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의 그 면모.
왼쪽 카메라를 들고 있는 선한 인상의 아저씨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감독역이다. 멋진 작가의 꿈은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냥 예능 재연프로를 찍거나, 노래방 배경 영상을 찍는 그저 그런 감독이다. 아무래도 힘이 없고, 돈 벌어야하는 가장이다 보니 제작자의 부탁에 잘 따를 수 밖에 없는 그런 인물이며, 실제로도 항상 조금은 미안한듯 고마운듯한 표정으로 상대를 대한다.
우연한 기회에 '생방송 원테이크 좀비물'이라는 아주 황당한 제안을 받은 감독은 말도 안되는 환경에서도 열심히 만든다. 여기서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생방송 중에 사고로 자기가 원하는 숏을 찍을 장비가 부서져서 제작자로 부터 그 씬을 포기하라는 말을 듣는데, 작가로서의 마지막 자존심같은 그 장면을 포기하란 말에 갑자기 제작자에게 화를 내며 퍼붓기 시작한다. "이 장면이 작품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이 알아?" 그러더니 금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제작자에게 말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흥분해서요.." 스스로가 지금 속한 현실 상황을 깨닫고 다시 사과를 하는것이다.
이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일본인들의 저 면모에 대한 연민이 들었다. 저런 모습의 일본인들을 직 간접적으로 몇번인가 본 것 같다. 상황을 시끄럽게 만들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할까봐 그냥 조심하는 모습들 말이다. 그저 조금 참고 좋은 인상을 지어보이려 한다. 그들의 이런 특성은 정치적으로도 어느 정도 이어지는 것 같다. 그냥 왠만하며 조용히 넘어가려하고 시끄럽게 만들지 않으려는 것. 일본인의 저런 점을 너무나 좋아하는 한국인들도 꽤 있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저런 일본인의 성향이 오히려 꼭 해야할 말을 숨기거나 극우정치인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일본의 최대의 약점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진보적인 나라는 시끄럽기 마련인데, 그곳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덕목이니까. 언제나 일본의 언론의 자유도는 낮으며, 미투운동도 일본에서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일본은 선진적인 면이 있는 바르고 아름다운 국가인 것 같기도 하면서서, 자유와 표현을 꿈꾸고, 자존감을 소중히 여기는 어떤이들에겐 지옥같은 나라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여러번의 일본 여행 때문일까. 생각이 바뀌어서 그런걸까. 저런 행동을 하는 그 개개인의 국민의 마음은 따뜻하다는 느낌이 든다. 매너를 지키고 고개를 숙이는 행동 그 자체가 따뜻한 표현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안다. 겉과 속은 다르다는 것을. 그들도 속에 다 욕심이 있고 욕도 많이 하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하지만 일본 사회라는 곳에서 적응하며 다같이 잘 살려고 적어도 행동과 표정만은 매너를 지킨다. 이미 그 행동에서 진심이 어느정도 나오는것이다. '별 트러블이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왠만하면 참고 조용히 자신들의 할일을 하는 모습들이 싫지만은 않게 되었고, 착하다는 느낌 마저 떠오른다. 물론 착하다는 덕목이 선은 아니다. 하지만 그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은 선에 가까운것이 아닐까.
나라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무엇보다 역사의 무거움이 우리를 누른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여러면에서 너무나 가까우며, 유튜브와 sns가 많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착한' 그들과 좀 더 가깝게 더 반갑게 만나며 지내고 싶다. 우리의 시끄러움도 좀 더 알려주고 말이다. 그럴땐 참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내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