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나를 사랑할 거지?

by 은섬

"엄마 삐졌어?"

난 대답을 않고 아이 등뒤에 틀어져 있는 TV 화면을 응시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전쟁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시간이 필요한 거지?"


좀 전 음식점으로 오기 전 아이와 걷던 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가 어제 유명 가수와 콜라보를 했단 소식을 자랑하듯 공유했다. 신이 나서 목소리 톤이 높았을까? 아이가 대번에 흰 눈을 뜨며 시끄럽다고 했다. 고양되었던 기분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평소 아이는 나에게 폭탄에 가깝도록 많은 얘길 한다. 학교에서 있었던 불만일 때도 있고, 좋아하는 캐릭터 피규어에 대한 그야말로 나에겐 TMI에 가까운 각종 소식일 때도 있다. 그러나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는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뭘 알아야 대화를 할 테고, 그렇게라도 친목을 다져놔야 사춘기의 예민 지수가 잠잠해지기 때문이다.


지는 그렇게 귀가 따갑도록 시끄럽게 떠들어대 놓고, 내 한 마디에 면박을 주니 속이 좁은 엄마의 마음은 더욱 옹졸해진다. 이젠 횟수를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반복된 일이다. 나는 네가 기분이 좋게 유지시켜 주는 도구가 아니다, 너와 똑같이 감정을 가진 사람이니 존중해라. 나 역시 귀가 따갑도록 반복했다. 결과는 지금 이 상황이고.


눈앞의 아이가 시간이 필요하냐고 묻는 건 내가 기분이 상하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네가 바뀌지 않아서 내게 시간이 필요한 거지, 바로 바뀐다면 시간은 필요 없어."

나는 아이가 바뀌길 바라는 마음에, 아이를 향한 애정에 또 쉽게 손을 든다. 상했던 마음을 스스로 추스르기로 결정하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여전히 TV에선 이란에 '절대 항복'을 요구하는 트럼프의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아이의 이런 이기적인 행동 뒤엔 어떤 배짱이 있다. 이래도 결국 엄마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할 거라는 확신. 어릴 적부터 아이는 수차례 나를 시험했다. 마치 '이래도 나를 사랑할 거야?' 묻는 것 같은 말과 행동들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만약 지금까지 그 불안이 크게 남아 있다면 저런 식으로 오만방자하게 굴지는 못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TV 속에선 여전히 전쟁 소식이 한참이었다. 확신을 가진 이가 아이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뉴스 속에서 또 다른, 확신에 찬 이의 얼굴이 보인다. 미국 내부에서도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이 더 높다고 한다. 결정권자라는 이유로 이런 식의 전쟁이 가능하다니. 그의 정당성이 전쟁에서 죽어간 군인의 목숨보다 큰가!


과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의 활약을 쫓으며 나는 환호하고 슬퍼했다. 그런데 그의 영웅담이 대단할수록 많은 희생이 따랐다. 악인의 편이 더 많았기에 그게 당연하게 느껴졌고 무고한 자들의 희생 앞에선 눈을 감았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살 테다. 그런데 내가 이 삶의 주인공이 아니고 타인이 주인공인 이야기 속 엑스트라 1이라면? 그래서 주인공의 칼등에만 배여도 죽어버릴 운명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확신할 것이다. 이란에 엄청난 폭탄을 퍼부어도, 적국이 끝까지 저항해도 자신이 다치거나 죽을 일은 없다는 것을. 그는 전쟁에 투입된 군인이 아니고 백악관 내 참모들에게 둘러싸인 의사결정권자니까. 그러니 어느 군인의 목숨에 가치를 부여할리 없다. 그 단언이 배짱이 이런 비극을 지속시키고 있다. 소름이 돋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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