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떠도는 호수처럼

by 수우미양가


배밭 발전소


낙화 선별 중인 배밭,

누가 불 끄는 것을 잊은 채 외출했을까

대낮인데도 환하다

생전에 스위치 내리는 습관으로 온 방 돌아다니시다 배밭 한 귀퉁이에 묻히신 할머니, 어쩌면 지하의 발전소 직원이라도 되어 계실지 몰라. 지상의 배밭이 환한 건 지하에서도 절전하시는 할머니 덕일 거야. 그렇지 않고서 저렇게 밝은 불빛 땅 위에 켜질 리 없어. 매년 이맘때쯤이면 땅속에서 바쁘게 들려오는 발전소 기계 돌아가는 소리. 이런 봄밤에 할머니 무덤에 찾아가서 계셔요? 아무리 불러 봐도 대답 없을 거야. 할머니는 무덤 비워놓고 잠시 지상을 나와 배나무마다 불 끄고 다니실지도 모르니까.

저 많은 방의 불들 언제 다 끄실까

할머니는 죽어서도 바쁜 철이겠다

불 다 꺼진 나무에선

캄캄한 열매들이 열리겠지만

배는, 환했던 불빛을 껍질 속에 가두고 있어

밝은 대낮의 맛인 거지

빈집같이 적요한 배밭 귀퉁이의 무덤

할머니 외출 중이시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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