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글은 정말 좋은 글인가
"솔직한 글이 좋은 글일까요?"
글쓰기 모임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시를 쓰는 회원도 있지만, 역시 주요 장르는 에세이다. 좋은 에세이에 대한 일반론은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과 구분되는 에세이의 장르적 특징이기도 하다. 나는 과거 완성한 동 장르 글에 대해서 불친절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유는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충분한 사건 설명 없이 그에 대한 내 감상과 깨달음만을 적었기 때문에 그랬다. 읽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혼잣말이었다.
반면 같은 모임에서 다른 회원에게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어떻게 그렇게 솔직히 쓸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썼다. 그때 내가 대답을 어떻게 했더라? 그 상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건 내가 이미 소화한 감정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내가 감당한 솔직함이란 의미였다. 그래서 내어놓는 것에 부끄러움이나 망설임은 없었다.
그랬는데, 문제의 이날, 솔직한 글이 좋냐는 물음에 나는 풀 악셀을 밟았다. 아니라고, 그건 절대 아니라고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머릿속으로 어떤 대답을 정하고 한 반응이 아니었고 그냥 본능적으로 튀어나갔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건 나답지 않았고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고 또 부끄러워서 혼자 얼굴을 붉혔다. 정말 솔직한 글은 약일까? 독일까?
다른 수업에 신입 회원이 들어왔다. 그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최근에 귀국했고 귀국 이유는 공황장애와 우울증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우연한 기회로 이 사람과 동석할 일이 생겼다. 수업에서 보고도 혼자 사는 남자일 수 있겠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동석한 자리에서 그가 결혼해서 아이까지 셋 있다는 소릴 들었을 땐 꽤 충격적이었다.
블로그 이웃 중에 독특한 닉넴을 가진 이가 있다. 나와 공통점이 많아서 매일 오전과 오후에 2번씩 규칙적으로 올리는 글이 잘 읽혀서 자주 찾는 블로그의 주인장이다. 그와 내가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당연히 블로그였다. 질병이 있고 최근 독립을 하는 현황까지 매일의 글에 상세히 나와 있다. 다른 도시인데도 얼마 전부터 그의 활동 동선을 유추할 수 있는 정도였고, 이제 사는 곳도 특정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내겐 둘의 행보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배척과 혐오가 판치는 세상에 속것을 내놓았다가 꼬투리 잡히기 좋은 때다. 나 역시 블로그를 할 때 나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것 나름 조심을 하는 것도 괜한 피해의식은 아니다. 글을 쓰고 말고를 넘어서, 솔직한 것은 과연 좋은가로 질문이 넓어진다.
영화 '비밀의 언덕'에서 전학 온 아이는 주인공의 가장 큰 특기였던 작문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된다. 그 아이의 글이 1등을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어머니의 직업이 유흥업이라는 사실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의 고백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날것의 노출, 혹은 터뜨림에 가까운 것으로 어른의 세계에서 인정받는 건 아이답지 않게 느껴졌다. 그 고백이 나는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한때는 나는 모든 걸 말하는 것이 진짜 솔직함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랬기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게 있으면 꼭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고백을 하려 하자 나의 말로 상처 입거나 힘들어할 상대가 눈앞에 그려져 망설여졌다. 그때 알았다. 어떤 솔직함은 현실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아이러니 앞에서 솔직함이 능사만은 아니란 걸 어슴프레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솔직한 글이 좋은 글이냐는 질문 앞에서 부끄럽게 급발진하고 말았다. 모든 솔직함은 결국 말하는 사람, 쓰는 사람의 필터를 통해 세상에 나온다. 그것이 법이나 도덕을 위반한 건 당연히 안 되는 것이고 동시에 말하고 쓰는 사람이 먼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아직 소화되지 않은 감정, 정리되지 않은 사실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내놓는 일은 용기라기보다 책임의 전가가 아닐까?
에세이는 혼잣말이 아닌 타인에게 건네는 고백. 무엇을 말할지보다,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 일이 필요하다. 이 말이 그저 내 속 개운하자고 내뱉는 무책임인지, 내 안에서 충분히 다뤄지고 소화되어 안도의 한숨 같은 건지 쓰는 사람은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솔직함은 누구에게나 어려울 텐데, 누군가의 담백한 고백은, 적어도 나에게는, 상대를 연민하거나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 공기는 여전히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