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학원생은 학생일까 근로자일까?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대학원의 법적 위치를 몰라서가 아니다.
대학원, 대학원생의 생활은 애매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대학원은 교육기관, 즉 학교이지만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학생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그들이 근로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1. 정해진 근무 시간과 규칙이 있고
2. 상사가 있고
3. 급여를 받으며
4. 방학이 없고 대신 (쉽진 않지만) 휴가를 써야하고
5. 남의 돈(교수의 연구비 vs 회사 자금)으로 일을 해서 성과를 내야 하는데
6. 저성과 또는 문제행동시 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원은 교육기관이고 대학원생은 학생이 맞지만 그 근무 환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원이 회사와 다른 점은
1. 수업이 있고
2. 시험이 있다.
정도가 아닐까?
자세하게 말하자면 잔소리가 길어지지만 결국은 두 가지로 귀결된다.
하나. 근무시간을 준수할 것.
대학원생에 대해 흔히 하는 착각이 있는데, 낮 밤이 바뀌고 아무 때나 나오며 실험실에서 밤을 새우며 사는 것과 같은 대학원 괴담들이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주변에 그런 친구를 본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대부분 연구실은 정시 출근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걸 잘 지키지 않고 지각이 잦거나 근태가 엉망이면 혼나게 마련이었다.
실제로 9 to 6가 규칙인 랩에서 많은 학생들이 전날 늦게 퇴근했다는 핑계로 아침 출근이 조금씩 늦어져 10시 심하면 점심에 나오는 경우를 많이 봤다. 실험하다 보면 퇴근이 늦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그런 다는 건 실험 스케줄 관리를 못하는 거다. 12시간짜리 실험이 아닌 이상 일과시간 내에 끝낼 수 있다. 교수님이 눈치를 준다고?? 근무시간 채우고 실험 잘해서 논리적이고 좋은 결과만 가져가면 뭐라 할 수 없다. 뭐라 한다 해도 당신이 할 말이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지각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해본 적도 없더라. 당신이 무슨 짓을 하건 근무 시간은 지켜야 하는 거다.
매일 회사에 지각하는 사원을 생각해봐라. 그 사람 인사 고과가 정상일리 있겠나?
세상에 어느 사회에서 상습적인 지각과 잦은 결근이 용납되는 곳이 있던가?
그리고, 제발, 근무 시간에는 일만 하라. 낮에 커피 마시고, 쇼핑하고, 잡담하고 카톡 하다가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 오후에 일 시작하니까 밤에 퇴근하는 거다.
둘. 성과를 낼 것.
대학원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뭘까? 졸업이다.
졸업은 어떻게 하는지 아는가? 졸업 요건-영어 점수, 학점이수, 논문 게재-을 모두 기본으로 완수한 뒤 교수님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 이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해외 학술지에 논문 게재 또는 교수님의 허락이다. 논문 게재와 교수님의 허락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데, 좀 이상한 교수님이 아닌 경우에야 학생이 이만하면 쓸만한 논문을 썼다 싶으면 졸업을 시켜주게 마련이다. 그런데, 논문을 쓰는 과정이 교수님과의 끊임없는 밀당이라 나의 가설과 교수님의 가설이 다를 수도 있고, '이만하면 쓸만한 논문이다'의 기준이 교수님과 다를 수도 있다. 서론이 길었지만, 어쨌든 당신의 궁극적 목표, 졸업을 위해서는 논문을 써야 하고,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실험에서 데이터를 도출해야 한다. 그 데이터 하나하나가 당신의 성과이다. 만일 실험은 했는데 실패해서 데이터가 없다. 뭐,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 트러블슈팅하면 된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된다? 당신은 연구비는 낭비하면서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인건비도 지급된다. 교수로서는 당신을 데리고 있을 이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교수님도 논문을 써야 실적이 인정되고 그래야 학교에서 안 잘리고 눈치도 안 받고 다음 연구비도 딸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우리들을 압박하고 회유하고 협박하는 것이다.
할 일은 하자. 할 일이 좀 많긴 하지만, 너무 많으면 선 긋고 내 업무가 아닌 것에 대해 못하겠다고 해도 된다. 단, 당신이 당신의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 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