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그리기

골기만 남기고 속기는 버리자

by 신승엽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탈리아의 형상은 장화와 비교된다. 한국의 형상은 서 있는 토끼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전라도는 뒷다리, 충청도는 앞다리, 황해도와 평안도는 머리, 함경도는 지나치게 큰 귀에 해당한다. 강원도와 경상도는 어깨와 등에 해당할 것이다."(Goto Bunjiro, “An Orographic Sketch of Korea”, Journal of the College of Science, Imperial University, Tokyo Vol. ⅩⅨ, 1903)


고토 분지로의 해석에 반발하며 최남선은 한반도 호랑이 형상론을 주장했습니다.

"우리 대한반도는 맹호가 발을 들고 허우적거리면서 동아(東亞) 대륙을 향하야 나란한 듯 뛰는 듯 생기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이다." (소년 창간호, 1908)

한반도 형상화 토끼 vs 호랑이


토끼든 호랑이든 땅의 모양을 각자가 형상화하는 것은 자유일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의식한다는 것이겠죠. 다만 동물의 기질에 빗대어 국민성까지 일반화시키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겠지요.


한반도를 나팔 부는 천사로 형상화

최근에는 한반도를 천사나 장구 치는 여인으로 형상화하기도 합니다.

아무렴 어떻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삼면이 동해, 남해, 서해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러시아의 만주 지역과 접하는 반도라는 사실입니다.

위의 도상적(Icon)적 형상을 지시적(Index)적 형상으로 변환하기 위해서 단순화시켜보면 S자 형태의 굴곡이 드러납니다. 한반도표 시멘트가 모태인 회사의 로고도 S자 형태를 띠고 있죠.


한반도표 시멘트로 시작한 한일 시멘트사의 로고


한반도 지형도, 굴곡이 여러 번 들어가 있다.

굴곡이 들어가 있다 보니 직선으로 단순화시키기에 어려움이 큽니다.

한반도는 서한만과 동한만, 경기만이 움푹 들어가 있고 동해안도 해를 맞이한다는 뜻의 영일(迎日)에서 변화가 생깁니다. 게다가 서남다도(西南多島)가 만드는 복잡한 지형은 세계지도만큼의 난도입니다. 필자는 세계지도 보다 한반도 그리기에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어떻게 형상화하든, 다보탑이나 고려청자 같이 섬세한 형상이 박혀 있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큰 굴곡만 지키고 거리와 크기의 균형을 맞춰보자"라 생각하고 기호화하기를 여러 번... 다음과 같이 한반도를 기호화했습니다.

한반도 기호화 프로토 타입
행정구역을 입힌 모습

곡선은 배제한다! 는 대전제가 깨졌지만 북한의 9개의 도와 남한의 9개의 도를 크기와 위치, 거리를 왜곡시키지 않고 집어넣기가 가능했습니다. 학생들도 쉽게 따라 그렸고, 교수와 학습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찝찝함에 다시 수정을 거쳤습니다.

처음 직선 지도는 선이 많아 오히려 기억에 방해가 되었습니다. 백두산이 있는 혜산지역과 4개의 대표 만을 왜곡하지 않고 살리니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졌습니다.

직선 기호로 재구성한 한반도 지도

여기에 행정구역을 입혀봤습니다.

전국 8도 행정구역도

지금의 특별자치도인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을 8도로 정리한 것은 태종(1400-1418)입니다. 각 지방의 명칭은 그 지역의 주요 도시 이름을 따서 정했습니다. 고려의 성종(981-997) 때 당나라 제도를 차용하여 10도를 설치하며 '도(道)'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했고, 이후 현종(1009-1031) 때 5도 양계 체계로 정리됩니다. 두 왕 모두 거란(요)의 침입을 받은 왕이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한국에서 '도(道)'가 지명으로 사용된 이유는 특정 지역으로 향하는 '길목'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길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을 묶어 관리하면서 행정구역의 단위가 되었습니다.(범선규, 조선 8도의 별칭과 지형의 관련성) 특정지역의 주요 도시 두 곳의 머리글자를 따서 '어디 어디 가는 길목'이라는 의미로 지명이 붙여진 것이죠. 길목을 지키면 방어에 유리합니다. 대륙과 해양세력의 충돌지점인 한반도는 외침이 잦았기에, 군사적 목적의 행정단위로 체계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산과 강은 경계를 만듭니다. 자연의 경계를 따라 동물들이 다니고 사람들이 오가며 길이 생겼습니다. 길목마다 마을이 일어났으며, 주요 길목을 묶어 인위적 경계를 만든 것이 행정구역이 된 것입니다. 철령관을 기준으로 관서와 관동, 관북으로 나누고 영서와 영동은 태백산맥이 가릅니다. 새도 넘기 힘든 고개인 조령(문경새재) 아래 영남이 자리합니다. 경기해의 서쪽이 해서가 되었으며, 일본 긴키(近畿) 지방이 그렇듯 서울 주변이 경기가 됩니다. 의림지 서쪽을 호서로, 금강(호강) 아래를 호남으로 칭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 지역 구분

