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적 사고는 기억을 견고히 만든다.

경험의 대상을 기호화해야 하는 이유

by 신승엽

태초에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인지적 과정을 거쳤을까요?

처음 인간들은 자연의 형상을 상형 했을 것입니다. 하늘의 떠있는 절대적 존재와도 같은 해를 둥글게 표현하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를 깃털을 넣어 표기합니다. 우뚝 솟은 산의 봉우리를, 가지를 뻗치고 있는 나무를 따라 그리며 물리적 대상을 사상(事象)했을 것입니다.

상형문자.png 우리 문화신문 신부용 "세계 글자들은 어떻게 발전되어 왔나?"에서 인용

오랜 시간이 지나 대상을 더 단순하게 표기할 필요에 따라 대상을 점이나 선과 같은 부호를 사용하여 지사(指事)화 했을 것입니다. 지시적(index)적 표현은 자연에 온전히 존재하는 대상이 뿐 아니라 방향, 수, 크기 등의 전달도 가능하게 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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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혔음에도 불구하고 점이나 선으로 표시할 수 있는 대상은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더욱 고차적인 상징적 기호를 만들어 냅니다. 글자를 조합하고(형성, 지사), 새로운 뜻으로 변형시키기도 했습니다. (전주, 가차)


한자가 만들어진 6가지의 원리인 '육서'를 퍼스의 이론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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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주의(experientialism)의 시각에서 기호적 경험은 기호적 사상(symbolic mapping)이라는 인지적 기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험의 한 국면이다. 기호는 우리 밖의 사건이나 사태, 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험의 문제다. 우리 경험은 물리적 층위와 기호적 층위로 구성되며, 기호적 경험은 물리적 경험을 토대로 확장된 새로운 국면이다. 기호적 경험은 기호의 산출과 해석으로 이루어지며 이 모든 경험은 기호적 사상을 거쳐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기호적 사상의 주인인 우리 자신이 바로 ‘기호의 주인’이다. (노양진, 기호적 인간 중에서)"


기호의 발생 원인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물리적 경험의 극복입니다.

배움의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직접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실행과 오류, 수정과 반복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받아들이고 배우게 됩니다. 경험은 물리적으로 직접 세상과 접촉할 수 있지만,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가집니다. 경험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쩌면 인간은 '기호'를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양진은 위의 저서에서 이것을 경험의 내재적 확장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타자와의 관계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도구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언문은 기호의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벽화,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같은 그림이나 도식도 기호의 출현에서는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세월의 침식으로 대부분 사라졌겠지만 석기시대 사피엔스들은 그들만의 기호를 통해서 타자와 관계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경험 안에 갇힌 존재다. 우리는 지각, 의식, 기억. 의도. 욕구 등 타자/타인의 경험내용에 직접 접속할 수 없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경험의 이러한 유폐성(incarceratedness)을 비켜서서 타자/타인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기호적 통로다. 기호적 통로는 제3의 물리적 매개체를 사용해서 이루어지며, 이 매개체가 바로 기호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기표’(signifier)가 된다. 이것이 경험의 외재적 확장이다. (노양진)"


셋째, 경험의 저장과 확장을 위한 몸의 반응입니다. 인간은 기억하는 동물입니다. 기억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 발현이기도 하지만 다른 동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호와 상징을 통한 시간 의식의 발현은 후회와 예측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은 현재라는 상황을 의식하게 만들고 미래를 예측하게 해 줍니다. 이러한 기억의 확장은 인간의 생존을 더 유리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고, 나아가 번영의 기회도 제공해 줍니다. 기호를 통해 경험을 단순화시켜 기억의 양과 질을 더 높이는 인간의 인지적 루틴은 강화되었을 것이고, 나아가 전달을 목적으로 한 교육이라는 행위로 이어집니다.

인간은 사회라는 자연과 다른 또 다른 환경을 구축해서 살아갑니다. 타자(타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기호로 대표되는 상징적 행위가 발전했을 것이고, 이것은 개념의 확장을 유추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높다, 낮다, 크다, 작다와 같은 지시적(index) 기호의 출현은 우리 몸의 반응입니다. 지시적 기호는 도상(icon)에서 상징(symbol)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세 가지 기호의 출현을 거꾸로 돌려 추적한다면 '경험은 어떻게 기억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복잡한 대상들을 우리는 비유적(metapor)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을 흔히 '쏜살', '흐르는 물'로 표현하죠. '꽃'이나 '구름'과 같이 좀 더 거리가 먼 은유적 표현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흔히 '무대'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세상이 '전쟁터'가 되겠고, 또 다른 이에게는 '꽃밭'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비유는 각자마다 다른 가치가 개입된 표현입니다. 동일한 세상을 각자의 관점에서(in terms of)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정한다면 그것은 교육이라는 행위에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경험의 대상을 기호화한다는 것은 자칫 대상의 왜곡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단순화하고 생략하고 정형화시키는 과정에서 대상의 본질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전달하는 자의 안목(眼目)이 개입됩니다. 이 부분은 다른 사례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슬라이드4.PNG 기호의 과정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복잡한 대상을 '기호화'하여 전달할 수 있는 '사례'를 '세계지도와 역사'라는 주제를 통해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슬라이드5.PNG 세계지도의 기호화 과정

'속기를 빼고 골기만 남기다'라는 말이 있듯이 복잡다단한 학습의 대상을 도식화하여 정리해 보겠습니다. 자칫 칫 분산되어 날아가버릴 지식의 정보들을 기호라는 보따리로 예쁘장하게 포장해 보겠습니다.

보따리로 싼 정보들은 쉽게 흩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달이 용이합니다.

박문호 박사는 이것을 '지식의 모듈화'라 표현했습니다. 아울러 대칭화, 순서화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 세가지의 원리를 기호적 변형에 반영한 사례를 여러분에게 보여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