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꼭 안아주세요

by 은섬

아직 맹렬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말. 인연을 맺고 있는 동네 책방에서 내 책을 가지고 독서회를 진행했다. 기쁘고 설렜지만 드러나는 내 모습은 대체로 덤덤했을 것이다. 실제로 막 떨리거나 긴장되지도 않았으니까.

독서회를 기쁘게 끝내고 드디어 책방을 벗어났다. 얼른 지하철역으로 향하려던 나에게 지인이 함께 가자고 졸랐다. 매몰차게 거절하기 애매해 차에 오르긴 했다. 금방 도착하겠지 믿으면서. 사실 모임 내내 배가 아팠다. 아무래도 시작 전 마셨던 음료가 문제인 것 같았다. 얼음과 함께 나와 찬 오렌지 주스가 속을 훑으며 내려갔고 목이 마를 때마다 홀짝홀짝 마셨었다.

하필 지인은 차의 에어컨까지 빵빵하게 틀었다. 누군가 뱃속에 손을 넣어 위장을 휘젓는 것 같았다. 수만 번의 고민을 하는 동안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OO님, 저 여기서 그냥 지하철 타고 갈게요."

일단 어떤 실수를 할 일이 없어졌단 사실 만으로도 땀이 마르고 속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거 참 술자리 안주 하나 추가됐구나 싶은 에피소드였다. 곧 플랫폼으로 지하철이 들어왔다. 저걸 타면 한 정거장 만에 집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그 순간 그건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위장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쉽지만 빠른 발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짚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개찰구를 나가서 통로 끝의 화장실로 날듯 걸어갔다. 그럼에도 그 길이 구만리였다.

텅 빈 화장실에 앉아 있으니 큰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지하철에 탔을 때 이런 위기가 왔다면 나는 이민을 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행위가 3번째 반복될 때는 이러다 영원히 이 지하철역에 갇히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다. 다행히 그날 집에 들어가긴 했지만,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친 후였다.


얼마 전 아이와 훠궈집에 갔다. 많은 양은 먹지 못해도 평소 먹기 힘든 메뉴를 요것조것 야무지게 먹었다. 하이디라오만은 못해도 꽤 가성비 좋은 훠궈집이라 재방문 의사가 있을 정도였다. 후식 코너에 아이스크림이 있기에 아이에게 한 컵 떠다 달라고 했다. 그렇게 내 앞에 대령한 아이스크림은 양이 꽤 많았다.

그걸 퍼먹고 돌아오는데 속이 영 안 좋았다. 그 뒤로 며칠을 고생했다. 훠궈 뒤에 먹은 아이스크림이 문제였으리라. 다 먹고 아직 소화도 안 된 속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부운 게 미련한 짓이었다.


속이 찬 편이라 그런지 소화기 계통으로 고난을 겪을 때가 제법 있다. 이번 주에도 지금껏 복통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매번 괜찮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해왔다. 스스로를 세뇌시키듯, 나를 옥죄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그런데 뒤돌아보면, 내가 정말 괜찮았던 게 맞을까 의심스럽다.

첫 독서모임은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긴장됐다. 이번 주중 친정 식구들이 놀러 온 일도 반가우면서 부담이 됐다. 그럴 때마다 몸은 먼저 티를 냈다. 따지고 보면 난 괜찮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인정하는 건 복통을 견디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부정당한 긴장과 부담은 나를 더 차가워지게 하고 그것은 쉽게 복통으로 번졌다. 그럴 때마다 이런 나를 꼭 안아줄 존재가 필요하다. 그게 다른 누구든, 어떤 일이든 아니면 나 자신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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