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여대 근처는 파스타 가게 천지였다. 여기도 파스타, 저기도 파스타. 그리고 파스타집 마다 사람이 빼곡했다.
취직을 한 이후 내가 자발적으로 파스타 집에 간적은 별로 없고, 거의 상대방이 파스타집에 가자고 해서 간 적이 많았다. 그냥 파스타가 질렸다. 학생 때는 좋아하던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감흥이 없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집밥을 시작한 이후에는 파스타가 다시 그리워져서 집에서 몇번 해봤는데...정말 한식보다 훨씬 간편하고 맛 내기도 쉬운 음식이 그것이었다. 한마디로 별거 없는 음식이다. 그래서 더 밖에서 안사먹게 되는거 같다.
며칠 전 성수동을 찾았다. 성수동은 일년에 한 번 갈까말까 한 동네다. 유통 기자들에게는 요주의 인물, 가장 핫한 인물, 최고의 인플루언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고창소주'가 너무 맛있다며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뭐 별 거 아닌 심플한 감상일 수 있겠지만 또 그게 아니었다. 신세계는 얼마 전 소주 사업(제주 소주)을 접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성수동에서 사람도 만나야 했고, 성수동 이마트에 가서 고창소주 사진도 찍어올 작정이었다. (성수동 이마트는 이마트 본사 옆에 있어 가장 트렌드 반영이 빠르다고 알려져 있다)
성수동에서 만난 분은 '이왕 성수동까지 오셨으니 핫한 곳에 가자'며 파스타 집에 데려갔다. 내 머릿속엔 '된장찌개=파스타' 공식처럼 진부한 음식이었지만 새로운 동네여서 그런지 약간 들떠 있었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넓적한 면과 크림 소스, 아직도 유행 중인 트러플오일 향의 조합이 좋았다. 맛있게 먹고 야외 테라스에서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바닐라 라떼를 먹었다. 탄수화물과 시럽의 조합이라니...오늘은 그냥 살 찌자 싶어서 쭉 들이켰다.
그동안 '이미 내가 해봤는데 뭘' 이라는 마음으로 고품질의 파스타를 접할 기회를 많이 놓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에 다른 음식을 많이 접하면서 견문? 견문이라고 해도 되나? 먹문. 먹문이 넓혀졌다. 맨날 가는 광화문과 여의도, 그리고 한강이 아니라 성수동이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트러플향이 나는 파스타를 먹고 나는 성수동 이마트에 가서 정 부회장이 극찬한 고창 소주 사진을 찍고 한 병 사왔다. 술 맛을 모르는 내 입맛엔 뭐가 특별한지 잘 모르겠지만...뭐 맛있는 소주라니까. 이렇게 먹문을 넓혔네. 그렇게 기획기사 2개를 마감하고, 성수동에서 다시 기자실(집)로 복귀하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더니 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 하루만큼 정신없는 글이지만, 뭔말인지 알거 같은 사람들이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