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과의 거리

오늘날의 이웃사촌에 대하여

by 은섬

계단식 아파트에 살고 있다. 가능한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마주쳤을 때 인사는 하려고 애쓰지만, 이웃사촌이란 말은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생각은 모두가 공유한 듯하다. 어느덧 이 집에 이사 온 지도 만 7년이 지났고 그간 앞집이 3번 바뀌었다. 오늘은 우리를 지나간 앞집 이웃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몇 발짝 떨어져 있지 않지만, 끝내 가까워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 첫 번째 이웃

키가 작은 남편과 훤칠하고 아름다운 아내로 이루어진 단출한 가족이었다. 나는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아내와 마주치곤 했는데, 나보다 한 뼘 이상은 큰 키의 그녀를 마주칠 때마다 저절로 기가 죽었다. 추레한 차림의 나와 달리 그녀는 언제나 잘 차려입고 화장도 곱게 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와 우연이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번의 낌새로 남편은 자동차 영업직, 아내는 보험 컨설턴트인 걸 알게 되었다. 이후 한참이 지나서 보험일을 하는 후배를 통해 그녀의 상사가 우리 앞집의 그녀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듣기로 그녀의 연봉이 억대는 넘어갈 거라고 하던데 그렇기엔 우리 아파트는 조금 누추하지 않은가 의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집이 짐을 뺐다. 그게 왜 그렇게 급작스럽게 느껴지던지. 거실창 너머로 그들의 집을 실은 트럭이 보였다. 방향으로 보건대 이 지역을 떠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사의 이유를 알 도리는 없었다. 그때 남편의 아침드라마급 상상에 배꼽을 쥐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 두 번째 이웃

앞집은 오래 비어있지 않았다. 새로운 이웃과 생활반경이 겹치지 않는지 나는 그들과 거의 마주치질 못했다. 남편에게 얻어 들은 것이 훨씬 많았다.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이 앞집 아내를 여러 번 마주쳤다고 한다. 그가 엘리베티어에서 내릴 때 그 집 아내는 퇴근한 듯 피곤한 몸을 끌듯 남편 옆을 지나쳤다고. 였다. 밤새 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여러 직업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비눗방울처럼 톡톡 사라졌다.

앞집에서 가장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강아지였다. 그러나 그 개가 집을 나서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저 개 짖는 소리로만 알 수 있었다. 그 방식 또한 최악이었다. 밤바다 그렇게 개가 짖었다. 밤에 혼자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쉽게 달래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안방이 앞집과 맞대고 있어서 밤새 짖어대는 개 때문에 밤잠에 곤히 이루기 어려웠다.

의외로 앞집엔 아이도 있었다. 그걸 그들이 이사 오고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놀라움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이는 우리집 중딩이랑 나이 차가 크지 않았고 그러고 보니 앞집 그녀 역시 내 또래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그저 잠깐씩 마주치는 같은 라인의 주민들보다 더 어색했다. 이런 게 가깝고도 먼 이웃인가? 집을 나서려고 할 때 앞집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멈춰 섰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야 집을 나섰다.


---------- 세 번째 이웃

이사 오는 것이나 가는 것 모두 매번 급작스러웠다. 세 번째 이웃이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로 그들이 이사 온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소음이 요란해 인터폰의 현관 카메라를 켜니 앞집으로 끊임없이 들어가는 짐의 행렬이 보였다. 그날 외출을 할 땐 괜히 앞 쪽을 기웃거리게 됐다.

이번 이웃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전해준 건 우리집 중딩이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들은 소리는 그 집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와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였다. 깜짝 놀랄만한 얘기였다. 뭐지? 의사소통 방식이 좀 과격한 집안인가? 게다가 종종 앞집 아이랑 마주치는데, 그때마다 아이가 혼비백산해 집으로 들어가거나 계단으로 호라락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중딩이는 썩 기분이 좋지 못하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우리층 계단에 자전거 3대가 추가되어 걷기가 비좁았다. 한참 지켜보다 못한 나는 그 가전거들을 바짝 볕에 붙여두었다. 그러나 그 집 앞의 마대자루는 별개의 문제였다. 큰 사이즈의 자루 2개를 놓고 거기에 쓰레기를 담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관리사무소에 얘기하고 싶지만, 괜한 짓일까 봐 참고 있는 중이다.


우리 앞집들이 하나같이 참으로 범상치 않다. 나는 의도치 않게 그들을 관찰했고, 때로는 불필요한 상상력을 덧붙였다. 질 낮은 호기심이었을 때도 있었고, 또래의 아내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음을 그냥 지나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몇 발짝 되지 않는 앞집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은 앞으로도 요원해 보인다.


오늘도 며칠째 앞집 앞에 방치된 낡은 가방을 보며 생각한다.

'집터가 안 좋은가?'

아니면, 우리가 아직 서로를 모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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