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내 이름을 놀리지 마오

by 은섬

"선생님, 이름이 고전적이시네요."

처음 나간 모임에서 내 소개를 하자 한 분이 처음 보인 반응이었다. 그때 나를 기존에 알고 있던 P가 말을 보탰다. 명백히 내 이름을 놀리는 내용이었다. 이런 일을 예감했던지 모임 며칠 전 나는 P가 나오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녀와 나는 독서회 동료이기도 인데, 그곳에서도 내 이름을 갖고 똑같은 워딩으로 내 이름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새로운 곳에서 유일한 얼굴이라 반가워했는데 이런 뒤통수를 친다.


누군가 내 이름이 이상하다고 알려준 건 대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사기업의 면접에서였다. 그럼에도 이름이 독특한데...라는 면접관의 발언에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 이름을 걸고 뭔가를 운영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던 걸 보면 별도의 지적이 없어도 내 이름이 조금 독특하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위로 언니가 둘 있는데, 돌림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름의 가운데 자리를 공유하고 있다. 언니들 이름이 할아버지의 손에서 지어진 데 반해 내 이름만은 아버지가 직접 지으셨다고 한다. 사실적으로 마지막 끝 한 자를 지은 것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사실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우연히도 그 끝자가 엄마의 이름 끝자와 동일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은 아빠에게 물려받고 끝자는 엄마에게 물려받았다 생각하며 나의 독특함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렇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오니 외부의 시선엔 은근한 놀림도 묻어 있단 걸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나를 제외한 주위 사람들의 은은한 웃음. 악의 없이 분위기를 느슨하게 하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불편한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성격이라 늘 그저 옅게 웃고 말지만, 기분은 떪은 감이라도 씹은 것 같았다. 어쩌면 그걸 숨기지 못해 썩은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이름으로 놀림을 받았을 때만의 일이 아니었다. 나는 타인 앞에서 기분이 언짢을 때 표정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2022년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면서 이름을 조금 고민했다. 필명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독특한 이름에 대한 고민도 따랐다. 내 이름이 세련되거나 예쁜 이름이 아닌 건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결국 내 본명으로 내기로 했다. 내 책을 갖고 싶다 소망을 갖는 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고 첫 책이라는 의미 앞에서 부모님이 주신 이름으로 책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었다.


그래도 차후를 위해서, 나도 예쁜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서 작명소에 의뢰를 넣었다. 이곳은 아이의 이름을 지었던 곳으로 여러 개 중 산택받은 그 이름은 내 맘에 쏙 마음에 들었다. 내 경우 사주에 '쇠'가 모자라 '쇠 금'자가 들어간 여러 이름을 받았고 내가 고른 게 지금 브런치와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다. 그런데 개명을 하는 건 망설여졌다. 지금껏 이 이름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고 바꾸는 절차가 번거롭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이런 독특하고 예쁜 이름으로 불리는 게 낯간지러웠다.


이름을 지어주신 창조주님께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용기 내어 얘기했을 때 쿨하게 바꾸라고 하셔서 놀랐지만.(그때 깨달은 건 아버지도 개명을 하셨다는 사실. 하지만 아버지의 경우는 일본식 이름이긴 했다.) 여전히 나는 본래 이름 그대로지만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은 나를 닉네임으로 불러준다. 속이 간지럽고 조금 어색하다. 그렇지만 이름이란 건 불릴 때 의미가 있다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백 년이 되면 음력이 된 생일도 양력으로 바꿔야지! 다짐하는 것처럼 그땐 개명을 현실로 옮길지도 모르겠다.


이전부터 P와 함께 하는 모임의 올해 첫날이었다. 직전의 일도 있었고 해서 나는 작은 선물을 준비해 기분 상하지 않게 P에게 귀띔을 주는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런데 정작 그날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고 마음의 준비도 못했는데, P가 나타났다. 어떤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나는 P를 잽싸게 끌어안고 구석으로 갔다.

"오늘 내 이름 소개할 거잖아요? 놀리지 마세용."

하면서 나는 엉덩이로 P를 툭 쳤다. P는 미안해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분위기가 불편해지거나 얼어붙지 않았다.


결국, 나를 소개해야 할 땐 깜빡 잊고 이름을 말하지 않아 하나마나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이날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지금껏 한 번도 내 이름을 놀리는 이에게 어떤 불쾌함을 드러내거나 저지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꿈꾸는 여유롭고 유한 방식으로 그걸 해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가 원하는 어른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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