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단정함, 그리고 얼룩, 흔적 혹은 실루엣
외국에 나와살면서 가끔 혼자 시뮬레이션해보는 순간이 있다. 가족들한테 동시에 연락이 올 때, 혹은 자고 일어났는데 가족들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 있을 때 -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마주할 때. 3일장에 맞추기 위해 비행기를 빠르게 찾고 오래 비울 집을 정리하고 가능한 한 빠르게 집을 나설 수 있게 만드는 것. 가장 빠른 비행기 표를 사려면 돈도 필요하니 비상금도 적당히 마련해두고. 식물이 많을 때는 주변에 내 식물에 물 줄 사람에게 집 열쇠를 맡겨야지,까지 생각해봤던 것 같다. 지금은 바질 화분 하나밖에 없지만.
집에서 재택을 하고 있는데 아빠와 언니한테 동시에 연락이 왔다. 아빠는 주로 주말에 통화하는 사람인데, 언니도 내가 일할 때는 연락하지 않는데, 무슨 일이지 하고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비보를 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할머니 같은 할머니가 아니셨고, 워낙 독립적이고 읽는 걸 좋아하는 분이셨어서, 할머니한테 받았던 건 다양한 책들, 특히 신앙서적들이었었다. 아무튼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어렵고 정리가 되지 않아 잠시 옆에 두고.
한 사람의 죽음은 그를 알았던 사람들 만큼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내 할머니의 죽음, 내 아빠의 엄마의 죽음, 내 엄마의 시어머니의 죽음 같이 한 사람에게도 하나보다 많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추모할지 모르겠는 마음을 접어두고, 지금 출발해도 발인에 참여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힘들어하며, 장례식장을 지키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밝은 대화를 나눴다. 가족장을 치루는 가족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하며 그 자리를 지키는 걸 보면서, 문득 나는 지금 여기서 무슨 삶을 살아가는 건지 잠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정말 할머니 당신에 가까울까 하는 긴 의문도 들었다.
이런 의문에 대해 훨씬 멋있게 글을 써내려간 줄리언 반스의 에세이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읽으며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는 감정에 치팅하듯 이름을 붙여보고 있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찬송가를 불러주는 장례식 영상을 봤고, 그 찬송가가 과연 할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찬송가가 맞을까 잠시 생각했다. 살아있는 아빠가 이 시기를 잘 견뎌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들면서, 나는 또 이렇게 내 이기적인 방식으로 우리 할머니를 추모한다.
지겹게 또 미니멀 라이프다. 정반합을 생각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나은 방향으로 1cm는 기운 중심을 찾아가리라 믿는 나는 이상주의자다. 아마도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내 토픽 미니멀 라이프를 기억해주는 좋은 친구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한 책 <매일 동장 잔고를 걱정했던 그녀는 어떻게 똑똑한 쇼핑을 하게 됐을까>는 나도 어떤 "유형"이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었다.
책의 서문에 쇼핑 다이어트란 표현을 보며 "다이어트"라는 말이 거슬려 다른 표현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부터, 옷과 신발, 가방을 1년 동안 사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시작 전 마지막 쇼핑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기껏 잠근 소비의 수도꼭지가 책이나 인테리어 같은 엉뚱한 곳에서 열려버리는 것까지, 너무 나 같았다. 산만한데 추진력까지 끝내주고, 다짐을 하고선 내면 자아와 끊임없이 협상하는 자세나, 공부하면서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방식까지.
저자보다 내가 좀더 심하다고 한 건, 옷장을 그런 식으로 한번 다 비우고는 음 현명한 소비를 해야지 하고 결국 한결 더 커진 버짓으로 그 옷걸이들을 다시 채워걸어야 했던 과거였다. 그렇다고 엄청 다양한 옷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같은 네이비, 그레이, 블랙들이 same same but different하게 가득 찬 것? 다시 비우기엔 아직 BEP가 안 맞다는 것? 어쨌든 내면의 소비자아들이 또 다시 회의를 열었고, 스웨덴 스타일로 결론 없이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하고 긴 회의를 휴정했다.
이 책에서 얻은 교훈은 소비하는 나를 잘 들여다 보는 것. 예를 들면, 내 소비 트리거는 어떤 멋진 삶을 사는 사람을 보고 닮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 때 가장 쉬운 방식으로 소비해서 소유해보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데, 이게 굉장히 아이러니한 게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들은 겉보단 내면인데 내면은 어려워보이니 외향으로 사버리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 어느 순간 옷들이 죄다 모노톤이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책에서 저자는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어린 시절의 외골수 기질과 옷으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욕구 사이에는 분명 인과 관계가 있다. ... 옷을 사고 싶어서 하는 쇼핑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생에서 바꾸고 싶었던 부분을 돈으로 사는 행위에 불과했다."
