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은 너무 꾸준하고 월간으로 하기엔 질이 그렇게까지 좋진 않을 것 같아
(시작 중독자는 그냥 시작하지 않고 거창한 오프닝과 계획으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시작이 좋아서 일을 벌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으면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고 이런 저런 것에 관심이 많이 생기는데, 이것도 그런 행위의 좋지 않은 예다. 이 "격주 정리"를 해보고 싶었던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그 계기의 결과가 나는 이것이지만, 다른 분들에겐 다른 모양일 수 있어 공유해보려고 한다.
사실 정확한 인용은 아니고, 코난 오브라이언 Conan O'Brien 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Conan O'Brien Needs A Friend> 중 마이크 마이어스 Mike Myers 가 나왔던 편에서 나눴던 대화였다.
"Constantly telling my people, "shouldn't we just stop making stuff?" because there is enough stuff. We've made a lot of stuff, plus lots of other people are making tons of great stuff. And, now I think we have more good stuff than you can see in the lifetime."
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mike-myers/id1438054347?i=1000474196038
물론 코난의 주변인들을 이런 생각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밥벌이 수단이니깐. 하지만 이걸 듣고 나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수많은 좋은 작품들이 있고 멋진 글들이 있고 아름다운 음악이 이미 있는데,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은 흘러나온다. 새로운 게 항상 더 나은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어쩌면 좋은 것들을 보고 감상하는 눈이, 자꾸 튀어나오는 새로운 것들에 팔려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일지도. 아니면 그저 Good old days 혹은 Früher war besser 하는 옛날 사람이거나.
이 칼럼이 나왔던 해, 가디언지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가 엄청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이었다고 한다. <뉴스는 당신에게 해롭다>를 읽게 된 건, 우연찮게 코로나 뉴스로 너무 정서적으로 피곤했던 4월이었다. 마침 봄이 오고 있기도 했고, 그때 매일 아침 피카를 같이 하던 나의 농사 파트너 아저씨와 도란도란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던 때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종이 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루틴인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기사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나눴다. 왜 뉴스는 맨날 이렇게 부정적인 것들만 보여주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좋은 날씨에 가든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왜 전혀 뉴스거리가 아닌거야? 나한텐 이게 정말 중요한데, 하고 농담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롤프 도벨리 Rolf Dobelli 가 이 칼럼을 이어받아 쓴 책이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는데, 제목은 <뉴스 다이어트>니 관심있는 분은 읽어보시길. 누가 유럽사람 아니랄까봐 굉장히 극단적인 뉴스 단절을 솔루션으로 제안하는데,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뉴스에의 노출을 어느 정도 통제해본다는 건 좋은 접근이라 생각한다. 아래 나온 뉴스가 해로운 이유들에 공감할 수 있다면 말이다.
News is irrelevant.
News has no explanatory power.
News is toxic to your body.
News increases cognitive errors.
News inhibits thinking.
News works like a drug.
News wastes time.
News makes us passive.
News kills creativity.
이 이유들은 뉴스 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의 뉴스피드에도 해당한다. 예를 들면 네이버 포털을 시작화면에서 없애고 구글 검색창으로 바꾼 후부터 느낀 해방감 같은 거다. 아무튼 일독을 권해본다.
https://www.theguardian.com/media/2013/apr/12/news-is-bad-rolf-dobelli
천재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아 그것들만 찾아 읽고 봤던 20대가 있었다. 천재 곁에 있는 준재들의 이야기에 쯧쯧거리던 시건방진 시기도 있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재능인지 알게 된지는 좀 되었고, 진짜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해를 거듭하며 더 절실하게 알아가고 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천천히 읽고 있고, 그의 다른 글들이나 인터뷰도 접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자신의 꼭꼭 눌러담은 글을 낭독하는 팟캐스트도 가끔씩 듣고 있다. 수필집을 읽다 보면 이슬아 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가 너무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 집 밥상에서 같이 앉아 저녁 먹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정식으로 초대받진 않았지만, 예고 없이 들이닥쳐도 숟가락 하나 더 놓아주실 분들이라는 믿음도 일방적으로 생겼다. 독자로서의 의무는 다하지 않지만 권리는 아주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
작가로서의 이슬아도 굉장히 흥미롭지만 직업인이자 생활인으로서의 이슬아에 더 큰 관심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에세이 말고도 그가 그려낼 허구의 세계도 너무너무 궁금하다. 대단하다 하고 물개박수를 치고 물러나기엔 도전정신이 아직 살아숨쉬는지라 나도 꾸준하게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졌고, 그 꾸준함의 기록 속에서 나아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의무와 강제를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에, 자율과 통제의 느슨한 경계를 적극 활용한 격주라는 주기를 두어보려고 한다.
https://podcasts.apple.com/gb/podcast/%EC%9D%B4%EC%8A%AC%EC%95%84%EC%9D%98/id1483985573
소셜미디어 사용과 기억력 감퇴가 관련이 있다는 논문이다. 논문은 여기에 - http://www.midus.wisc.edu/findings/pdfs/1866.pdf
새로운 독일어 단어를 배웠는데, 그 단어의 스펠링도 다 기억하고 그 단어를 배운 순간도 기억나고 사전을 찾아본 기억도 다 생생하게 나는데, 그렇게 알게 된 그 단어 뜻이 기억이 안 난다. 이런 지 제법 되었다. 건방지게 단어집을 소설 읽듯 읽던 고등학교 때만 생각하고, 이제 와서 깜지를 해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 사실 고민은 그만하고 펜과 종이를 들어야 하는 때임에도 이러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쉴새없이 껌뻑이는 소셜미디어의 알림이 날 이렇게 만든건가, 원인을 고민하기엔 현상이 너무 눈에 띄고 솔루션이 너무 명확하다. 나이 드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소셜미디어에 덜 노출되는 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소셜미디어를 줄인다는 건, 내가 정보를 습득하는 경로에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질 좋은 정보를 찾아내는 데 좀더 투자하고 그 정보를 제대로 해석해보려는 노력. 그리고 그 정보를 잘 받아들였다는 측량지표로 이 격주 알림에 정리를 해보겠다는 이야기.
이런 계기들을 통해 다다른 나의 결론은 이것:
내 속도로, 새롭고 순간 반짝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낡고 오래된 것들에도 관심을 가져가며, 꾸준하게, 조금씩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지금 관심있는 것들에 대해 정리하고 기록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