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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Apr 14. 2024

아옹(阿翁)을 배웅하며

시아버지의 3개월 유럽 도보여행

룸미러로 보이는 아버님은 한 마리의 미어캣 같았다. 공항으로 향하는 40여분의 시간 동안 고개가 한 시도 제 자리에 있지 않았다. 초행길도 아니건만 이리저리 살피는 고갯짓이 현재 아버님의 심리상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고, 당신은 그 상태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계신 듯 했다.


예약한 주차장에 주차를 끝내고 공항으로 들어서니 이미 티켓을 발권한 시부모님이 보였다. 나를 기다리시는 동안 두 분은 셀프 체크인을 마친 모양이었다. 인천공항을 시작으로 앞으로 3번 더 체크인을 해야 하는 아버님을 위해 기계 앞에서 복습을 한 번 더 했다.


아직 탑승 시간은 여유로웠지만, 아버님이 선택한 건 출국장으로의 즉시 입장이었다. 건강히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했고 아버님은 우리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공항직원에게로 다가갔다. 아버님 가방에 달린 새하얀 조가비가 달랑달랑 흔들렸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꽉꽉 채운 3달의 여행. 아니 순례길이라고 해야할까? 아버님은 프랑스로 떠나셨다. 그 기간 동안 이미 한 번 걸으셨던 산티아고 길을 한 번 더 걸으실테고, 그 뒤로는 스페인을 여행하시는 일정이었다. 불가피한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도보로 하는 여행이다.


아버님의 나이는 올해 72세. 많은 나이에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3달의 여행이 가능할까 싶지만, 가능할 이유도 여럿이다. 우선 아버님은 건강하시다. 과거 마라톤을 하셨고 최근에도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셨으며 떠나기시 전에도 하루에 20km 남짓을 여러 날 걸으셨다. 과거 산티아고 뿐 아니라 유럽으로 장기간 도보여행 하신 전적도 있으니 못할 건 또 무언가?


나도 순수하게 아버님의 응원을 응원해드리고 싶었다. 내가 그저 수수방관할 수있는 제3자의 입장이라면.


아버님의 여행 준비는 언제나처럼 내 몫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여행의 절반은 항공권 발권 업무. 처음 말이 나온 건 작년이었고 올해 초 괜히 발이 저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르신들이 모두 그렇듯 뭐든 짠! 하면 뿅! 하고 답이 나오는 줄 아신다. 두루뭉실한 계획을 나는 여러 번의 질문과 회유와 질책으로 구체화하여 비행기표를 결정했다.


아버님께서는 내게 예약을 하라고 하셨다. 이렇게나 빨리? 너무 성급하신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바뀔 건 없다고 자신만만해하셨다. 그날 늦은 밤 전화가 왔고 발신자를 확인한 나는 당연히 받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카톡이 와있었다.

-비행기표 취소해라

그렇게 확신하시더니 하루아침에 이게 무슨 일인지? 그러나 나는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를 예상해 결제를 무통장입금으로 해두고 입금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2일안에만 결제를 하면 되니깐 훌륭한 대비책이었다.


비행기 표 때문에 유심 때문에 번역, 지도 아무튼 여행 관련한 어플들 때문에 여러 번 시댁을 방문해야 했다. 비행기표 때문에 애를 먹을 땐 애먼 남편에게 불만을 털어놨고, '능력이 안 되면 가질 말아야지' 하면서 남편 역시 분개해줬다. 1번의 취소 소동이 있긴 했지만 골치아픈 항공권 발권 업무가 끝나니 그 뒤의 일들은 내게 사소하게 느껴졌다.


내 부모가 아니니 모르는 걸 가르쳐드리는 일도 열불이 나지 않았다. 나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확실하고 친절하게 가르쳐드렸다. 갈 적마다 밥도 얻어먹고 반찬도 얻어오고 아이 용돈까지 받았으니 사실 공으로 가르쳐드린 게 아니기도 했고.


내가 아버님의 여행을 도와드린 마음은 안쓰러움이 8할이다. 사실 이 여행은 용감하기보단 무모하다. 남편의 말처럼 능력이 부족하고 민폐를 끼치는 여행이란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도 그 용기는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평생 해오신 일을 은퇴하신 후 아버님이 느끼는 상실감과 허탈함은 굳이 소리내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게 원하는 일을 어떤 도움이 없어 못한다는 건 나는 너무 슬프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많이 불안해하시고 두려워하시는 아버님의 모습도 애달픈 모습이었다. 사실 아들이 둘이나 있지만 그들은 먼저 나서 도와줄 생각이 없는데다 왜 어른들은 나이가 들면 아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 걸 그렇게 힘들어하실까? 그렇다고 며느리를 이렇게 편히 생각하실 필요까지야...


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아버님은 아마도 당신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결정하셨다.


출국장으로 들어서는 아버님을 향해 어머님이 달려가셨다. 내가 말릴 새도 없었다. 대화내용이 들리지는 않지만, 아마도 뭔가를 신신당부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은 여행을 떠나는 남편을 대하는 아내의 모습이 아니라 물가에 내놓은 아들을 단도리하는 모습이었다.


오는 차 안에서 3달간 자유부인이 되셨는데 어디 가서 한달살기라도 하시고 오라는 나의 말에 어머님은 아무런 의욕도 없어보이셨다. 본래 걱정이 많은 어머님은 그간 아버님 옆에서 불안과 두려움도 똑같이 느끼셨으리라.


화살은 던져졌고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아버님의 여행은 계속 될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은 언제나 상상 속에서 더 부피를 불리니 실제 여행은 그렇게 나쁠리 없다. 이곳에 남겨진 나는 아버님에게서 도움을 청하는 톡이 적당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저 세 달간 아프지 마시고, 원하는 넓이로 또 원하는 깊이로 삶이란 여행을 맘껏 유영하시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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