개념은 사실적 정보들이 엮여서 형성되는 보편적인 관념입니다. 사실적 정보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역할은 '맥락'이 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맥락만으로 개념이 이해되었다고 오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념을 이해 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맥락을 걷어내고, 사례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지식의 구멍을 메우게 되면 개념은 더 견고해집니다. 그리고 자기 지식의 확인 경험은 다른 영역으로 전이됩니다. 중국과 일본과 같은 지역의 구분도 우리와 유사합니다. 세키가하라를 기준으로 간토와 간사이를 나누고, 태산을 기준으로 산동과 산서를 구분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제 전통적 지역구분이 아닌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매핑(mapping) 해 보겠습니다. 역시 직선으로 기호화한 지도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했습니다.


한반도의 행정구역

직선만으로 경계를 처리하니 내부도 직선으로 분절이 가능합니다. 위치와 크기, 거리의 왜곡을 최대한 삼가했습니다. 한반도의 면적은 약 22만 km², 남한이 약 10만 km², 북한이 약 12만 km²입니다. 남한의 면적을 10만 km²으로 기억해 두면 단위면적으로 사용하기 편리합니다. 캐나다가 990만 km², 남한의 99배, 미국이 980만 km², 남한의 98배. 이렇게 말이죠.


남한의 행정구역은 경상북도> 강원도> 전라남도 크기 순입니다. 경상북도가 북한의 자강도와 비슷한 크기고, 함경북도가 남한의 강원도와 비슷합니다. 강원도는 분단되어 2개로 갈라졌고, 충청도와 황해도는 동서로 구분되지만 남북으로 구분합니다. 내륙 쪽을 '북'이라 칭하는 것도 같네요. 자강도, 양강도, 황해북도, 충청북도는 바다를 접하지 않는 내륙지역입니다. 양강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압록강(803m)과 두 번째로 긴 두만강(521m)이 함께 흐르는 지역이라 두 개의 강 '양강(兩江)'으로 부릅니다. 북한은 두음법칙을 쓰지 않으니 '량강'으로 부르겠네요.


북한도 우리나라와 같이 내륙지역은 9개의 도로 나뉘고 좌우가 대칭적입니다. 직선 기호로 변형한 한반도의 행정구역을 대칭적으로 익히면 기억은 강화됩니다. 평안남도와 함경남도를 같은 선상으로,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를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와 같은 순서로 기억하는 것이죠.


주요 도시를 매핑한 한반도 지도


남한은 1개의 특별시(서울), 6개의 광역시(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울산), 1개의 자치시(세종)입니다. 북한은 1개의 직할시(평양), 3개의 특별시(남포, 개성, 나선)입니다. 대구가 군위와 통합되면서 그 면적은 가장 커졌으며(1499 km²), 인천(1063 km²)>울산(약 1000 km²)>부산(770 km²)>대전(540 km²)>광주(500 km²) 순입니다. 세종은 465 km²으로 광주보다도 더 작습니다.

인천은 강화도를 포함해 서해 섬 지역을 포함하게 되므로 면적이 넓지만 실제 육지면적만 보면 약 350 km²으로 세종보다도 작습니다. 서울의 면적은 약 600 km²으로 대전과 비슷한 크기이나 과천, 성남, 고양 등으로 이어지며 메갈로폴리스의 특색을 가지기 때문에 크게 느껴집니다. 실제 서울은 약 960만, 경기도는 약 1400만 이상의 인구로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경기 지역에 밀집해 있습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저출산의 가장 큰 이유이기에 세종의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광역시는 인구 100만이 기준이 되고, 시는 인구 5만 이상 이하 군, 면, 읍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북한의 특별시는 경제적, 역사적 이유로 지정된 것으로 보이며, 남한과 마찬가지로 이하 일반 시와 군으로 나뉘게 됩니다.


정리! 한반도는 S자형의 굴곡을 가진 복잡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선으로 재구성지시적 형상의 변형은 가능했으며 전통적, 현재의 행정적 구분까지도 기호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여기에 각종 숫자와 문자로 상징화(symbol)기호적 변형은 면적, 인구 등 모듈적 지식으로의 재구성이 가능함을 위의 사례에서 제시해 보았습니다.

복잡한 대상을 기호화한다는 것은 일부를 소실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관념의 형성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속기(俗氣)는 과감하게 발라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맥락이 살아있는 골기(骨氣)본질의 접근을 더 기민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사실사례개념의 획득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반대로 숲을 조망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최대한 효율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대상을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대상의 단순화는 수준의 떨어뜨림이 아닌 창의적 행위의 일환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론 본질을 살리고 곁가지만 잘라내는 과감함이 필요하겠죠.


다음은 우리와 가까운 중국과 일본의 형상을 단순화시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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