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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NCR Feb 03. 2022

'그해 우리는'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

첫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커플들에게.

 대학 1학년 때 여자친구를 만나 같은 대학에서 4년을 꼬박 사귀고 2년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서 3년을 넘게 사귀고 결혼을 했다. 드라마 ‘그해 우리는’ 커플은 고3 때부터 만나 같은 고등학교, 대학에서 5년을 사귀고 5년을 헤어지고 다시 만나게 된다. 이렇게 나와 비슷한 설정과 함께 주인공 캐스팅이 흥미를 끌어서 보기 시작한 드라마인데 끝난 지금도 후유증이 남을 정도로 극 중 '웅연수'커플과 드라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나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평범한 고등학생 - 대학생 캠퍼스 커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왠지 이 커플의 어린 시절 연애를 보고 있으면 나의 어릴 때 4년의 연애에 대한 기억이 좋게 각색되는 기분이 든다. 사실 난 그 시절의 기억이 딱히 좋지 않았다.  떠올려보면, 수많은 미숙한 연애에 대한 기억들과 연애에 맞지 않는 성격 탓인지 힘들고 곤란했던 기억들만 많이 떠오른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여러 번 이별과 상처 끝에 결국 마지막엔 내가 지쳐 관계를 끊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앞선 4년의 대학생 때의 만남은 완전 실패했고 2년 후 다시 만나면서 제대로 연애를 했다고 생각했기에 어릴 때의 기억들은 그냥 나쁜 채로 놔두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해 우리는’ 을 보면서 그 시절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 것이다.

 '그해 우리는'커플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특별한 연애를 하지 않는 평범한 캠퍼스 커플이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고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다투며 별 것 없는 일상을 보낸다. 기껏 특별한 이벤트가 놀이동산에 가거나 당일치기 여행 정도이다. 그나마 놀이동산에서는 5번째로 헤어진다. 그들이 연애하는 평범한 장면들을 보니 잊고 있던 나 어릴 때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다시 떠오르면서 마치 내가 경험한 것들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너무 모자라고 어리숙해서 멋진 데이트도 한번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생각했던 그때의 연애도 다시 돌아보니 그들처럼 별일은 없었지만 그 자체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의 연애는 원래 그런 것 같다. 거창할 것 없이. 그들처럼 소소하지만 둘만의 순간들을 함께 보내며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어릴 때는 우리도 그들도 다 어설펐지만 같이 보냈던 시간 사이사이 맑게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는 웅이처럼 그냥 여자친구만 기다리고 있어도, 밝은 얼굴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만 해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시절이었다는 사실을 드라마를 보며 깨닫는다. 그때 오히려 더 여자친구를 순수하게 사랑했고 화를 내고 삐져도 그냥 다 받아줄 수 있었고, 소문은 좀 이상한 애였지만 그냥 외모가 괜찮아 보여서 내 고백에 응했다던 여자친구도 나중에는 나를 사랑해 주었고 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완전 실패라 스스로 규정지었던 과거 속에 사실은 귀엽고 소중한 순간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단순히 처음 만나 오래 사귄 사람이 아니라 그 어릴 때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중한 시간을 같이 보낸던 그 여자 친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설정과 공감을 이끄는 서사 외에도 이 드라마가 나에게 더 이렇게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배우와 캐릭터의 성격과 외모가 나와 여자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시작부터 완벽한 캐스팅으로 알려진 드라마였는데, 주인공 둘 다 제작진의 일 순위 캐스팅이었고 기획단계부터 원하던 배우들이었다고 한다. 두 배우가 이러한 젊은 에너지를 가지고 청춘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 마침 이 드라마가 제작되고 출연하게 되어 배우들에게도 작품에도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귀여운 외모와 또래의 배우들에게 기대하기 힘들 정도의 탁월한 연기 덕분에 비현실적인 드라마의 인물이 아니라 그냥 현실의 최웅 국연수 커플이 살아있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웅은 보통 드라마에 나오는 특별한 능력, 매력이나 배경을 가진 멋진 남자 캐릭터도 아니고 부담스럽게 비현실적으로 잘 생기지도 않았고 (다만 비율이 비현실적이다..) 나름의 멋이 배인 30 40대의 남자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학생같이 나온다. 그것도 별 욕심 없고 착하고 순하고 약간은 모자란듯한. 나처럼 맨날 아이스크림 흘리고 여자친구 옷에 뭐 묻히곤 한다. 그리고 맨날 여자친구한테 끌려다니고 유원지에서 차이기도 한다. 연수의 제멋대로인 성격에 항상 불만이 많지만 내심 정말 멋있는 여자친구라 생각하면서 연수를 사랑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난 어릴 때 남자 친구로서 좀 부족한 내 모습을 썩 좋지 않게 기억하고 있었다. 착하긴 한 것 같은데 여자 친구랑 멋진 데이트 계획도 못 세우고 뭘 해도 조금씩 부족한 것 같고 남자답지 못하고 여자 친구 눈치만 보고 연애할 때 뭔가 주도적으로 하려는 것마다 실패했던 것 같아서 좀 그 기억들이 싫었다. 웅이가 커플룩 입고 놀이공원에서 차인 것처럼 나도 뭔가 기대한 날에 꼭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웅이같이 나와 비슷하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지켜보다 보니 그 모습 그대로 나름 나도 꽤 귀엽고 나쁘지 않은 남자 친구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다 큰 지금까지도 멋있고 남자다워야 한다는 알 수 없는 강박이 조금은 남아있는데(보통 남자들 반의 반 정도지만) 그럴 필요 없이 성격 그대로 착하고 순수하게 옆에서 사랑하는 게 제일 멋있다는 걸 보여줘서 지금의 나에게도 힘이 되는 캐릭터이다.

