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만난 그녀가 내게 남긴 것
취업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릴 때면, 도서관에 온 여자들을 훔쳐본다
여자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몰래 훔쳐보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혼자서만 은밀히 하는 일종의 일탈인 셈이다
며칠 전부터 검은색 모자를 눌러쓴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나이가 꽤 들어 보이지만 분위기는 어쩐지 좀 예쁘다. 두꺼운 소설책을 펼쳐 들고 앞부분을 계속 뒤적거리고 앉아 있다. 나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가 몇 번 눈이 마주쳤다.
얼른 눈을 피해버렸는데, 다행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얼마 후 도서관의 로비로 나온 그녀는 한쪽 벽을 차지한 게시판에 멈춰 섰다
각종 포스터부터 포스트잇까지 붙어있는 게시판. 종이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만든 자국들이
게시판의 연식을 확인시켜 주는 듯. 언제 붙인 건지 모를 '스터디원 모집'과 '독서클럽 회원모집' 등의 글들이 A4용지에 출력된 채 붙여져 있고, 포스트잇으로 '발자국 소리 조심', '키보드는 저소음으로'라는 소음 유발에 대한 경고부터 '도서관에서 뭐 먹지 마세요'라는 등의 스트레스가 느껴지는 글들까지 무작위로 붙여져 있다.
이 와중에 반듯하고 세련된 글자와 선명한 칼라로 인쇄된 광택 나는 포스터들이 유독 눈에 띈다.
"청년 고립감을 느끼시나요? 청년 마음 돌봄 상담. 5회까지 무료지원"
그녀는 처음 보는 포스터인 듯 열중해서 살펴보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무척 말랐고, 어딘가 아파 보였다.
핏기 없는 얼굴과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근처에 내가 있는 것도 모르는 듯하다.
갑자기 화가 난 듯 무언가를 중얼대기 시작한다.
"청년 청년 청년. 나 때는 이런 것도 없었는데"
그러더니 갑자기 포스터 하나를 벽에서 떼어내 마구 찢기 시작한다.
"아니 아줌마 뭐 하는 거예요?"라며 커피 자판기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가온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에게 집중하자, 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듯하더니 이내 바닥에 고꾸라졌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구급차가 오고 그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데는 불과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놀란 맘에 그 자리에 얼어붙은 내 눈에 그녀가 남기고 간 포스터의 잘린 조각들이 들어왔다.
바닥에 널브러진 몇 개의 조각들을 맞춰보니 글자가 보였다
"청년 취업을 도와드려요, 6개월간 수당 50만 원"
그녀는 이 포스터에 화가 난 걸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