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피카소의 황소처럼
“어떤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이 창의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만
막상 무엇이 창의적인지를 말하라면, 모르겠다”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화가)
2000년대 이후에 쓰인 '창의성' 관련 국내 논문은 1만여 편이 넘는다고 합니다.
(예술인 Vol.25, 뇌과학으로 본 창의성, 2018.6.)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창의성은 교육에서 중요한 관심 분야 중 하나입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IT시대에서
기존과 같은 정보의 복제나 재생산은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내 학회에서는 '창의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 창의성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Unprecedented) 독창적(Unique)이고
실용적(Useful)인 산출물 혹은 프로세스를 비교 대상 집단보다 먼저 제시할 수 있는 능력 ”
(한국창의성학회, www.theacademyofcreativity.org)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은 그냥 번쩍! 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울공대 석학 26명이 함께 쓴 저서 '축적의 시간'에서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개념 설계 역량"의 부재를 꼽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개념설계 역량은 논문이나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경험을 통해 축적된 무형의 지식과 노하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즉, 우리 스스로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전제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창조적 역량이다."(서울대학교공과대학, '축적의 시간', 지식노마드, 2015, 11p)
'축적의 시간'이 말하는 창의성이라는 개념의 속성은 '경험'과 '반복'입니다.
'Creativity(시그마프레스, 2009)의 저자 로버트 W. 와이스버그는 '창의성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서 10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최근 학교나 학원가에서 '창의성'이란 말이 쑥 들어간 까닭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성은 전문가의 영역에 더 가까우니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개념의 명료화를 위해서는 그 아래에 있는 수많은 사실과 정보, 사례들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념 획득의 경험은 또 다른 개념 획득으로 이어지고, 개념과 개념 간의 연결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개념 간의 연결이 생산적인 재배열의 형태를 갖출 때 우리는 그것을 '창의적 아이디어'라고 부릅니다.
"기호적 경험은 기호의 산출과 해석으로 이루어진다."(노양진, 기호적 인간, 서광사, 2021)
'지도'를 읽고 해석하는 경험에서도 우리는 '기호적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문자'라는 '기호'로 이루어진 책을 읽는 행위처럼 말입니다.
한 장의 종이지만 지도에는 정말 수많은 정보들이 담겨있습니다. 그 속에 함유된 사실들을 볼 수 있는 식견(識見)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식견을 만들 수 있을까요? 기호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대상의 수준을 낮추는 것입니다. 깨알 같은 글씨와 숫자, 선과 부호, 거기에 다양한 색깔로 입혀진 지도를 단순화시켜 하나하나 읽어보는 경험을 해봅시다. 다음과 같이 말입니다.
'중국'이라는 복잡한 지도를 단순 기호로 사상(寫像, mapping)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반복적 절차를 가졌습니다.
중국 면적은 960만 km²으로 남한(10만 km²)의 96배나 되는 큰 나라입니다. 색으로 구분해도 변화가 심한 곡선을 그대로 기억하고 따라 그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치(position)와 거리(distance), 크기(scale)를 왜곡하지 않고 직선으로 단순화시켜 다음과 같이 변형했습니다.
1. 도상적(Icon)적 기호화
중국 땅의 모양은 통상 '닭'으로 많이 이야기합니다. 내륙 몽골지역이 닭의 등으로, 만주와 신장위구르지역이 머리와 날개에 해당하죠. 동중국해 쪽으로 도톰하게 튀어 나온 곳은 닭의 가슴과 배부분이 되겠네요.
2. 지시적(Index) 기호화
튀어나온 부분과 들어간 부분을 잘 형상화하여 직선의 도식으로 변형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행정구역과 산맥, 강 등 자연환경까지 매핑(mapping) 하기 위해 각 구역간 경계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시도했습니다.
각 지역 간 경계를 보다 단순한 표(表)와 같이 구분했습니다. 들쭉날쭉한 경계는 순서로 기억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벽돌을 쌓을 때 가로와 세로 맞추면 더 견고하고 높은 벽을 세울 수 있습니다. 형상이 불분명한 돌멩이를 쌓는 것은 예술 작품이 될 수는 있겠지만, 높고 튼튼한 구조물이 되진 못합니다.
3. 상징적(symbol) 기호화
중국은 2개의 특별자치구(홍콩, 마카오)를 비롯해 23개의 성(省)과 4개의 직할시(베이징, 텐진, 충칭, 상하이), 5개의 자치구(시짱, 신장위구르, 네이멍구, 닝샤후이족, 광시좡족)가 1개의 중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타이완(대만)도 23개의 성에 포함시키고 있지요.
가. 동북(東北) 지구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의거한 하얼빈이 있는 헤이룽장성(흑룡강(黑龍江))을 비롯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반도와 경계를 이루는 지린성(길림(吉林)), 랴오허강(요하(遼河))이 흐르는 랴오닝성(요령(遼寧)), 세 곳이 동북(東北) 지구를 이룹니다. 이곳을 묶어 동북 3 성이라고도 부르죠.
