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제가 어떤 기사를 썼는지는 솔직히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인터뷰이가 이야기를 하다가 웃으며 잠시 방을 나갔는데, 옆에 계신 분이 "저 형이 쑥스러워 저럽니다, 하하"라고 얘기한 거 하나가 기억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짐작도 안되는 스토리를 지닌 사람이,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딛은 맨들맨들한 얼굴을 한 여자애한테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무슨 얘기를 한들, 이 여자애가 알아들을 수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얼마 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얘기가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노숙인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는 복지시설에 어느 모녀가 벤츠를 타고 왔습니다. 담당 신부는 "여러분들이 밥을 받아가면 노숙인 분이 먹지 못합니다"라고 했고, 뻔뻔한 모녀는 "공짜로 밥주는데 아니냐, 우리는 왜 안되냐"고 했다고 합니다. 그 신부는 속상한 마음으로 이 사건을 SNS에 올렸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저 신부님이 쓴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숙인들에게 밥을 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 때 마다 답답했다고 하네요. 저 신부님 입장에서는 더 도움이 필요한 마당에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더 빠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런데 밥이란 뭘까요.
전 매일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를 체크하고 밥 양을 조절하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우울할 때는 일단 맛있는 것을 양껏 먹습니다. 맛있는 걸 배부르게 먹어두면 긍정회로가 돌거든요. 확실히. 배고프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짜증나고, 다 치워버리고 싶지만. 배가 부르면 "이..일단 해볼까! ㅎ...." 이렇게 됩니다.
올 초에 모 선배와 서울 어딘가에서 뻗치기 아닌 뻗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기자실 문은 닫았고, 카페를 전전하며 보도자료 하나 맘 편하게 처리할 수 없는 긴장 상태였습니다. 아무 성과도 없었던 오전. 선배는 저에게 한정식 비슷한 걸 사줬습니다. 일단 맛있는 걸 먹어야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생긴다며. 그리고 그 날 일은 오후에 제 생각보다 더 잘 풀렸습니다.
노숙인들 스스로 자활을 해야 한다, 자꾸 공짜밥을 주니까 일 안하고 발전이 없는거다.
논리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불공평하게 태어나지 않았나요. 누구는 부유하게, 누구는 가난하게. 그리고 가난한 출발선에 선 사람들은 앞으로의 일생이 더 힘들다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생각할 힘이라도 주는 것, 그 생각할 힘은 밥이라는 것. 아니, 생각할 힘이 아니라 일단 생명을 유지할 기회라도 주는 건 어쩌면 우리 공동체의 의무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모일 수 없고 경제가 망가져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모여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다들 연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