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떠도는 호수처럼

by 수우미양가


합의


합판을 사포로 문지르자

거칠게 일어섰던 곁들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사포의 거칠고 껄끄러운 표면이

나무의 거친 것들을 잠재운다

이것은 서로의 양보가 아니라

서로를 닳아가자는 합의,

그러니까 모든 합의 속에는 부드러운

나뭇결이 있다

그렇다면 저 뜨거운 태양을 한번

사포질 해볼까 햇살 속에

들어 있는 빛의 바늘들을 모두 밀어내

따사롭고 서늘한 가을볕으로

만드는 건 어때, 오래도록 마음 눅눅하게 만드는 구름 낀 하늘도 빡빡 문질러

습기를 빼내 버리고 두둥실 흰 구름만

띄워놓는 거야 잡초 무성한 공터를

시원하게 밀어낸다면 그 위에 하얗고 불빛 맑은 집 한 채 지을 수 있겠지

거친 나뭇결을 사포질 하다가 알았다

서로 아프게 맞닿아 양보한 곳들이

부드럽고 매끈한 표면이 된다는 것을,

부드러운 것들끼리는

아픈 뒤가 없다는 것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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