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몸을 통해 깨닫는 시간.
비싼 커피와 함께 빵도 같이 먹었기 때문에
우리 모녀는 늘 하던대로 저녁 산책을 나선다.
명절이면, 엄마가 동네 친구와 매일 저녁 운동하는 그 길을 함께 한다
7키로, 늘 걷던 속도와 호흡으로 그렇게 걷고 집으로 온다
땀을 더 많이 흘린 엄마에게 먼저 씻으라 하고,
나는 거실에 대자로 누워 폰을 본다
잠시후 다 씻고 난 엄마가 거실에 나와서 옷을 입는다.
모녀 지간에 엄마의 몸을 얼마나 많이 봤을까..
내 몸 만큼이나 익숙한 엄마의 살결.
탱탱하던 엄마의 피부가
매끈하던 엄마의 허벅지가
통통하던 엄마의 뱃살이
목욕탕에서 숱하게 보았던 할머니들의 처진 몸처럼
살들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이제 할머니였다
엄마의 몸을 본 것은 충격이었다
엄마의 몸은 너무나 달라졌다.
엄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여성스러운 생명력을 지녔었는데..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된 엄마에게,
지지 않겠다고. 독립하겠다고....
그렇게 기를쓰고 이기려고 한 건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는 늙고 있는데,
왜 나는 그걸 몰랐을까
욕실에 들어와, 샤워를 하려고 보니
샤워기에 낀 곰팡이 때가 보인다..
청소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눈이 안좋아지면서 작은 때가 낀 것을 잘 못본다
엄마가 보지 못한 욕실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이런 엄마에게 지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은 나를 반성하며
욕실의 묵은 때를 열심히 벗겨내었다
내 마음의 상처는
엄마의 몸 앞에서
생명력의 한계를 확인한 순간
박박 닦아 물에 씻겨나가고야 마는
작은 곰팡이 같은 것임을
깨닫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