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집 앞 아이스크림할인점(이하 아할)이었다. 식사 후 시원하고 달콤한 게 먹고 싶다고 했더니 아이가 아할에 가자고 했다. 나야 안 가도 그만이지만 안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할에서도 뭔가 띠꺼운 티를 한참 내며 시간을 끌더니 나와선 내 옷차람이 창피하단다. 생활복 그대로 나온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옷이었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함께 외출할 때마다 옷 검사를 받는 기분이 들어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이영애나 한가인도 아이들 요구에 외출할 땐 옷차림이나 메이크업을 더 신경 쓴다고 한다. 그들에겐 그런 일이 예능이지만, 내 경우엔 다큐가 아니겠는가.
기분이 상해 창피한 엄마랑 오지 말라고 먼저 집에 와버렸다. 이때 아이 심사가 더 틀렸을 것이다. 잠시 후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내게 와 또 다른 요구를 했다. 놀러 가는데 태워다 달란 거였다. 거리는 좀 있어도 지하철만 타면 갈 수 곳이었다. 굳이 그 번화가를 차로 운전해갈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나를 비아냥거리더니 아이가 제 방에 가서 문을 콱 닫았다.
욱했다. 참는 마음이 임계점을 넘었다. 아이 방으로 향할 때 내 손엔 드라이버가 들려 있었다. 나는 아이 방문 손잡이의 나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문은 닫을 수도 잠글 수도 없게 되었다. 이전부터 나는 수차례 경고했다. 문을 잠그지 마라, 문을 쾅쾅 닫지 마라. 자꾸 그러면 문을 떼어낼 거라고 경고했었다.
그 경고를 실행에 옮긴 날이 오늘이었을 뿐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참을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엔 어른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없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유교걸, 꼰대 뭘 갖다 붙여도 어쩔 수 없다. 그런 어른이다 보니 아이가 문을 잠그거나 보는 앞에서 문을 쾅 소리 내어 닫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난다. 그 아이에게 내 존재가 거부당한 것 같아서.
연이어 문자와 전화, 보이스톡이 오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모두 아이였다. 받지 않고 내버려 뒀다. 모든 연락이 잠잠해질 때쯤 문자를 보니 문을 열란다. 가끔 아이는 불필요한 일에 고집을 피운다. 나를 굴복시키려 하고 통제하려 하면서 기싸움을 한다. 그런 거려니 하면서도 아이 방에 갔더니 진짜 문이 잠겼다! 문에 남아 있는 부품이 혼자 잠겨 안에서도 열리지 않게 된 것이다!
막막했다. 아니, 왜 문이 안에서도 안 열리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이런저런 시도 끝에 겨우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상태가 오래가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던 아이가 손잡이를 다시 달아보겠다고 애쓰다 안에서 또 문이 잠겼다. 어쩌다 보니 둘 다 셀프감금.
문을 따려면 손잡이를 다시 떼어내야 하는데, 그럴 경우 반대편 손잡이가 추락할 거였다. 그때 시간이 밤 12시.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예민한 남편과 죄 없는 이웃들에게 미안해 딸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내내 그러고 있을 수도 없었다. 집중력과 신중함을 최대 발휘하여 나사를 풀어냈더니 끄트머리에 반대편 손잡이가 겨우 걸쳐 있었다. 휴.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문을 땄다.
지옥이 멀리 있지 않았다.
다음 날 일어나 방문을 여니 앞에 아이의 편지가 있었다. 어제 일에 대한 사과였다. 그러면서도 엄마도 나처럼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길 바란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였다.
전날 아이의 막무가내로 손잡이 부품 하나가 고장 났다. 나는 아이에게 '너의 잘못으로 빚어진 일이니 문손잡이가 없는 결과는 감당하라'라고 했다. 방문은 늘 조금 열려 있었다. 극단으로 치달을 것 같았던 아이와 내 사이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요 며칠 아주 좋은 편이다. 부모 자식 사이도 칼로 물 베기인가 보다. 며칠 지났다고 처음 화가 난 이유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내 손으로 떼어낸 방문 손잡이를 새로 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 왜 문이 잠겼는지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제법 고전을 했다. 잠시 후 이유를 깨닫고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잠그는 쪽을 안이 아닌 밖에 달려고 했던 거다. 그러니 홈에 딱 맞아떨어질 리가! 이게 내 생각이구나 싶었다. 아이를 방에 넣고 잠그는 위치.
다시 방문 손잡이를 떼어낸다던지 아예 방문을 떼어내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다. 확실한 것 하나는 이제 방문 손잡이의 구조에 대해선 바싹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 그 말은 이제 어려움 없이, 고장 없이 손잡이를 떼어내는 것도 다시 다는 것도 내 손바닥 위란 얘기다.