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eral

by 안기자

외할머니랑 단 둘이 같이 산 적이 있습니다.


외할머니 옆집에 중학생 여자애가 있었는데, 걔 진짜 못생겼는데, 암튼 밤에 계속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좀 참다가 '아,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밤 10시에 옷을 챙겨입고 "할머니, 제가 저 집에 가서 입 다물라고 하고 와야겠어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00아, 그러지말어. 너는 앞으로 나가도 나는 계속 저 집 봐야 되는데, 좀만 참아. 이제 노래 안부를거야" 라고 저를 말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 여자애를 봤을 때, 아주 그냥 째려보는 것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할머니는 가끔 그 여자애를 보면 "어느새 이렇게 많이 컸어~ 예쁘다~" 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랑 같이 지하철 역까지 간 적이 있었습니다.


10분 거린데 그 거리를 거닐면서 두 번을 멈춰섰습니다. 할머니 지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사람들이 정말 다 좋아했습니다. 인기도 많고, 발도 넓으신 분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나는 할머니의 이런 점을 하나도 안 닮은 거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의 성품은 정말..제가 이제까지 본 아주 많은 사람 중 최고였습니다. 그렇게 성품이 좋으신 분이었는데도 90세 인생은 쉽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맑고 고운 성품을 유지하셨습니다.


저는 집에서는 K-장녀고, 회사에서는 큰 문제 안 일으키는 직장인이고, 친구들에게는 가끔 만나 놀면 재미있는 그런 사람인데 할머니한테 만큼은 한 없이 어린 아이였습니다. 할머니만이 유일하게 저를 어린아이로 대해주셨습니다. 유년기는 유독 짧았던 것 같지만, 할머니 덕분에 다 큰 후에도 어린아이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때는 몰랐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곧바로 복귀했습니다. 위로를 전해주신 몇 분께 출근 보고를 하자마자 연락을 했습니다. 그 중 한 분에게 아래와 같은 답장을 받았는데, 평범한 내용일지 몰라도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장례 내내 할머니가 저를 지켜볼 거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안기자님 안녕하세요! 황망한 슬픔이 가시기 전에 이렇게 인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접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외조모님께서 편안한 곳에서 안기자님 가족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실꺼라 믿습니다. 지친 심신 잘 추스리세요. 조만간 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다사다난한 2020년이 드디어 저물어가네요~

작가의 이전글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