버려지는 수많은 옷과 착취되는 노동력,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더욱더 알아간다면 적어도 이렇게 책 한 권을 또 읽었고, 1mm라도 좋은 방향으로 살짝 핸들이 틀렸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Council of Sheldons처럼 쇼핑 전 회의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내가 많아지기를.
예전엔 수다떨듯 이야기하는 팟캐스트들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그런 수다가 공허하게 느껴져서, 잘 담은 이야기들을 전하는 1인 팟캐스트들을 더 많이 듣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이다혜의 21세기 씨네픽스>. 팟캐스트 추천은 너무 하고 싶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어서 우선 킵하고, 수많은 좋은 에피소드 중 <작은 아씨들> 편에서 고전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꽂혀서. 정확한 인용은 아니지만, 오래 전에 쓰여진 고전을 지금 읽고 다시 쓴다고 할 때 "옛날이 좋았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라는 식의 복원에 그치는 것보다는, 약간의 모험을 하고 현대적인 해석을 더해 풀어나가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였다.
베스의 소식을 듣고 조가 내려가 에이미와 해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 대해서였는데, 도대체 쓰여야만 하는 중요한 이야기가 뭔지 모르겠고 계속 써야 하는지 고민하는 조에게 했던, 계속 써야 중요해진다는 이야기. 더 다양한 이야기가 쓰여져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삶들이 많아지고, 또 더 다른 이야기들이 쓰여지는 것의 중요성. 쓰여질 가치가 있는가는 나중에 생각하자,하며 이렇게 격주정리를 정당화해본다.
선율이 내 스타일인 건 당연하고, 가사가 매력적이었다.
"When you make time
to clean the cobwebs off your mind
you may find yourself unwind
and all the ticking stops
and you may find your time instead
you can be your silhouette
When you just stop
and take a look around your shop
you may feel your blues all drop
you can"t sell your glum to me
but I can help you till you see
that you can be your silhouette
it may be dark
it may be shadowy and stuck
but don't be scared of what you've dared
to dance with it is no thread
in fact it is as I said
you can be your silhouette"
투덜이 남자 리드를 둔 미국 팀과의 협업을 해야 하는 상황. 우리 팀은 이미 그와 하는 일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 하고 늦게 들어온 내가 결국 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유가 없는 투덜거림이 아니라, 하나하나 꼬인 걸 풀어가고자 하는 노력을 하다 보니 결론에 이르는 데 시간이 살짝 걸리는 중. 물론 그냥 내버려뒀던 전임자보다야 잘 해내고 있지만, 신뢰를 쌓아가고 내가 만들지도 않은 오해를 풀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 escalate라기보다는 업데이트 겸 매니저에게 이 상황을 보고하고 있는데, 내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보고선 팀장이 했던 이야기다. "I admire your democratic way" 중간의 pause에서 단어를 고르는 게 느껴졌고, 독일인 입장에서 밀고 나가지 않고 같이 해나갈 방법을 찾는 내 성향에 대해 democratic이란 형용사를 찾는 게 재밌었다. 그 뒤에 BUT이 당연히 따라왔지만, 나는 아주 급한 사안은 아니니 나한테 올해 말까지 시간을 주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흔쾌히 그리 해도 좋다는 대답을 받아냈다.
이 피드백이 재밌었던 이유는, 어떻게든 내가 머문 곳에서 하나의 얼룩은 얻어온다는 점. 이 지지부진한 방식은 지난 2년 동안 스웨덴에서 일하면서 그렇게 답답하게 느껴왔던 지점인데, 그 얼룩이 이렇게 남아있다니.
한 친구가 나한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나는 물이 쉽게 드는 타입이라, 좋은 환경에 놓이게 된다면 좋은 물이 들어 훨씬 좋겠다고. 나의 대학시절, 불안정한 날 가까이서 지켜보던 지금은 멀어진 친구를 생각하면서, 여기저기서 뭍혀온 얼룩들이 만든 나를 보여주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자리는 나에게 어떤 물을 들이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면서.
이상한 2020년 가장 춥고 어두운 11월의 첫째 날,
허리를 지키고자 산 바테이블 겸 스탠딩 데스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