 웅이는 그냥 내가 감정이 이입되는 캐릭터라서 비슷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수는 내 여차친구와 진짜 비슷한 지점이 많다. 전반적으로 귀엽고 동그란 그림체가 닮았고 머리 모양은 거의 똑같아서 헤어스타일에 따라 분위기가 비슷해진다. 외모는 이렇게 귀여워서 순하게 보이다가도 일할 때나 평소 생활을 보면 단호하고 성격이 있는 모습마저 비슷하다. 한심하고 비현실적인 것들을 싫어하고, 쓸데없는 감정소비 없이 업무는 간결하고 확실하게 하는 모습 등등 MBTI마저 둘 다 ESTJ로 같은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인 만화 같은 설정까지 똑같고 술 먹고 퇴행해서 가끔 진상 부리는 것마저 비슷하다. 내 여자친구는 떠올려보면 연수처럼 강하고 항상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있는 아이였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가정환경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항상 씩씩하고 당당했고 자연스러웠다. 연수처럼 남자 친구에게 기댄다거나 하는 구석은 1도 없었다. 나 같은 어설픈 놈이랑 사귀다가 고생도 하고 서로 서툴러서 상처도 많이 주고받았지만 결국 헤어지고 다시 만났을 때는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주었고, 자기 뜻대로 하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나의 말들은 항상 깊게 듣고 따라주었다. 이렇게 비슷한 캐릭터를 가진 연수와 웅이를 드라마에서 보다 보면 여자친구와 했던 나의 연애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드라마가 나에게 특별했던 이유를 하나 더 찾을 수 있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어릴 때 첫사랑이 어설퍼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있더라도 이를 이어가는 것이 아름답고 순수하며 어떤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연애관을 드라마에서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웅연수 커플도 그냥 어릴 때 투닥거리는 사이에 어설프게 빗속에서 뽀뽀하며 시작한 첫사랑인데 관계를 거듭해서 결국 서로에게 너무나 중요한 사랑이 되어 결혼까지 이른다. 사랑에 빠지는 건 특별한 운명이 아니라 이렇게 우연일 수도 그냥 상황과 타이밍이 잘 맞아서 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사람과 사랑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서로 어설프고 어려서 힘들었던 상황 속에서도 서로 성장하고 이해하며 한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고 맺어간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해 주는 것 같다. 만약 중간에 다른 사람과 다시 시작한다면 그것은 결국 비슷한 시작의 반복이라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진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다른 사람과 사랑을 시작하더라도 그 연애는 결국 첫사랑에서 배운 감정과 시행착오에 빚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난 처음 만난 사람과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당연히도 정답이나 이상적인 사랑관이 아니라 그냥 내 생각만으로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 이 드라마에서 그런 사랑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보여주어서 내 사랑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드라마 마지막에 웅이는 연수를 처음 보고 반했던 고등학교 체육관에서의 그 순간을 선명히 기억해 그림을 그려주며 프러포즈를 한다. 나도 웅이처럼 예비대학 때 첫눈에 반했던 여자친구의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처음의 기억과 어릴 때의 순간들을 잊거나 숨겨둘 필요 없이 아직 그 사람과 그대로 사랑하고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깊은 로맨스나 역경을 극복한 뜨겁고 절절한 사랑이나 이성을 향한 솔직한 욕망이 아니라 그리고 지극히 건조하고 현실적인 연애가 아니라 어릴 때 반했던 한 사람과 여러 시행착오와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이루어낸 사랑이 이렇게나 이쁘고 행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이렇게  ‘그해 우리는’을 보고 있으면 내 연애와 사랑과 결혼은 역시 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사랑에  있어서는 성공한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그리고 지금도 나의 사랑이 여전히 살아 있는 느낌이다. 드라마가 끝나가는 그리움을 이렇게 이 글로 달래 본다. 최우식-최웅과 김다미-국연수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다. 그리고 그들처럼 내 여자친구였던 아내와 나도 사랑스럽고 귀여웠고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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