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당신의 집 앞에 도착한 것의 무게

중년의 쿠팡 배달 알바 도전기

by 은섬



나는,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사장님의 차 안에서 “계속하는 게 맞는데, 이전에 일하시던 분이 돌아오셔서 어쩔 수 없이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 바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이번 일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차에서 내려 일터로 향하는 길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거, 나 잘린 건가?

잦은 실수를 했음에도 크게 화 한 번 내신 적 없는 다정한 사장님이었다. ‘you are fired’라는 말을 직접 하기 어려워 돌려 말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묘하게 마음은 가벼웠다. 한동안 나를 괴롭히던 일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섭섭함보다 시원한 기분이 더 컸다.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를 벌기 위해서 인간은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가진 재화나 부동산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평범한 소시민에게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초원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나는 자주 당근마켓을 어슬렁거린다. 물건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알바를 기웃거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알바에 뜻이 있다 한들 일을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조금 괜찮다 싶은 일엔 20~30명의 지원자가 순식간에 붙었다. 내 입장에서야 나만한 일꾼이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다. 그 사이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 지원을 포기한다. 게다가 조건도 문제였다. 이른 근무는 아이 등교시간과 겹치고, 낮 근무는 기존 일정과 부딪히며, 저녁엔 주부의 최대 미션, 저녁밥을 차려야 했다.


그러다 발견한 알바는 쿠팡 배달 알바였다. 오후 3시간 근무로 끝나고, 조금만 서두르면 저녁 식사 준비에도 큰 차질이 없을 것 같았다. 본래 하던 걸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좋았다. 바로 지원하기를 눌렀다. 안 하던 자기 PR도 했다. 근처 거주자로 지각할 일이 없고 장기 근무 가능합니다.


당근 채팅을 주고받은 지 이틀 후, 바로 일이 시작됐다. 내가 맡은 일은 단순했다. 사장님이 아파트 앞에 내려놓은 택배를 각 호수에 배달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가장 큰 변수는 ‘시간’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였다. 몇 개 층의 버튼을 한꺼번에 눌러 올라가며 내려놓는 방식이었는데, 타이밍이 어긋나면 순식간에 흐름이 꼬여 다시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사소한 실수는 계속됐다. 물건이 미끄러져 문이 닫히기도 했고, 버튼을 누를 타이밍을 놓쳐 엘리베이터가 다시 1층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라인을 헷갈려 헛걸음을 할 때면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 있었는데도 땀이 쏙 빠졌다. 특히나 어플엔 배달 물건이 있는데, 카트 안에 물건이 없을 땐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이동 중 물건이 떨어져 마음을 졸이며 찾으러 간 적도 있었다.


가장 난감한 시간은 오후 4시 이후였다. 아이들이 돌아오고, 입주민들의 이동이 많아지면서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일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졌다. 처음에 사장님이 “얼굴이 좀 뻔뻔해야 한다”라고 했던 말이 그제야 이해됐다. 나는 그 ‘뻔뻔함’이 부족해서 어물거리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몸도 빠르게 반응했다. 부딪힌 줄도 몰랐는데 끌던 카트에 복사뼈를 부딪혔던지 욱신한 통증이 올라왔다. 발가락엔 피멍이 들었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허벅지였다. 반복해서 숙이고, 들고, 움직이는 단순한 동작이었는데도 첫날 바로 허벅지 근육이 빠듯하게 당겨왔다. 한참 스쿼트를 한 사람처럼. 평소에 러닝을 해서 나름 다부진 허벅지라고 자신하는데도 통증은 피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매일이 완전히 괴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묘한 활력이 돌았다. 오늘은 어떤 일이 나를 멘붕에 빠뜨릴까 걱정되면서도 어떤 날은 “오늘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삼일째 되던 날에는 처음으로 콧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장님이 나를 잘라주길 아니면 남편이 힘들어하는 나를 안쓰러워해 그만두라고 말하길 바랐다. 그 모순된 마음이 출퇴근 길마다 반복됐다.


집에 돌아오면 기절하듯 잠들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오히려 더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덕분에 연말부터 나를 괴롭히던 우울과 무기력은 단숨에 날아갔다. 그간 마음이 힘들었던 것도 몸이 너무 한가해서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일에 조금씩 요령이 생기고, 여름이 오면 조끼를 하나 사서 폰과 펜을 넣고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렇게 빨리 일이 끝날 줄은 알았다면 씨가 될 말은 뱉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내 몸을 움직여 돈을 버는 건 좋았다. 그러나 남의 돈을 버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란 걸 오랜만에 체감했다. 어릴 적부터 일을 많이 해봐서 일머리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년의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해 자신감이 하락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도 이렇게 될까 봐, 가뜩이나 작은 담이 자꾸 더 위축될까 봐 두려웠다.


평소 내 삶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도 결코 편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요통에 시달렸고 항상 피곤했으며 타인의 책을 만들었을 땐 끝나고 꼭 병치레를 했다. 그럼에도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나의 세계였다. 그래서 늘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달랐다. 남의 돈을 버는 만큼 책임이 따랐다. 타인의 세계를 안전하게 문 앞까지 배달해야 하는, 좀 더 명확하고 엄격한 책임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내가 받는 돈의 몫만큼 해내지 못할까 봐 나는 더 괴로웠던 것 같다.


그것이 마지막 날, 나는 개운함 뒤에 남은 씁쓸함을 느낀 이유였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정차된 택배 트럭을 바라보는 나의 눈길이 깊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니 지금껏 그저 편하다고만 느꼈던, 쿠팡 택배가 현관 앞에 쌓여 있었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그냥’ 택배가 아니었다. 거기에 묻은 책임을 알기에 나는 남편에게 택배 좀 작작 시키라고 잔소리를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섰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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