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의 정체성
2주가 생각보다 빨리 간다. 한 시간 한 시간은 천천히 가는 것 같은데 한 주는 어느 순간 지나가 있다. 격주라는 약속 주기는 생각보다 이상한데, 쉬어갈 수 있는 퐁당 주가 중간에 있는 반면 실제로 쉽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간격은 아니더라고. 이번 주가 그 주인가 아닌가가 헷갈리기도 하고. 듣고 보고 기다려주는 이 없이도 내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건 코로나 시대에 향상시키기 좋은 포인트이니 우선 이대로 둬보려고 한다.
저 먼 나라, 하지만 전 세계인들에게 누구보다 가깝게 다가와있는 그 나라의 대선이 있었다. 극단적인 지도자 하의 세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지켜보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보면서 정치에 관심을 더욱 가지게 되었다. 높아진 관심과 함께 기술의 진보가 가져다 준 양질의 콘텐츠들 덕분에 세계 정치에 대해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었다.
먼저 이론 수업은 고퀄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팟캐스트 <아메리카노 2020>를 들으며 해결했다. 요즘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데, 가끔 정제되지 않은 대화가 가득한 팟캐스트로 빈 공간을 채우고 나면 더욱더 공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질 좋은 팟캐스트의 역할은 너무 소중하고, 그 뒤에 엄청 탄탄한 글들이 준비되어 있을 것 같은 짙은 농도의 팟캐스트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 팟캐스트는 미국 정치에 대해 알고 싶지만 이론서 읽기는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엄청 추천하고 싶다.
다음 응용편으로는 데이터 저널리즘의 끝을 달리는 뉴욕 타임즈의 시각화 자료들을 보며, 데이터로 밥을 벌어 먹는 사람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정말 아는 게 아니다'라는 만트라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문가의 길에 들어는 섰는데, 제법 전문가로서의 시간을 보내왔는데, 이 시간이 어느 순간 애매모호한 안전한 결론에 도달하는 데만 쓰이진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실리콘 밸리 스타일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아는 걸 최대한 잘 전달하고 그렇게 전달된 정보가 좋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다짐도 했다.
나는 데이터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이 디지털 시대의 또다른 문화인류학자라는 표현을 주변인들에게 자주 하곤 한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 맥락을 읽는 데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 만큼 정확한 수단이 어디 있을까. 과연 문명 이래 이렇게 투명한 인류가 있었을까. 모든 게 로깅되고 아이디로 연결하기만 하면 나보다 더 나 같은 AI 자아가 나타날 수 있는 시대인데. 그런 관점에서 이 일을 좋아하고, 내 앵글을 잡아 렌즈를 들이대는 작업을 좋아한다. 그 업무를 하면서 좋은 롤모델을 만나기란 은근히 쉽지 않은데, 이렇게 배울 게 많은 프로덕트들을 유저로서 접하게 될 때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나는 아직도 이 사람들에, 지성에, 선한 의도에 희망을 품는 굉장히 낙천적인 사람인가보다.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0/11/03/us/elections/results-president.html
미국 뿐 아니라 수많은 나라에서 양극화의 양상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들 저마다의 버블에 살아가고 있다. 다들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한 톨러런스도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이 내가 그렇다. 저마다의 채널에서 듣는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정보로 각자의 자리에서의 온도에 익숙한 상태로 한 공간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양극화라는 게 그렇게 뜬금없는 결론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들어오는 정보를 하나하나 팩트 체크를 할 수 있는 형편이나 능력이 되지 않을텐데, 그걸 어떻게 다 책임지나. 기계적 중립은 불가능하겠지만 치우친 의견도 알고 보자의 맥락에서 시작된 좋은 플랫폼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 Allsides라는 미디어 플랫폼인데, 이슈에 대한 다양한 매체의 기사를 중립적으로 건조하게 전달하고 미디어가 취하고 있는 정치색과 기사의 방향을 함께 요약하여 보여준다.
https://www.allsides.com/unbiased-balanced-news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자랑이 아니고, 그래서인지 다녀왔던 여행지들이 머릿속에서 막 뒤섞였다. 가끔 뜬금없이 생각나는 여행지의 한 장면들이 있는데 (매번 다르다), 그때마다 그게 어디였더라 하고 한참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고, 기억이 날 때도 있지만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저 그 장면만 떠오를 뿐이다. 그렇게 살고 경험하고 놀고 먹었던 공간들이 기억 속에 여기저기 있다. 살았던 곳들은 그래도 스쳐지나간 곳보다는 특별한데, 예를 들면 별다른 것 안하던 주말의 한 낮의 쇼파에서 보이던 풍경, 슈퍼로 걸어가던 길에 있던 나무, 자전거 세워두던 곳에 있던 이상한 리본, 뭐 그런 것들.
이번 주말엔 <Kärlek och Anarki / love and anarchy> 라는 스웨덴 드라마를 넷플릭스에서 봤다. 스톡홀름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드라마가 촬영된 골목이나 거리들이 어딘지 알 정도로 익숙했다. 어색한 와중에도 전원이 악수하며 인사하고 시작하고 악수하고 헤어지는 장면이라든지, 어른 생파 못지 않게 거창한 애들 생일 파티라든지, 시골 집에서 나오는 Falun 빨강색 집들이라든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은 스웨덴을 보는 게 신선했다. 그리워하고 막 떠돌던 기억들이 방을 찾아가게 되고 그 방문 앞에 스웨덴이라고 붙여놓고 그리울 때마다 열어볼 게 생긴 느낌. 떠난 지 3개월이 되었고, 이곳에선 좋은 기회로 회사에서도 잘 자리 잡았고 좋은 이웃들이 있어 적절한 정도의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이곳에서의 안락한 상황이 떠나온 곳을 돌아볼 여유를 허락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워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11월은 11월인가보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의욕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린다. 11월은 원래 크리스마스 기다리는 맛으로 나게 되는데, 쇼핑도 시들시들해졌고 크리스마스도 영 예전 같이 않을 것 같은데다 락다운까지 있어 돌아다닐 곳도 제한되고 나니 여러모로 쉽지 않은 한 달이다. 넷플릭스마저 없었으면 정말 큰일이었을 듯. 구매한 책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고 있다.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읽혀지기 위해 나 대신 먼 길을 달려오고 있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