나. 화북(華北) 지구
네이멍구자치구(내몽골)를 포함해 세계에서 5~6번째로 긴 황하(黃河)의 북쪽에 위치한 허베이성(허베이(河北))과 '타이항 산맥'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산시성(산서(山西)) 3곳이 화북(華北) 지구입니다. 중국 수도 베이징(북경(北京))과 직할시중 하나인 텐진(천진(天津))이 허베이성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 서북(西北) 지구
중국에는 또 하나의 산시성(陕西省)이 있습니다. 서북(西北) 지방에 위치한 산시[陝西: 섬서]란 산저우(陝州: 섬주- 옛 이름은 섬현(陝縣)] 서쪽 땅이라는 뜻입니다. 화북지역의 산시(山西)성이 춘추시대(BCE770년-BCE403년), 찐(晉)나라의 주요 근거지였다면, 서북지역의 산시(陕西)성은 춘추시대에 이어 철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며 난립한 전국시대를 통일한, 친(秦)나라의 거점지역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시황의 친(Qin)나라가 지금의 차이나(China)의 어원이 된 것입니다. 간쑤성(감숙(甘肅))은 간저우시와 쑤저우시에서 한 글자씩 가져왔습니다. 칭하이성(창해(青海))은 칭하이호라는 큰 호수에서 이름이 정해진 곳입니다. 황하와 장강(양쯔강)이 칭하이성에서 시작됩니다. 칭하이성은 면적이 약 72만 km²으로 5개의 자치구를 제외하면 가장 넓은 성도입니다. 남한(10만 km²)의 무려 7배가 넘는 면적이죠. 5개의 자치구 중 가장 큰 (약 170만 km²)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자치구 중 가장 작은(약 7만 km²) 닝샤후이족자치구가 이곳 서북지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라. 서남(西南) 지구
서북지역 아래에는 서남(西南) 지구가 위치해 있습니다. 자치구 중 두 번째로 면적이 큰(약 120만 km², 남한의 12배) 시짱(티베트) 자치구가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 쓰촨 성(사천(四川))이 있습니다.
한(漢) 나라의 건국 황제인 유방과 삼국지 유비의 촉(蜀) 나라가 거점으로 삼았던 지역이 바로 이곳입니다. 쓰촨 옆에는 4개의 직할시 중 면적(약 8만 km²)이 가장 넓고, 인구(약 3천만 명)도 가장 많은 충칭시가 위치해 있습니다. 윈난석굴로 유명한 윈난성(운남(雲南))과 대장정(1934-1935)때 중국공산당 내 마오쩌둥이 실질적 권력을 잡게 된 구이저우성(귀주貴州))도 있죠.
마. 중남(華南) 지구
고대 기준 화이허강(회수) 아래를 화남(華南), 위를 화북으로 구분했습니다. 지금의 화남지구는 중국 남부의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중남(華南) 지구는 화남지구를 포함하며, 허난성, 후베이성, 하이난성, 후난성, 광시좡족자치구 그리고 광둥성을 아우르는 더 넓은 지역입니다. 허난성(하남(河南))은 황하의 남쪽이라 붙여진 이름입니다. 중원으로 불리는, 황하가 만든 넓은 평원은 중국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후베이성(허베이(河北))은 둥팅호(동정호)의 북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자연스럽게 남쪽은 후난성(호남(湖南))입니다. 삼국지의 주요 배경인 '형주'가 바로 이곳이죠. 가장 남쪽으로는 광시좡족자치구와 광둥성(광동(廣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 화동(華東) 지구
중국의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화동지구는 중국의 6대 중국지리대구(中國地理大區)의 하나로서, 행정구역상으로 산둥성(산동(山東)), 상하이시(상해(上海)), 안후이성(안휘(安徽)), 장쑤성(장소(江蘇)), 장시성(장서(江西)), 저장성(저강(浙江)), 푸젠성(복건(福建))등이 포함됩니다. 중화인민공화국정부는 대만(臺灣)에 대해 대만성(臺灣省)이라고 부르며, 화동지구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만에는 중화민국이라는 별개의 정부가 수립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중국 측 주장은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 중국의 6개의 구역을 중심으로, 23개의 성(省)과 5개의 자치구, 4개의 직할시를 알아보았습니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양안관계(중국과 대만의 관계), 소수민족 자치구의 동화(同化) 정책을 표방하는 중국의 모습은 행정구역 지도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정리!
기호산출(제작자)과 기호해석(학습자 또는 독자)에는 공통적으로 기호적 사상(寫像, mapping)이 개입됩니다. 이러한 기호적 사상의 경험은 호모 심벌리쿠스(Homo Symbolicus)로써의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가치로운 경험일 것입니다.
기호를 통한 학습으로의 어포던스(Affordance). 즉, 기호는 학습을 학습답게 이끄는 교수자(敎授者)의 효과적인 행위이자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시각에 특화된 인간은 끊임없이 대상을 보면서 사고합니다.
대상을 단순히 시청(視聽)하는 것이 아니라, 견문(見聞)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기호적 사상(기호적 경험)' 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견문은 식견(識見)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식견을 통해 우리는 안목(眼目)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안목이 높아졌을 때 우리는 이해에 다다랐다고 표현합니다.
다음은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지도를 더 단순하게 매핑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