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의 뷔페는 못 참지 병

by 은섬

눈앞에서 만두전골이 팔팔 끓고 있다. 친구가 내게 만두를 퍼주려 하기에 만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그녀는 금세 시무룩해지면서 말했다.

"미리 말하지. 난 만두를 좋아해서 10년 넘게 이것만 먹는다."

나는 혹시 어릴 때 만두를 먹지 못해 서운한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친구는 기억은 안 나지만 10년 넘게 이것만 먹었더니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부끄럽게 고백했다.


누구에게나 오래 기억에 남는 음식이 있다. 너무 좋았어서 일 수도 있고, 못 먹어서 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래 알아왔는데도, 처음 듣는 친구의 만두 이야길 듣고 보니 자연스레 나의 먹는 이야기를 둘러보게 됐다. 나에게도 뭔가 강렬하게 각인된 먹는 경험이 있었는지.


아주 여러 사람에게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살이 잘 찌지 않는 편이다. 요원할 줄 알았던 지금의 몸무게도 출산 후 겨우 얻었다. 스스로 소식좌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음식을 많이는 못 먹는다. 매일 먹는 끼니 뭐가 대단한지 모르겠고, 주기적으로 입맛이 없고, 억지로 또는 빨리 뭔가를 먹어야 하는 건 고문이다. 좋아하는 음식 질문을 받았을 때 몇 가지를 내놓을 수 있는 것도 몇 해 되지 않았다.


이런 내게 뷔페는 참으로 손해다. 본전은 어림도 없고,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뷔페집 사장님은 돈을 아주 많이 벌 수 있을 거다. 그럼에도 나는 뷔페를 꽤 좋아한다. 여러 음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점이 가장 좋고 그다음으론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무제한, 무조건 얼마라는 과금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 자유가 좋다.


한때 뱃골을 늘린 것도 뷔페에서였다. 나는 배가 배부르다는 느낌이 들면 이후론 더 이상 먹지 않는다. 밥 들어가는 배, 간식 들어가는 배 따로 있다지만 그 두 번째 배가 있기는 해도 아주 적은가 보다. 그런 내가 살을 좀 찌워보겠다고 뷔페에서 열심히 먹었고, 아니나 다를까 두 접시 정도를 먹자 덜컥 위기감이 들었다.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냐? 그런데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먹으면 그게 또 들어가진다. 죽을 것 같았는데 죽지도 않았다.


지금은 몸무게에 간절함도 없다. 그런데도 뷔페를 가면 많이 먹고 싶어 조금 애를 쓴다. 평소라면 이만큼이면 되었다 할 때 미련 없이 숟가락을 내려놓는데 그곳에서만은 그게 잘 안 된다. 조금이라도 먹으려고 애쓴다. 분명 집에 가면 지금 먹지 못할 무언가를 아쉬워하고 후회할 거 같아서다. 그러다 보면 역시 평소보다 배가 너무 불러 괴롭고, 그런 내가 한 마리 짐승이 된 것 같아 불쾌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마음이 잘 포기가 안된다. 한 마디로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음식을 앞에 두면 평소에 못 먹는 음식, 입맛에 맞아 더 맛있는 음식을 더더 먹으려고 애쓰게 된다. 이게 과거 가난의 결과인가 싶기도 하다. 이깟것 먹고 싶으면 또 먹으러 오면 되지, 이 마음이 잘 안 먹어진다.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이런 식탐은 몸무게와는 영 무관한 모양이다.


친구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어쩌면 과거에 만두에 맺힌 한이 있었을 수도 있다. 내게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나름의 추측을 해보자면 그렇다. 그렇지만 내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못살긴 했어도 먹는 것에 큰 아쉬움은 없었다. 게다가 평소 식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이 본전 생각은 왜 포기가 안 되는지...


친구가 10년 넘게 만두를 먹고 나아졌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뷔페가 그 대상이라서 더 오래 걸리지 않을까? 아무래도 드문드문 먹게 되니까. 그래도 본전 생각을 완전히 잊고 음식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날도 분명히 오긴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얼마 전 친정 식구들이 놀러 왔고 마지막 날은 쿠우쿠우에 가자고 했다. 오픈 후 2번 갔을 때 쏙 마음에 들어서 내가 제안했던 거였다. 그리고 전날 밤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속이 울렁거렸고 온몸은 두드려 맞은 것처럼 쑤셨다. 전날 그럴 만한 일이 있던 게 아니었어서 억울했다.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도 나는 이런 생각이나 했다.


'아, 내일 쿠우쿠우 못 먹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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