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이라는 불행의 궤도, 영화<다이 마이 러브>

by 은섬




작년에 개관한 '서부산 영상 미디어 센터'에 가보고 싶었고, 마침 '케빈에 대하여' 감독의 신작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서부산 영상 미디어 센터에서 그녀의 신작이 걸린다? 이건 무조건 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그곳은 비록 단관이었지만, 대중적이지 않아 동네 극장에선 보기 어려운 작품(그러나 작품성은 확보된)들을 상영 중이었다. 집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고 앞으로도 종종 방문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과거 '케빈에 대하여'가 자식으로 피폐해지는 인간의 끝이라면, 이번 '마이 다이 러브'는 부부로 피폐해지는 끝이다. 이러고 보면 가정은 우리는 사회의 기본 단위로 생각하지만 참 역경과 고난의 연속이다. 용케 사랑을 하고 결혼에 성공하더라도 산후우울증에 걸리고 아이는 정상적이지 않아서 여자의 신경줄을 갉아먹는다. 보면서 내내 얼마 전 읽었던 '1984'와 지금 읽고 있는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다. 결혼과 육아라는 부조리한 제도가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보고 있자니, '1984'의 전체주의나 '멋진 신세계'의 공장식 인간 생산 방식이 오히려 더 정직해 보일 지경이었다. 정말 보는 내내 기가 빨려서 힘들었다.



기타를 향한 얄팍한 애정을 과시하는 한량 같은 잭슨(피터 패틴슨), 그리고 작가를 꿈꾸던 자유로운 영혼 줄리아(제니퍼 로렌스). 두 사람은 잭슨의 삼촌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그 저택에 둥지를 튼다 둘은 사랑했고 아이를 갖고 출산하는 과정이 빠르게 지나간다. 갓난쟁이는 빽빽 울고 잭슨이 데려온 강아지는 내내 짖는다. 잭슨은 집을 자주 비우고, 줄리아는 이 집에서 그의 삼촌이 흉측한 방식으로 자살한 것을 알게 된다. 인근에 사는 시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몽유병에 시달리며, 혼자 있을 때 헬멧을 쓴 바이커가 집 주위를 맴돈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상징을 많이 심어뒀구나 싶었고 그 의미를 추적하기 위해선 잊지 않겠다고 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검은 말과 흑인 바이커' 그리고 바이커에서 줄리아가 하는 말, 왜 입술을 자르라고 하는지(왜 입술인지), 숲에서 검은 말을 만났을 때 얼굴에 상처를 입었고 이후 줄리아가 집에서 거실 창을 깨고 나가며 얼굴에 상처가 남는 장면 등, 신체에 대한 암시가 많았다.



그 외에도 흘리는 게 많았는데, 그건 바로 잭슨이 '바이'가 아닌가 하는 설정이다. 발기하지 않은 잭슨 앞에서 줄리아가 게이라고 더럽다고 욕하는 장면이 나온다. 차 안에 있던 콘돔 박스는 자꾸 바뀌고 말이다.(이건 난 캐치하지 못했다.) 그런데 뒤에 의미심장한 말이 나온다. 이땐 그냥 수치심과 좌절감에 한 욕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닐지도? 정신병원에서 퇴원 후 잭슨의 차가 바뀌어있고, 무슨 돈으로 바꿨냐는 말에 그는 절친이 사정을 봐줬단 소리를 하면서 굳이 'big'이란 단어를 쓴다. 남자 둘이 차에서 뒹굴려면 큰 차가 좋다는 뜻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줄리아는 외도했나? 앞에서 언급한 검은 말, 흑인은 줄리아의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바이커가 집 근처를 배회한 건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검은 말(둘의 얼굴의 상처가 동일한 이유)은 줄리아의 억눌린 야생성의 상징일 테고, 그런 욕망이 흑인 남자로 투사되었을 것이다. 줄리아 성정이 이렇기 때문에 그녀는 개보단 고양잇과다. 쥐 소리에 예민해진 그녀가 잭슨에게 고양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 남편이란 놈은 상의도 없이 개를 데려왔고 이 개 역시 주인 닮아 성질이 더러운지 낮이고 밤이고 짖어댄다. 결국 안락사 엔딩이었는데, 영화의 말미 잭슨은 어디서 또 검은 개를 가져온다. 그 개가 마당에서 놀다 땅을 파기 시작했고 거기서 꺼낸 건 이전에 키우던 개의 뼈다.



영화의 시작 불이 붙은 숲의 모습이 나온다. 그 뒤로 이어지는 잭슨과 줄리아의 정사. 마지막 장면도 불이 붙은 숲이 나온다. 줄리아는 나체 상태로 그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좀 전까지 정신병원에서 퇴원을 해도 여전히 상태가 좋지 못한 줄리아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더 노력하겠다고 말한 잭슨.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불길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줄리아의 마음속 풍경이다. 초반의 불이 사랑과 열정에 의한 것이었다면, 마지막의 불은 그 지긋지긋한 관계조차 태워버리는 사랑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제야 제목이 이해가 간다. 왜 사랑을 죽이라고 하는지. 죽이지 않곤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잭슨의 사랑도 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my love는 줄리아의 것인 동시에 잭슨의 것이기도 하다. 결국 둘은 끝나지 않는 불행의 궤도를 돌 테다.



영화는 보통 혼자서 많이 보는데, 이번엔 동행이 있어서 영화가 끝나고 바로 서로의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서로 다른 해석을 비교해 보거나 고민하며 답을 찾는 과정까지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였다. 다만, 미혼자는 보지 않길 추천한다. 안 그래도 요즘 결혼도 안 하고 출산도 안 하는데, 이거 보면 더 겁먹을라. 예방접종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말리지 않겠다. 이 영화를 보며 린 램지 감독은 관객을 집요하게 구석까지 몰고 가는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역시 다시 생각해도 기 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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