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기간 서울에서 손꼽히는 교통의 요지에 살았다. 핫플, 인스타 맛집 등등 유명한 곳은 걸어서 갈 수 있었고 천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한강이 나왔다. 전시회 등에 갈 때도 부담 없었다. 지하철 역이 코 앞이어서 어딜 가든, 그리고 얼마나 늦게 오든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약 3달 전, 집 주인이 보증금을 갑자기 10배로 올린다고 했다. 반전세로 바꾼다는 뜻이었는데 정말 황당했다. 안 그래도 집이 너무 좁아졌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의 이사는 기분이 너무너무 더러웠다. 이 더러움은 정말 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보증금 10배. 1000만원이 1억이 되고, 2000만원은 2억이 된다. 아직도 그 집주인이 도대체 뭔 정신머리였는지 모르겠다. 그 집에 융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얼마인지는 까먹고 있었다. 그 때쯤 다시 확인해 보니 시세의 절반이 융자로 잡혀 있었다. 이런 집에 보증금 대출을 해줄리도 만무하며, 내 돈으로 보증금을 낸다 하더라도 매우 어려울 뻔했다. 와 생각할 수록 나쁜 집주인이네 진짜.
픽사베이
어찌저찌 지금은 주거 환경은 좋아졌지만 교통이 덜 좋은 곳으로 이사왔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것은 교통 좋은 곳의 월세살이는 허상이라는 거다. 언제든지 나갈 준비를 해야 하며, 내가 그 지역에 살 만한 경제력이 있다는 걸 증명해주지 않는다.
집을 구할 때 기준은 월세일 때 다르고, 전세일 때는 또 다르고, 당연하겠지만 매매일 때는 더 다르다.
요즘 전세이슈가 너무 커 관련 기사를 자세히 보는데 한 때 정치권 및 전문가들이 전세 대신 월세 살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진짜 뭔 생각인가 싶다.
그리고 전문가들이라고 나와서 하는 말이 지금 집 매입하지 말고 더 기다리라고 말들을 많이 한다.
집 없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사 나올 때 에피소드가 두 개 있는데, 경비 아저씨들이 워낙 관리를 잘해주시고 친절하셔서 전날 롤케익 두 개를 드렸다. 교대하시는 분께도 부탁드려요 하고. 그리고 이사 당일 정신없는 와중에 경비아저씨 한 분이 올라오셨다. 너무 고마워서 그냥 갈까봐 얼른 올라왔다고 잘 살라고 하셨다. 이사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나머지는 이거다. 짐을 모두 빼고 부동산에 카드키며 비밀번호며 다 알려줬는데 보증금이 아직 안 들어온거다. 부동산에 따졌다.
"보증금 받기도 전에 이렇게 다 줬는데, 임대인은 전화를 안받는다는게 말이 되나."
그렇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새 세입자는 버티고 있는 나를 두고 집을 막 청소하고 있었다...나는 부동산 실장이라는 사람에게 계속 따졌고, 참다가 내가 집주인에게 전화하려는 찰나 입금됐다는 알림이 떴다. 사전에 10시30분에 모든 것을 완료하기로 약속한 상태였지만 그로부터 시간은 30분 더 지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집주인이 누군지 정말 주의하라고 공개하고 싶을 정도다. 그 집주인은 얼마 되지도 않는 보증금으로 왜 이 난리를 치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성실하고 약속을 지키는 상식적인 집주인이 되자. 임차인도 성실하게 집을 관리하고 집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지만, 집주인도 똑같은 의무가 있다. 그리고....가능하면 집주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