이 뜻대로 안되거나 화가 나면, 그 화살이 내게 오겠구나. 내게 무슨짓을 할지 모르겠구나.
나는 그 칼끝의 경험으로 정신을 번쩍 차렸다. 첫째와의 절연을 선언했다. (모든 것을 차단했다)
곧 엄마의 칠순이다.
맛있는 집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첫째를 같이 보자고 한다.
칠순인데, 자식들이 엄마한테 효도해야지.
그래도 언닌데 니가 이해하고 같이 보고 살아야지.
내가 힘들게 가꾸고 키워놓은 내 텃밭에
마음대로 들어와 짓밟고 꽃을 꺽고 줄기를 헤집어 놓아버리는 짓을 반복 하는 사람을
자꾸만 내 텃밭에 들이라는 엄마.
첫째가 내게 한 짓을 알고도, 첫째를 혼내거나 용서를 구하라는 말 한번 한적 없이. 첫째를 무한히 사랑만 하는 그 마음을 나는 혐오한다. 그럼에도 내겐 하나밖에 없는 엄마라서 도움을 청하는 엄마의 말에 또 다시 흔들리게 되는 내 약한 마음 또한 싫다. 차라리 첫째가 운전도 하고, 엄마한테 잘하고 엄마 부탁도 들어주는 사람이라면 내가 편히 엄마를 끊어낼텐데. 첫째는 부탁할 게 생겨야 엄마한테 연락할 정도다. 엄마는 부탁할게 있으면 내게 연락한다.(우리 가족의 관계는 변함이 없다)
이런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일상에 허락도 없이 쳐들어와, 읽던 책을 집중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일.
그때의 그 공포로 나를 끌어들여 오늘 할일을 다 망쳐 버리는 일.
이 불행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면,
더 이상 내 일상을 망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